저가 앞세운 중국산 ‘돌격 앞으로’

“올 여름 중국 하이얼의 에어컨을 50대 팔았습니다. 설치비까지 30만원 정도인 4평형과 30만원대의 6평형이 인기였죠. 에어컨은 굳이 비쌀 필요 없다고 여긴 소비자가 주로 찾았습니다.”서울 용산 전자랜드 1층에 입점한 굿아이마트측의 설명이다. 굿아이마트는 올 여름부터 중국 하이얼의 에어컨을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본 굿아이마트 영업사원은 “싸면서도 잘 팔리는 제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하이얼의 경우 직영 애프터서비스(AS)센터 또한 있어 서비스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굿아이아트는 내년 여름에도 하이얼 에어컨을 판매할 계획이다.지난 9월13~14일 이틀간 돌아본 전자제품 매장에는 최근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일단 중국 브랜드 ‘하이얼’ 돌풍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하이얼의 오프라인 유통망으로는 용산 일대 전자상가와 할인점이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가전제품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카테고리킬러’ 하이마트에는 입점되지 않은 상태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는 하이얼의 세탁기와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하이얼 에어컨은 시즌이 끝나서 전시를 끝마쳤지만 지난 여름 LG전자 휘센과 삼성전자 하우젠 옆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다.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백색가전을 판매하는 전복순씨는 “지난 7월부터 벽걸이형 하이얼 에어컨을 팔았는데 싸면서도 기능이 괜찮아 꽤 많이 팔았다”며 “주로 자취하는 학생들이 하이얼 제품을 많이 사갔다”고 말했다.하이얼의 세탁기와 냉장고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선보인 것은 올 초였다. 이후 한국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판매되고 있다. 그렇다면 하이얼 세탁기, 냉장고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소형 세탁기의 경우 3.3㎏형이 19만8,000원, 3.0㎏형이 17만8,000원이었다. 소형이지만 냉ㆍ온수 기능, 세탁시간, 탈수시간, 헹굼횟수 조절 등 기본적인 기능을 모두 갖췄다. 한국산 세탁기 가운데 가장 저렴한 제품이 24만8,000원(10㎏)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이얼의 저가전략을 간파할 수 있다. 아울러 진열된 세탁기 가운데 4㎏ 이하의 소형은 하이얼 제품뿐이었다. 하이얼의 소형가전 시장공략을 엿볼 수 있다.롯데마트 서울역점의 하이얼 냉장고 역시 소형으로 용량은 51ℓ. 냉동, 냉장실이 별도로 구분돼 있지 않은 한 칸짜리의 51ℓ 냉장고에는 ‘세계 2대 백색가전 하이얼’이라는 광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가격은 12만8,000원으로 단연 저렴했다. 바로 옆에 진열된 대우의 45ℓ 냉장고는 14만8,000원, 대우의 75ℓ 냉장고는 19만3,000원이었다.소형 냉장고를 구경하던 주부 김미경씨(53)는 “직장인인 미혼 아들이 1년간 지방근무를 하게 돼 지방에 원룸을 얻어줬다”며 “음료수와 과일 정도만 넣을 수 있는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해서 둘러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어차피 아들은 단기간만 혼자 살 예정이고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이 없어서 가장 저렴한 소형 냉장고를 사려 한다”며 “하이얼이 중국제품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중국산이라도 저렴하면 상관없다”고 덧붙였다.하이얼 제품은 오프라인보다는 특히 TV홈쇼핑과 인터넷을 통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올 여름 대박을 터뜨린 하이얼 에어컨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홈쇼핑 등 인터넷쇼핑몰의 인기에 힘입어 올 여름 3만대를 판매했다. 국내에서 시장점유율 1위라고까지 회자되는 하이얼 와인냉장고 또한 온라인쇼핑몰 위주로 팔려나갔다. 일부 주류전문점에서 판매되기도 하지만 주고객은 온라인에 있다.하이얼코리아는 최근 32인치 LCD-TV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TV의 경우 용산 전자상가와 할인점 등 오프라인에서는 아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TV 역시 롯데닷컴 등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이얼코리아가 지난 7월부터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판매한 32인치 LCD-TV의 예약판매 가격은 129만9,000원. 동급 한국산 가격이 170만원 정도라는 점과 비교하면 ‘철저한 저가공세’를 느낄 수 있다. 예약판매 기간 중 600여대가 판매됐고, 예약판매 후에는 가격이 10만원 정도 올라갔지만 400여대 이상 팔렸다.하지만 아직까지 적잖은 국내 소비자들이 하이얼의 브랜드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용산 전자랜드 내 H가전랜드 관계자는 “하이얼 에어컨을 4평형 31만원, 6평형 38만원에 팔고 있다”며 “손님들이 싼 맛에 사가는 것이지, 여윳돈이 풍부하다면 LG와 삼성 에어컨을 사지 중국제품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박태수씨는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데 고시원의 소형 냉장고 가운데 하이얼 제품을 자주 봤다”면서 “고시생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고시원의 운영자 입장에서는 굳이 비싼 냉장고를 설치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하지만 고시원의 고객인 내 입장에서는, 저가 냉장고에 내가 받는 대우의 수준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고 덧붙였다. ‘저가 이미지’로 인한 브랜드의 가치 절하가 하이얼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하이얼 소형가전 인기끌어중국 브랜드 하이얼의 시장점유율이 날로 높아지는 반면, 일본 브랜드는 울상을 짓고 있다. 삼성과 LG, 대우 등 한국 브랜드 파워가 날로 거세지며 판매현장에서 일본 브랜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는 종합가전업체로 거듭나려는 일본업체들의 노력이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은 것.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영상가전 영업담당자인 김종덕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도 다른 가전매장에서 근무했었는데 2년 전과 비교해 일본제품의 판매는 절반 이상 줄었다”며 “한국 브랜드의 이미지가 급격히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외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예전에는 외국 브랜드가 국내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며 “그러나 이제는 외국 브랜드는 가격을 내리고 국내 브랜드는 올려 가격이 비슷해졌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구매 소비자의 연령층도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 영상가전 강세 시절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고객 연령층이 다양했다”며 “최근 일본 TV와 홈시어터를 찾는 고객 가운데에는 수입제품 선호 경향이 있는 50~60대 고객이 많다”고 했다.용산의 상인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용산 전자랜드 2층에서 일본의 영상가전 제품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박상훈씨는 “지난해 초와 비교해 소니의 TV 판매가 3분의 1 줄었다”며 “파나소닉 등 다른 일본 브랜드는 아예 들여놓지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 역시 “화질을 중시하는 중장년층이 주 고객”이라며 “20~30대 대다수는 TV를 살 때 컴퓨터와의 연결단자가 있는지 등 기능을 꼼꼼히 살핀 뒤 한국제품을 산다”고 덧붙였다.TV 영업을 오래해 온 박씨는 “TV의 브라운관 시대에서는 소니가 강자였지만 LCD-TV 시대에서의 시장은 한국 브랜드에 뺏겼다”고 분석했다.소형 음향가전인 MP3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 판매현장에서도 ‘일본 열세, 한국 강세’를 읽을 수 있었다. 용산 전자랜드에서 MP3플레이어와 CDP를 판매하는 준전자의 김혁씨는 “CDP는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제품의 판매가 돋보였지만 3년 전부터 판매 자체가 급격히 떨어졌다”며 “이제는 CDP를 찾는 소비자를 구경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이제 소형 음향가전 시장은 당연히 MP3 위주로 구성된다”며 “MP3를 놓고 보면 한국제품의 판매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덧붙였다.그렇다면 일본 브랜드가 모든 분야에서 하락세를 걷고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일본 브랜드는 한국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 또 오디오 등에 연결하는 엠프 시장에서도 일본의 힘은 여전했다.용산 전자랜드 2층에 위치한 중일전자의 김종하 부장은 “비디오ㆍDVD플레이어는 일본제품의 판매가 30% 밑으로 떨어졌지만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삼성 케녹스가 전체 판매의 20%, 나머지는 모두 니콘, 캐논 등의 일본제품”이라고 했다. 김부장은 이어 “엠프의 경우 데논, 마란쯔 등 일본제품이 판매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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