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장 115만이 뛴다

8월24일부터 대구광역시에서는 21개국 여성기업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APEC-WLN(Women Leaders’ Network)이 열린다. APEC 중소기업 장관 회의와 연계해 APEC 지역 내 여성의 경제활동과 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는 이 행사는 한국 여성기업ㆍ여성경제인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와 마찬가지다. 행사를 주관하는 정명금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은 “90년대 이후 여성기업의 수적, 질적 성장이 뚜렷하다”면서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닌 한국 여성경제계의 파워가 반영되는 자리”라고 힘주어 말했다.굳이 APEC-WLN 개최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 여성기업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중소기업이 부각되면서 여성기업의 약진 또한 뚜렷해졌다. 99년 96만개로 전체 사업체의 34.6% 수준이었던 여성기업은 2003년 114만6,000여개로 36% 수준까지 증가했다.또 여성경제활동참가인구는 99년 49%에서 지난 5월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51% 수준으로 높아졌다. 남성이 1,400만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중소기업청은 앞으로 2년 이내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6%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학계에서도 여성기업의 비율이 조만간 미국 수준인 40%대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본다.전세계적으로도 여성기업의 약진은 공통된 현상이다. 여성창업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조사결과에서부터 세계 기업 중 4분의 1이 여성 소유이며, 유럽에서는 창업자 중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특히 미국은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신속히 적응하는 개방적 문화와 정부 지원으로 여성기업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여성이 비즈니스 중심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여성기업이나 여성기업인은 찾아보기 드물었다. 1972년 주부에서 애경 CEO로 취임해 중견그룹을 일궈낸 장영신 회장 정도만이 대중적인 여성기업인으로 이름을 알렸을 뿐이다.하지만 90년대 들어 고학력과 전문직 경력으로 단련된 야심만만한 여성인재들이 대기업 임원에 오르고 각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IMF 위기 이후에는 가장을 대신해, 혹은 가장과 함께 가정을 꾸리려는 허즈와이프(Husband+Wifeㆍ여성가장)가 대거 등장해 창업시장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여성기업의 90% 이상이 도소매, 서비스업에 치중돼 있는 것도 이 시기 생계를 위해 사업을 시작한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한편에선 벤처 붐에 힘입어 여성 벤처CEO가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수백억원대 주식을 보유한 갑부 여사장도 여럿 나왔다. 이들은 특유의 꼼꼼함과 순발력, 부드러운 감성을 기술과 마케팅에 두루 도입해 벤처거품이 빠진 이후에도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성공률과 안정성을 자랑한다.여성기업, 여성기업인의 활약은 강도를 더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여성적 리더십’은 미래의 경영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 남성 위주의 사회였다면 3만달러까지는 여성의 시대”라고 역설한 바 있다. 힘으로 승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지혜로 승부하는 시대가 열렸고, 그 주역은 여성기업인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맥 휘트먼 이베이 CEO도 “신뢰감을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관한 한 여성경영자가 유리하다”고 말해 여러 세기 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CEO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설명한 바 있다.국내에선 99년 제정된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에 따라 마련된 갖가지 여성기업 지원정책을 활용하려는 이들이 매일 관련단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고재범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 사무관은 “여성기업의 수적 증가세가 일반기업에 비해 웃도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여성기업 지원정책을 적극 활용해 한 단계씩 올라서려는 여성기업인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김용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기업경영을 통해 승부를 보겠다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성공전략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에 톡톡 튀는 감성과 e비즈니스를 접목, 부가가치를 높이라고 조언하곤 한다”고 말했다.하지만 문제도 적잖다. 뿌리 깊은 유교적 인식에 따른 편견과 차별은 여전하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철가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M사장은 “기업운영자금대출을 받는데 왜 남편의 신용도가 기준이 되는 거냐”며 “경제인 모임에서도 편견과 차별을 간혹 느낀다”고 밝혔다. 여기에 육아와 가정에 대한 책임도 대단한 무게다. 마음 놓고 일하기 힘든 환경은 여성직장인이나 기업인이나 마찬가지다.‘여성기업이니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식의 태도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성기업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술력, 제품력을 유연하고 친화적인 경영능력으로 커버하는 것은 좋지만 이미 국경, 성별 없는 전쟁이 치열한 만큼 강한 경쟁력부터 갖춰야 할 것”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또 “여성기업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보호육성에서 자율경쟁으로 옮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지원정책 수혜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체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여성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더구나 얼마나 빨리 남녀 공동의 힘으로 경제발전을 일구느냐가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생겼다. 분명한 것은 무한경쟁을 이겨내는 강한 여성기업이 늘어날수록 한국경제호는 힘찬 항해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