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문제는 국가안보 차원서 다뤄야’

신의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부경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신ㆍ재생에너지 연구팀장,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장국제유가가 좀처럼 내려 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경제와 산업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특히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고유가는 심각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김상헌 취재팀장의 사회로 에너지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보았다.사회: 최근 들어 다소 안정세에 접어든 모습이긴 하지만 국제유가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우려됩니다. 우선 현재의 고유가 현상이 일어난 원인부터 짚어주십시오.구자권 팀장(이하 구팀장): 석유시장 자체의 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은 줄었습니다. 수요증가를 부추긴 것은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입니다. 중국만 해도 하루 소비량이 이전에 비해 270만배럴이나 불어났습니다. 미국 역시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석유 소비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석유 공급량은 과거 저유가 시절에 비해 줄었습니다. OPEC만 해도 과거 2차 오일쇼크 당시 하루 3,800만배럴을 생산하던 것이 최근엔 3,200만배럴로 600만배럴이나 줄었습니다. 여기에 이라크전쟁, 베네수엘라 파업, 미국의 카트리나 피해 등이 발생해 공급 사정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일정 가격 이하에선 감산을 하는 OPEC의 움직임과 석유 생산 비용 자체가 올랐다는 점도 고유가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신의순 교수(이하 신교수): 장기적인 관점에서 풀어볼 수도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석유가 개발되기 시작한 후 국제유가는 단기적인 등락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U’자형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석유 매장량이 한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가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적으로 증산을 한다 해도 여유 생산량은 줄어들 것이고 2020년 무렵이면 생산량이 급감할 것입니다. 현재의 고유가는 장기적인 가격 상승곡선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사회: 제3의 오일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될까요.신교수: 2차 오일쇼크가 피크에 이르렀을 때 배럴당 가격이 36달러였습니다. 이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85달러에 달합니다. 올해 국제유가 평균을 60달러로 보면 오일쇼크 당시보다 저렴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거 오일쇼크는 정치적인 영향이 크게 개입된,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봅니다. 또 오일쇼크 이후 배럴당 18달러 수준의 저유가시대로 접어들었던 것과 같은 현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제유가 시장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전쟁, 자연재해 등 불확실성도 커졌지 않았습니까.구팀장: 신교수 의견에 동감합니다. 과거 오일쇼크와 최근의 고유가 현상은 많이 다릅니다. 오일쇼크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OPEC가 석유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석유를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석유 시장은 자유시장입니다. 가격이 비쌀 뿐이지 석유를 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설사 가격이 더 오른다 해도 과거처럼 타격이 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업의 석유 의존도가 낮아졌고 오일쇼크 이후 고유가에 대비한 완충장치도 많이 준비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쉽게 내려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뛸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OPEC의 공급능력이 단기간에 향상되지는 않을뿐더러 수요는 계속 늘어날 테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석유 자본들이 신규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다소 하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유 방출 결정 등 수요자측의 대응이 가격을 끌어내릴 것입니다.부경진 팀장(이하 부팀장): 유가가 무한정 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정 가격 이상이 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신ㆍ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날 테니까요. 현재 신ㆍ재생에너지의 보급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이상이면 신ㆍ재생에너지에도 수익성이 발생합니다. 80년대 개발되다 저유가 현상과 함께 개발이 중지됐던 오일샌드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현재의 유가 수준이 지속된다면 수익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유가가 65달러 정도면 신ㆍ재생에너지가 석유에너지를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어 그 이상의 가격상승은 힘들 것입니다.사회: ‘아시안 프리미엄’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석유를 구입한다는 얘긴데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구팀장: 1991~2003년의 구매 가격을 보면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평균 배럴당 1달러 정도 비싸게 구입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산유국들이 의도적으로 비싸게 판 것은 아니고 시장논리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중동 외에도 석유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합니다. 중동의 두바이유가 비싸면 다른 곳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공급원이 부족하죠. 수송문제 때문에 싸든 비싸든 중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해결방안은 대체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건데 쉽지 않은 일이죠.신교수: 그렇습니다. 유럽의 경우 중동이 아니라도 역내 생산물량이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서아프리카나 러시아에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워낙 막강한 산유국인데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원유를 들여올 수 있죠. 아시아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남미나 아프리카의 원유를 이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원유 자주개발률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원유 자주개발률은 3.8%, 일본은 10% 안팎입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93%, 이탈리아는 50%에 이른다고 합니다. 원유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단 자주개발과 구입가격의 관계는 좀더 확인해 봐야겠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남보다 몇 푼 더 비싸게 혹은 싸게 원유를 사온다는 것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사회: 자주개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최근 국내기업들이 해외자원 개발에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고 성과도 거두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중국, 일본, 미국, 유럽 각국 역시 해외자원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어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자원 개발이 더 활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신교수: 해외자원 개발 열기는 일단 한국이 자원확보를 위한 국제경쟁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수준은 일천합니다. 한국석유공사와 민간기업의 투자규모를 모두 합해야 미국이나 프랑스의 석유회사 하나의 규모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한국은 무엇보다 규모를 키워야 합니다. 자원개발은 특징상 리스크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재의 규모로는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확한 정보와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겁니다.구팀장: 사실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거의 없습니다. 자원개발의 역사가 겨우 10년에 불과해 경험과 기술, 자본이 모두 부족합니다. 게다가 현재 어지간한 유전은 거의 개발이 끝난 상태고 남은 곳은 개발비용이 많이 들고 오랜 경험과 앞선 기술이 필요한 오지와 심해의 자원뿐입니다. 신교수가 정보확보와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을 말씀하셨지만 경험과 규모가 작은 한국으로선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나마 우리만의 강점을 찾는다면 건설과 플랜트, 정보통신 기술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원개발을 할 국가들이 대개 후진국이기 때문에 자원개발의 조건으로 이들 산업을 통한 혜택을 준다면 승산이 어느 정도 높아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사회: 고유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신교수: 거의 ‘불감증’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죠. 1년 8개월 사이에 국제유가가 2배로 뛰었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요. 물론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가 위기에 대한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 국민들 역시 위기의식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단순히 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으로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적극 모색해야 합니다.부팀장: 종합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에너지 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 기본법’에 고유가에 대한 장단기 대책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는 등 기본법을 종합적이고 특별법적인 성격으로 만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구팀장: 사실 단기적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시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10부제가 완벽하게 실시된다 해도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는 0.8%에 불과합니다.사회: 에너지효율성(사용된 에너지의 양을 생산된 부가가치의 양으로 나눈 값)을 높이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신교수: 우리나라의 에너지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지만 사실 여부는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0% 이상이 산업용으로 쓰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석유화학업종에서 소비됩니다. 그중 80%는 에너지가 아니라 대체가 불가능한 제품의 원료용으로 사용됩니다. 에너지 소비량의 상당부분은 효율성이란 잣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철강산업의 경우 에너지효율성은 오히려 OECD 평균보다 높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돼야 합니다.구팀장: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효율성이 낮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우리가 특별히 낭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산업구조의 차이에 의한 결과입니다. 선진국은 우리에 비해 고부가가치 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입니다.신교수: 하지만 가정용 에너지에 대해서는 절약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많습니다. 유럽의 국가들처럼 어려서부터 에너지 절약 교육을 시켜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면 상당한 효과가 있겠죠.사회: 에너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국 적극적인 신ㆍ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이라고 생각합니다.부팀장: 시점상의 문제가 있겠지만 석유, 가스 등 화석에너지가 고갈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도 88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을 제정, 신ㆍ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1%에서 지난해 2.3%로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우선 현재 신ㆍ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은 쓰레기 소각으로 얻는 열에너지입니다. 전체의 97%나 됩니다. 신ㆍ재생에너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는 불과 3%뿐입니다. 이 비율을 역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량도 늘려야 합니다. 2006년까지 3%, 2011년까지 5%를 신ㆍ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204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5%를 수소에너지로 바꾸겠다는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향후 에너지 문제는 에너지원간의 경쟁이 아니라 에너지 기술간의 경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기술을 가진 국가가 에너지 문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입니다.신교수: 무엇보다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유가가 오를 때만 반짝 지원하는 식으로는 신ㆍ재생에너지를 개발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20년은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 정도는 돼야 의미 있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당장 내일부터 신ㆍ재생에너지가 실용화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구팀장: 동감합니다. 장기적으로 신ㆍ재생에너지로 가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신ㆍ재생에너지에 올인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경계해야 합니다. 신ㆍ재생에너지가 석유를 대체하기까지는 최소한 수십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부팀장: 앞서 언급했지만 지속적이고 일관된 투자를 위해서라도 에너지 기본법의 제정이 절실합니다.신교수: 석유의 고갈과 유가상승은 기정사실입니다. 정부는 이에 맞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에너지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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