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도 주식도 싫은 사람 모여라

원금 보장받는 ‘안전투자’ 최고 … 은행마다 신상품 개발 적극 나서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언제 떨어질지 몰라 고액투자는 망설여집니다. 여전히 재산의 상당부분은 은행에 맡깁니다.”몇 해 전 금융권에서 퇴직한 이모씨(57)는 다른 퇴직자에 비해 재테크에 밝은 편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서울의 한 뉴타운 후보지에 투자하기 위해 부동산중개업소에 수차례 찾아갔다.하지만 8ㆍ31부동산대책 발표 즈음 계획을 변경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부동산보다는 안정적인 ‘은행’을 택했다.이씨처럼 ‘부동산도 주식도 싫다’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 이들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은행 비중이 절대적이다.실제로 은행 수신이 2개월 만에 증가했다는 한국은행의 발표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7일 발표한 ‘8월 중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자산운용사의 MMF 수신은 1조1,000억원 줄어들어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주식형 수익증권은 1조3,000억원 늘어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채권형 수익증권의 경우 1조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그 결과 자산운용사 전체 수신은 9,000억원 증가에 그치며 전월 증가 수준을 밑돌았다.반면 은행 수신은 늘었다. 지난 8월의 은행 수신이 1조4,000억원 증가한 것. 일부 은행의 금리인상에 힘입어 정기예금이 2조3,000억원 늘었다. 또 단기시장성 상품인 양도성예금증서도 3조3,000억원 증가했다.안정성, 다양성으로 고객몰이은행을 찾는 고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먼저 ‘안정성’을 꼽을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예전에 비해 은행의 금리 조건이 아직까지는 낮지만 ‘안전성’ 면에서는 은행, 특히 우량은행이 탁월하다.은행에 꼬박꼬박 정기예금을 넣는다고 해서 4%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원금은 보장된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로는 보장될 수 없는 ‘원금 보전하기’를 은행만은 지켜주는 것이다.8ㆍ31부동산대책 이후 ‘부동산은 가고 주식이 왔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일반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주식투자가 만만찮다.실제로 최근 ‘개미’는 여전히 주식시장에서 소외됐다는 자료가 발표됐다. 지난 9월8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올 들어 7월까지 총 1조6,000억원 이상의 매매평가 손실을 입었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6,000억원과 4,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기관과 외국인투자가는 샴페인을 터트리지만, 개미는 여전히 그늘 뒤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일반투자자인 개미군단은 지난 5월부터 줄곧 순매도로 일관했다. 8월 중순에서야 비로소 순매수로 돌아섰다.반면 종합주가지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8월 중순부터 조정에 들어가 8월 말까지 60포인트가 떨어졌다. 9월 들어서도 개미의 낭패는 이어졌다. 개인은 1조원 이상 순매도를 이어갔지만 종합주가지수는 오히려 약 60포인트 올라섰다.이렇듯 뒷북치기 일쑤인 개미들 입장에서는 ‘은행’만한 투자처가 없다. 적어도 원금을 까먹게 만들지는 않아서다.정기예금에 가입한 뒤에 매달 꾸준히 일정액을 불입해 목돈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주식투자를 해오다 최근 손을 뗀 직장인 백모씨(28)는 “주식으로 돈을 벌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하루 종일 주가변동만 신경 쓰여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좀더 투자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아 계속 투자하다 결국 손해를 봤다”며 “원금을 보전하면서도 가입 상품의 리스크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는 은행이 최고다”고 덧붙였다.은행의 또 다른 메리트는 최근 크게 늘어난 ‘고금리 상품’ 등 ‘반짝 세일 상품’이다. 은행권 정기예금의 평균금리가 최근 3.0~3.5%인 반면, 일부 은행들이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특별판매 상품’의 금리는 4%대에 이른다.이들 고금리 상품은 나오기 무섭게 모두 팔려 고객이 금리에 특히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줬다.정기예금은 아니지만 연 4.0%대의 확정금리를 지급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또한 은행의 고금리 상품이다. 또 정기예금과 주가지수연동예금(ELD)이 혼합된 ‘퓨전상품’을 연 4.0%대로 판매한 은행도 있었다.다른 상품에 비해 리스크를 지닌 후순위채 또한 연 5.0%의 금리로 은행권에서 팔리며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1,000억~3,000억원어치의 후순위채를 선착순으로 판매한다고 공고하면 며칠 만에 매진행진을 기록하는 게 최근의 추세다.고객 입장에서는 은행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이런 고금리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올 초에는 적잖은 은행들이 금리가 높은 상품을 내놓으며 금리전쟁을 벌이기도 했다.은행 입장에서는 ‘금리경쟁’이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또 하나의 전략인 셈이다. 아울러 지난 9월8일에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콜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뜻 내비치기도 했다. 박총재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두고 오는 10월 콜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 있다.은행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상품의 다양성’이다. 은행은 소비자, 즉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전국에 방대한 점포망을 설치, 운영하며 가계, 기업으로부터 예금 형태로 자금을 유치하는 은행은 ‘데이터베이스(DB) 마케팅’이 탁월하다.고객세분화전략 상품에 반영은행에 계좌 없는 국민은 극히 드물다. 고객수라는 측면에서 절대강자인 은행은 방대한 분량의 고객 DB를 지니고 있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분석’이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다.이렇듯 고객의 성향과 니즈를 연령별, 성별, 직업별로 파악할 수 있는 은행은 아이디어가 듬뿍 담긴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최근에는 고객 세분화 전략을 상품에 반영하는 은행이 대거 등장했다. 실례로 여성고객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자녀출산, 결혼을 하는 여성에게 우대금리 혜택을 주는 은행상품이 선보였다.또 50세 이상의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건강관리서비스를 하는 예금상품도 두 달 만에 1만5,000계좌 넘게 팔려 나갔다.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히 분석, ‘주5일 근무, 레저 강화’라는 트렌드를 상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은행권에서는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이내에 완주한 고객에게 우대금리는 주는 상품도 등장했다. 이 상품 역시 하루 평균 110억원씩 팔려나가며 화제에 올랐다.이밖에도 급여나 아파트 관리비 등을 자동이체하면 전자금융 이용수수료를 깎아주는 상품 등 각종 이색 아이디어를 담은 상품이 속속 탄생했다.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의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은행들. 상품과 마케팅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저금리 기조에도 여전히 인기다.조병문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방대한 고객 DB를 지닌 은행은 상품개발에 유리하다”며 “수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조애널리스트는 이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의 정보교환이 가능해지면서 은행권에 판매하는 ELS(주가연계증권)와 같은 퓨전금융상품이 대거 등장했다”며 “앞으로는 불특정 다수보다는 재테크 노하우가 있는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다양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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