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중형차에서 고급세단 ‘이미지 Up’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한국차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다른 모델들과는 달리 한 가지 이름을 데뷔 이래 사용하며 5대째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쏘나타는 데뷔한 지 20년 동안 차명이 바뀌지 않은 유일한 한국산 차종이다. 또한 단일 브랜드로 250만대 이상 생산한 최초의 한국산 중형차로 우리나라 자동차의 기술적인 발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다.더불어 쏘나타는 한국의 자동차문화를 리드해 온 자동차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쏘나타는 한국차만의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해외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가대표 모델이다. 해외에서는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보다 쏘나타라는 차명이 더 알려져 있을 정도다. 지난 5월 연산 3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 뒤 쏘나타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물론 그것은 판매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세대 쏘나타의 판매는 연간 12만대 전후였다. 그런데 2세대가 등장하자 판매는 두 배로 뛰었다. 피크였던 1996년에는 24만대까지 치솟았다. 3세대는 IMF라는 상황 때문에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쏘나타는 또 모델체인지를 할 때마다 진보된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1세대 쏘나타는 에어컨, 파워 스티어링 등 그때까지 옵션이었던 것을 기본 품목으로 했다. 2세대 쏘나타는 ABS를 비롯해 SRS 에어백, 전자제어 현가장치 ECS 등 안전장비 강화가 주목을 끌었다. 쏘나타3는 특히 소음에 신경을 써서 우레탄 소음재 HHF, 액체 봉입형 엔진 마운팅을 적용하고 바닥과 측면에 소음재를 강화해 N. V. H(소음진동강성) 최적화를 통해 정숙성을 유지했다. 이밖에도 속도 감응형 파워 스티어링 EPS, 듀얼에어백, TCS 등의 첨단장비와 급격히 늘어나는 레저인구를 위한 스키 스루 기능 등을 갖추는 등 중형차로서 부족함 없는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골고루 갖췄다.그리고 4세대 모델인 EF쏘나타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감성품질’이라는 단어를 도입해 자동차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 차원에서도 글로벌화의 기점을 마련한다.그 결과가 최근 미국 JD파워사와 컨슈머 리포트의 품질조사에서 도요타와 비슷한 품질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쏘나타는 이제 더 이상 한국차가 품질이 떨어지는 하급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첫 번째 모델인 셈이다.또한 쏘나타의 심장으로 현대가 자체 개발한 V6 델타엔진에 이어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도 공급하는 쎄타엔진이 이식됐다. 여기에 신개념 트랜스미션 하이벡AT도 빼놓을 수 없는 장비다.스타일링과 디자인에서도 역사만큼이나 많은 발전을 이룩해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1세대 모델부터 시작해 NF쏘나타에 이르기까지 항상 변화를 거듭하며 소비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물론 초기 모델은 이탈리아 디자인업체에 의뢰해서 제작했지만 이제는 자체 디자인팀에 의해 만들어낼 정도의 기술력도 확보하고 있다.특히 실내공간 확보에서는 세계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EF쏘나타의 실내장×폭×고가 1,970×1,480×1,165㎜인데 이는 쏘나타Ⅰ의 1,930×1,460×1,155㎜와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 모델들은 동급 모델로 쏘나타보다 넓은 실내공간을 가진 차는 없다.편의장비 면에서도 일본차와 경쟁을 하는 수준에까지 올라왔다. 틸트 스티어링은 기본이고 전동식 사이드미러 조절장치, 뒷좌석 암레스트, 각종 컵홀더 등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앞장서 도입했다. 거기에 유아용 안전시트라든가 12V 파워 아웃렛, 항균 에어필터, 유해가스 차단장치, 적외선과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솔라 컨트롤 글라스 등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를 수 있는 내용들까지 가득하다. 이처럼 호화로운 편의장비를 장착하고도 쏘나타는 한국시장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그렇다면 현대자동차는 쏘나타를 통해 무엇을 추구해 왔을까.현대자동차에 있어 쏘나타는 넓은 실내공간과 쾌적성, 부드러운 승차감 등을 표방하며 앞바퀴 굴림방식의 중형 세단 패밀리카를 의미한다. 물론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20년 동안 이 컨셉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힘을 키워왔다.쏘나타의 스타일링은 스케일을 중시하는 미국시장 오너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졌고 쏘나타는 미국시장에서도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해왔었다. 하지만 미국시장에는 부동의 베스트셀러 승용차인 혼다 어코드와 도요타 캄리가 버티고 있다. 이 두 모델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자 타도해야 하는 목표였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그랜저XG를 XG350이라는 차명으로 미국시장에 출시해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역부족이었다.그래서 5세대 쏘나타로 바뀌면서 등급을 한 단계 올려 이 두 모델을 공개적으로 경쟁상대로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EF쏘나타는 미국식 분류로는 콤팩트급에 속하고 캄리와 어코드는 로어 미들급에 속한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5세대 쏘나타의 포지셔닝을 로어 미들 클래스로 올려버린 것이다. 캄리는 전장이 4,805㎜, 어코드는 4,830㎜다. 엔진은 두 모델 다 2.4ℓ와 3.0ℓ가 있지만 중심은 3.0ℓ다. 현대도 그런 점을 감안해 미국시장에는 3.3ℓ 엔진을 기본으로 2.4ℓ를 추가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더군다나 지난해 5세대 쏘나타(NF)가 탄생하면서 각종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도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 등 해외 경쟁차 대비 품질과 성능의 우수성이 입증됐는데, 이것은 향후 쏘나타가 브랜드 영속성을 이어갈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세대 쏘나타는 ‘쏘나타’라는 브랜드를 ‘국민중형차’에서 ‘고급세단’으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인 셈이다.하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쏘나타가 세계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고하게 구축했다고는 볼 수 없다.일본 도요타는 저가차라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렉서스라는 전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공략했었다. 도요타는 렉서스 마케팅의 성공으로 도요타뿐만 아니라 일본차 전부를 품질이 좋은 차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다. 렉서스라는 파격적인 마케팅을 도입해 저가차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도요타는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도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인정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었던 것이다.지금 현대자동차의 쏘나타가 초기품질에서 일본차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외시장의 소비자들이 쏘나타, 아니 한국차에 대해 아직까지는 높은 신뢰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현대자동차측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의 판매가 급신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미국의 자동차 구매자 중 80%는 현대를 모르거나 혹은 좋아하지 않거나 현대라는 브랜드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한 현대자동차가 지금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세계적이라거나 도요타가 견제를 해 부품을 공급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저가시장에서 괜찮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그 지위마저도 언제까지나 유지되리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일본 메이커들이 다시 저가 시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공략하기 시작했고 중국산 모델들이 벌써부터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게 됐을 때보다 시장환경이 더욱 어려워졌다.때문에 더욱 구체적이고 정밀한 시장 침투전략을 전개해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처지라고도 할 수 있다.그래서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초 브랜드경영을 선언했다. 세계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올 여름 와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글로벌 톱100 브랜드에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84위에 랭크되면서 현대차그룹의 브랜드경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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