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사고로 장애 이겨냈죠’

불확실한 미래 대비 위해 창업, 해외진출 본격화

약력: 1961년생. 79년 부산여고 졸업. 84년 부산대의류학과 졸업. 94년 대전시스템공학연구소(SERI) 연구원. 95년 세리콤 실장. 97년 모든넷 사장(현). 2004년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이사(현). 국가기술혁신특별위원회 지역기술실무위원(현). 계명대 겸임교수(현)e러닝 솔루션 기업인 모든넷의 신순희 사장(44)의 성공은 특별하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데 불리한 모든 악조건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우선 여성이다. 게다가 지방기업이다. 더욱이 장애인이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탓에 다리가 불편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조건들은 신사장에게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극복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했다.“성격이 워낙 적극적이에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헤쳐 나가야 직성이 풀리죠. 다리가 불편하다고 놀리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진짜 친구로 만들곤 했죠.”신사장이 모든넷을 창업한 것은 1997년이었다. 악조건을 두루 갖춘 만큼 특별한 창업 동기가 있을 만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평범한 이유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그렇게 10년차 전업주부인 신사장은 일을 찾아 나섰고 기업인이 됐다. 다행히 늦깎이로 배운 컴퓨터에서 재능을 발휘, 대전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채용됐고 인터넷 사업을 하는 회사로 이직, 경험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하고 싶은 일은 꼭 하는 성격인 걸 알아서인지 주위의 반대는 없었어요. 남편은 오히려 창업을 권유했어요. 미래를 위해 그편이 낫다는 거였죠.”사업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기업인은 기피 대상이었다. ‘허수아비’ 취급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투자상담이 막바지까지 진행됐다 탈락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창업 시기도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몇 년 후에는 벤처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넷은 꿋꿋이 견뎌냈다.“벤처기업의 몰락은 무리한 투자유치 탓이 크잖아요. 하지만 모든넷은 애초부터 외부투자가 거의 없었어요. 투자를 받으려면 회사든 제품이든 그럴듯하게 꾸며야 하는데 그런 재주는 없었어요. 게다가 지방기업이잖아요. 차근차근 내실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었죠.”신사장의 성공에는 남편인 이종열 상무의 힘이 큰 보탬이 됐다. 창업 1년 후 합류한 이상무는 모든넷의 기술개발과 수출업무를 지휘하고 있다. 대기업 경험이 없는 신사장이 부족한 조직관리도 이상무의 몫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궁합이 잘 맞은 것은 아니었다. 싸우기도 무수히 싸웠고 틀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전쟁을 치르듯 의견을 맞춰 나갔어요. 단순히 남편과 아내라면 그렇게 다툴 이유도 없었겠지만 회사 일에서만은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죠. 1년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합의점이 생기더군요.”신사장은 기업인으로서 자신의 핸디캡을 하나하나씩 극복해 나갔다. 여성이라는 점과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지방기업의 한계가 그것이다.“3년 전에 서울지사를 설립했습니다. 전국적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었죠. 서울지사의 활용범위와 효율성을 높이는 게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모든넷은 최근 새로운 활로를 뚫었다. 일본의 IT기업인 ‘리온’에 멀티미디어 동영상 제작시스템인 ‘M 튜터’를 수출한 것. 이전에도 수출을 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의 실적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과거 수출이 일회성이었다면 이번에는 장기적인 공급계약이다. 갑자기 벌어진 일은 아니다. 지난 1년간 리온과 꾸준히 거래하면서 신뢰를 쌓은 결과다.“어릴 적부터 꿈이 있었어요. 장애인과 노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선 회사가 반석에 올라야겠죠. 이번 일본진출을 계기로 판로를 전세계로 확대해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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