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대상 홍보 시급…세제혜택도 ‘필수’

영세사업장 등 퇴직급여 사각지대도 배려해야

엄현택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김인재 상지대 법학부 교수, 신기철 삼성화재 상무오는 12월 퇴직연금 시행을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다채로운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는 퇴직연금 전문가들의 고견을 듣기 위해 지난 8월29일 한국경제신문사 15층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 참석한 김인재 상지대 법학부 교수, 신기철 삼성화재 상무, 엄현택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등 전문가 3명은 ‘퇴직연금 정착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는 김상헌 취재팀장이 맡았다.사회: 퇴직연금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엄현택 국장: 퇴직급여보장법은 4년여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제정됐습니다. 지난 1월 금융기관 설명회를 거쳐 모인 의견을 참고해 지난 5월 시행령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지난 8월9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확정됐습니다. 법적 인프라는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은 것은 금융감독위원회의 구체적인 감독규정입니다.또 사업자와 금융기관이 기록 관리업무를 외부에 위탁할 수 있도록 관련기관의 요건을 정하는 일도 남았습니다. 기본 틀은 마련됐고 세부절차를 구체화하는 게 남은 과제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의 오는 12월 시행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까지 봅니다. 기존의 국민연금은 노후 소득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100% 믿음직스럽지는 못했습니다. 고령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이 보다 빨리 확산돼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들기도 합니다.신기철 상무: 사실 금융기관은 퇴직연금의 운용을 준비하는 입장입니다. 노동부와는 역할이나 성격이 크게 다른 셈이죠. 지금 상황에서 금융계가 준비해야 할 부분은 크게 3가지입니다. 상품개발, IT 사무관리 등 인프라 구축, 판매ㆍ관리직원 등 전문가 양성이 바로 그것입니다.이 가운데 금융기관별로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문은 IT 등 인프라입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 업계가 공동으로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현재는 공정거래법 규정상 공동개발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김인재 교수: 한국사회의 변천과정을 볼 때 지금은 퇴직연금이 도입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고령사회에서 퇴직연금은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됐습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사회: 퇴직연금이 오는 12월부터 시행되지만 그 개념조차 파악 못한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효과적인 홍보가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엄국장: 9월부터는 집중적으로 퇴직연금을 홍보하고 교육할 계획입니다. 홍보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퇴직연금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모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퇴직연금 홍보 팸플릿을 제작 중이며 퇴직연금 사업자와 지역별 공동순회 설명회인 로드쇼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홍보 팸플릿은 9~10월에 배부할 예정이며 무가지, 금융 관련 잡지, 노동뉴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알릴 계획입니다. 또 퇴직연금규약서 설계를 지도하고 심사할 근로감독관 대상의 교육도 실시 중입니다. 지역단위로 추가 교육과 관련 컨설팅 또한 준비 중입니다. 내년에는 퇴직연금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확산되기를 바랍니다.김교수: 퇴직연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잖은 이유는 퇴직연금이 강제적인 것도, 의무사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존의 퇴직금제도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현행 퇴직금제도가 유지, 존속되는 상태에서 퇴직금, 퇴직연금의 확정급여형(DB)제도, 확정기여형(DC)제도 가운데서 선택하게 됩니다.만약 현행 퇴직금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거나 퇴직금의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전환하고 임의제도를 도입했다면 노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겠죠.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방법 대신 정부는 점진적이면서 기업과 직장인에게 충격이 덜 가는 퇴직연금 도입방법을 택했습니다.또 새로 도입되는 퇴직연금제도에 대해 노사 모두 종전부터 요구했던 퇴직금제도 개선방안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 기업 관계자와 직장인이 관심을 적게 보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비용부담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수급권 보장이나 급여지급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겁니다. 노동부와 금융기관이 고령사회 대책이 되며 노후생활 설계를 위한 제도라고 널리 알리면 보다 많은 국민이 퇴직연금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퇴직연금을 ‘장밋빛 청사진’으로 그려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고 책임지는 건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의무이며, 정부는 이를 위한 큰 틀인 제도를 마련했다고 홍보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퇴직연금제도의 완비를 위해서는 노총과 각 경제단체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또 노사가 적극적으로 협의해서 각 기업에 맞는 퇴직연금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신상무: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다면 사실 근로자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본인의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바쁩니다. 이렇듯 시간여유가 없는 직장인에게 각종 연금제도의 전문용어는 어렵게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그 세부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습니다.이런 측면에서 노동부가 근로자에게 퇴직연금 교육을 1년에 1번 의무화한 건 잘 만든 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연금 시행 이후에도 의무적인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노동부의 전국 지방사무소를 통해 각 지역의 사업장에 교육해야 할 겁니다. 또 퇴직연금과 더불어 노후 소득보장을 할 수 있는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연계해 노후를 설계하고, 이 3가지 연금의 개념을 근로자가 모두 이해하도록 종합적인 설명서를 작성해 배포해야 합니다.사회: 퇴직연금의 핵심쟁점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히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가운데 어느 것이 유리한지를 놓고 각기 다른 말들이 오갑니다.엄국장: 확정급여형(DB)은 나중에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정해진 제도이며 확정기여형(DC)은 기업이 낼 돈, 즉 기업의 부담금이 일정비율로 확정된 제도입니다. 확정기여형(DC)은 적립금 운영실적에 따라 퇴직급여 수익이 달라집니다. 기존 퇴직금의 경우는 근로자에게 지급할 퇴직금을 사내에 적립해도 됐지만 DB형을 도입하면 사외에 60%를 적립해야 합니다.이 같은 DB형은 DC형에 비해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이 덜 보장됩니다. 또 DB형은 DC형에 비해 퇴직급여 통산(통합적 계산)이 어렵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최근 이직이 잦아지면서 근로자가 한 회사를 평균 6년 정도 다닌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평생 4~5개의 회사를 거친다는 얘기인데 DB형은 퇴직급여를 받을 때 통산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반면 DC형은 근로자가 어느 회사를 다니든 개인의 계좌에 매달 퇴직급여가 누적됩니다. DB와 DC형은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DC형을 좀더 선호합니다. 단 근로자가 근무하는 기업이 안정적이며 임금인상률이 퇴직연금 운용수익률보다 높을 경우 DB형을 선택하는 게 더 낫습니다.김교수: 근로자가 일하는 회사의 수명이 짧다면 DC형을, 영속적이라면 DB형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외에도 자본시장을 어느 정도로 신뢰하는지도 DC형, DB형 선택에 관건이 됩니다. 10년, 20년 후까지 금융시장을 믿고 맡길 수 있을지 그 판단 여부가 DC형, DB형 논란에 영향을 끼칩니다. 근로자의 수급권 보장의 관점에서 DB형은 사용자의 도산이나 금융기관의 지급불능에 대한 지급보장장치가 중요합니다. 또 DC형은 자본시장이 불안한 경우 운용수익률에 따른 근로자의 위험부담이 쟁점이 됩니다.위험자산 투자비율이라는 논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금융기관이나 사용자, 근로자가 적립금을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가는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제도 도입 초기에 가입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위험자산 투자비율의 제한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법령에 규정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은 제도가 성숙하고 우리 금융시장의 성숙도에 따라 앞으로 그 비율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신상무: 산업간 경쟁이 치열해 기업수명이 짧은 전자업체, 연봉제를 적용하는 사업장, 근로자수가 적은 중소기업은 DC형이 적합합니다. 반면 기업 수명이 긴 업종이나 공기업 등에는 DB가 적당합니다.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본다면 대표적 안정산업이었던 제철회사와 항공사 중 일부가 몇 년 전 도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연금지급보증기구(PBGC)가 제철업계, 항공사에 대한 연금지급보증 문제로 장부상 파산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미국, 영국 등 퇴직연금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투기적인 행태를 막기 위해 DB형에 대해서만 주식 등의 위험자산 투자를 제한합니다. 반면 DC형은 투자에 대한 부담이 근로자에게 귀속되므로 위험자산 투자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노총(TUC)에서 특정 금융회사를 지정해 여기서 제공하는 라이프사이클펀드(Life Cycle Fund)를 근로자들이 선택하면 근로자들은 투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금융회사에서 일괄 관리합니다.반면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에서는 DC형에 대해서만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을 40%로 정했습니다. 향후 퇴직연금제도가 정착된다면 주식투자 비율 제한을 재논의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사회: 모든 것이 그렇듯 퇴직연금 역시 소프트랜딩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해법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엄국장: 세제문제를 꼽고 싶습니다.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이 퇴직금보다 유리하다는 실천적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퇴직금보다 퇴직연금 선호도를 높게 만들려면 퇴직금의 세제혜택은 줄이고, 퇴직연금의 세제혜택을 늘려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세제당국이 노동부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어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노동부는 9월부터 퇴직급여 전담부서를 만듭니다.김교수: 그 무엇보다 정부는 노사당사자에게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취지를 정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현행 퇴직급여제도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게 주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죠. 퇴직연금과 더불어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국민연금제도 확충도 필요합니다. 근로자들이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제도 자체에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국민연금이 안정된 뒤 퇴직연금과 결합돼야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공적연금부터 신뢰해야 퇴직연금도 믿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정부는 연금감독 강화와 지급보장장치 마련, 세제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법에는 퇴직연금심의위원회가 규정돼 있는데 이 기구를 보안해 국민연금감독기구 같은 퇴직연금감독기구가 필요합니다.신상무: 퇴직연금제도가 조기에 정착되기 위해 초기 2~3년간은 제도도입의 활성화단계, 4~5년간은 관련 인프라 구축 단계, 이후에는 각 퇴직연금제도들의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단계 등으로 예시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DB형 퇴직연금제도에 대해서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규제와 감독체계를 합리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DB형 퇴직연금에서 적정한 책임준비금의 적립과 지급보장제도의 도입은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주요 정책과제가 돼야 할 겁니다. 사용자단체에서는 퇴직연금 부담금이 법에 의해 근로자들에게 지급돼야 할 비용이라면 실질적인 기능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계에서는 퇴직연금제도가 노후소득 보장장치로 확실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한 감시, 근로복지제도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서 제도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또 퇴직연금사업자들은 각 금융권역의 강점을 살려야 합니다. 보험사는 기존의 복지제도에 대한 컨설팅은 물론이고 종신연금, 물가지수연금 등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 퇴직연금제도의 실질적인 노후생활연금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은행은 신탁업 전문기관으로서 자산관리계약의 효율화를 기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산운용회사는 퇴직연금제도의 성격에 맞는 다양한 간접투자상품을 개발해야 합니다.사회: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은 퇴직급여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김교수: 제도의 소프트랜딩을 위해서는 퇴직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볼 수 있는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영세사업자는 단일사업장으로 관리하기보다는 업종 단위로 퇴직연금제도를 관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영세사업자를 퇴직급여에서 소외시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결국 훗날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합니다.엄국장: 정부도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연간 1조원이 넘는 체불임금의 60~70%인 6,000억~7,000억원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퇴직금과 퇴직연금 DB제도, DC제도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퇴직급여제도의 의무화를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시행 시기를 정할 예정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퇴직급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부에 연구회를 조직할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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