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불확실성이 화를 더 키운 겁니다’

대담 = 양승득 편집장“X파일 문제는 서둘러 수습해야죠. 선정적인 말싸움으로 문제만 증폭시키면 어쩔 겁니까. 정치권에서 양식을 발휘해 엉뚱하게 낭비 중인 국민적 에너지를 한데 모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ㆍ일본 등 나라 밖 경제는 회복이니 급성장이니 하는데 여기선 서로 할퀴기만 하니 장래 전망이 비관적인 건 당연하죠.” 노성태 한국경제연구원장(59)은 참여정부의 경제점수를 60~70점으로 매겼다. 변혁이 불가피한 정부출범 1년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다지만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 개혁을 부르짖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대표적인 실패정책으로는 ‘부동산’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그간 적잖은 투기억제책이 쏟아졌지만 하나같이 문제를 확대ㆍ되풀이했다고 평가한다. 망국적 투기를 막을 방법도 제시했다. 장기 공급확대다. 그는 “아직 주변에는 주거지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땅이 많다”며 “합리적인 토지이용이 충격요법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내다봤다.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14년을 근무했다. 1984년에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90년대에는 한화경제연구원장으로 재직했다. 뛰어난 필력으로도 유명하다. 과 에서 각각 주필과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학문적 백그라운드를 현실경제에 접합시켰다. 지난 4월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컴백했다.참여정부가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그간의 경제성과를 평가해 주십시오.어쨌든 경제 운용실적으로 보면 좋은 성적을 주긴 힘들겠죠. 참여정부 2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도 실적이 안 좋아요.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하고요. 회의적이고 비관적일밖에요. 대개 취임 1년 정도는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출도 비교적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성장에 그쳤어요. 다른 부문은 몰라도 최소한 경제부문은 아닌 것 같아요. 100점 만점으로 굳이 따진다면 60~70점대가 될까 모르겠네요.그럼 이유가 뭡니까.참여정부의 핵심은 역시 386세대예요. 이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오죠. 그런데 이 그룹과 행정부 경제관료들 사이에 사고와 경험의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경제참모와 실행부서 사이에 정책합의(컨센서스)가 없다는 얘기에요. 불쑥불쑥 다른 주장들이 강조됩니다. 결국 정책의 일관성 문제인데요. 이런 불확실성이 기업ㆍ가계를 위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경영환경이 불안을 더 키운 셈이죠.대통령의 경제리더십은 어떤가요.참여정부의 철학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정책에서 혼란을 야기한다는 게 문제예요. 청와대에서는 진보적 정책이 세워졌는데, 실제 정책은 경제부처 관료에게 의지합니다. 상충될 수밖에요. 이때 조정도 못했고요. 방향지시가 처음부터 확실했다면 이런 불확실성은 없었을 겁니다.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중 실패 혹은 성공한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역시 부동산정책이 가장 나빴어요. 나머지는 그다지 크게 추진한 게 없으니 잘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그간 부동산대책은 엄청 쏟아졌어요. 그럴 때마다 실수를 확대ㆍ되풀이했죠. 부동산값이 뛴 건 돈(유동성)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금융이 투기 붐에 불을 댕겼다고 봐야죠. 여기에 정부의 개발계획 같은 게 시세를 부추겼어요. 투기억제책이란 것도 시장의 수요공급은 무시한 채 강경일변도의 미봉책에 불과했죠. 해결책은 간단해요. 부동산 관련 대출을 조절하면서 시간을 주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죠. 단번에 뽑으려니 문제예요.최근 위기란 표현이 부쩍 늘었습니다. 과거 위기와 비교해 어떤가요.향후 정책방향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질문입니다. 일단 집값에 낀 거품을 어떻게 꺼뜨리느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충격 정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 또다시 잘못된 대책이라면 건설시장에까지 타격을 줄 거예요. 이는 최악의 경우 금융부실로까지 이어질 거고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시발도 부동산 거품붕괴부터예요. 중앙은행이 너무 초강경으로 금융긴축을 실시한 게 줄도산으로 이어졌죠. 우리도 잘못하면 중대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어요. 연착륙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정부 대응이 궁금해요.리더십 부재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비단 참여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과거 정부도 다 그랬죠. 정부란 건 말년에 들어가면 대개 어려워집니다. 남은 임기 동안 정부가 뭘 해주고 나갈 건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차기집권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너무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정책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죠. 레임덕의 출발이에요. 경제학자로서 희망은 경제문제에 최대한 기여해줬으면 하는 거예요.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하면 그게 장래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기업의 신규투자가 얼어붙었습니다. 투자활성화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입니까.정부는 자꾸 기업들이 엄살을 떤다고 해요. 연구개발도 안 한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규제완화ㆍ철폐만 요구한다고 불만이죠. 투자하지 않는 책임이 기업에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사실 기업의 관심은 돈벌이에요. 돈을 벌 것 같으면 당연히 투자하죠. 현재 기업으로서는 여건이 굉장히 안 좋아요. 출자총액제한만 해도 투자에 영향을 많이 미치죠. 신규사업을 하려면 돈을 버는 데서 끌어와야 하는데 이를 제약하면 힘들어질밖에요. 노사관계의 경직성도 마찬가지로 투자의 걸림돌이죠. 어떤 때는 노조 편을 들어주고, 어떤 때는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정부의 일관된 방향이 없어요.참여정부의 개혁이 투자환경을 악화시킨 면도 있습니다만.보통 집권 1년 때까지 개혁ㆍ사정ㆍ변혁을 내세우죠. 투자ㆍ소비가 꽤 위축됩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 방향을 선회해 경제문제에 본격 매진하죠. 2년차부터는 으레 경제가 좋아진다는 게 과거 패턴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게 불분명해요.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도 계속 개혁을 부르짖어요. 제대로 실천ㆍ진전된 것도 없으면서 말만 떠돕니다. 기업ㆍ가계가 불안할 수밖에요. 화끈한 투자는 없죠. 투자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투자환경이 악화된 이유가 더 커요.기업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은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희생도 많이 당했고요. 사실 외환위기는 정부 → 금융 → 기업 순서로 책임이 큰데, 정작 제일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건 기업이에요. 어쨌든 이 때문에 기업투명성은 아주 좋아졌죠. 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해 기업 자체의 노력이 있었어요. 정부압박과 시장주문도 한몫 했고요. 물론 여전히 과거 유산은 남아 있겠죠. 하루아침에 바뀌나요. 이건 기업이 숙제로 풀어야 할 문제예요. 특히 윤리경영에 공을 들여야 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식은 싫다’며 무조건 숫자만 갖고 서양식을 좇으려는 국민정서도 문제예요. 도저히 지키지 못할 기준을 제시해 적응하라며 요구하는 건 무리에요.신성장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최근 강점을 가졌거나 기대 분야에서 찾아야 할 거예요. 반도체 중심의 IT산업이 유력할 것 같아요. 생명공학도 기대해봄직한 분야고요. 노력해야 할 건 서비스부문이에요. 서비스도 곧 개방문이 열릴 거예요. 금융ㆍ관광ㆍ교육 등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IT(정보기술)ㆍBT(바이오기술)도 좋지만 전통산업 중에서 발상을 전환하기를 권해요. 조선ㆍ자동차 등도 향후 충분히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겁니다.참여정부의 반기업정서는 개선된 것 같습니까.지난해 말까지는 정부와 기업의 대립각이 컸었죠. 올 들어서는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기업을 이해하려는 측면이 많아졌고, 기업도 너무 예민한 반응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관계 개선이 참 다행이에요. 문제는 국민 사이에 퍼진 반기업정서예요. 학자에 따라 굉장히 심하게 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인 중국보다 기업에 대한 반감이 더 심하다는 분석도 있어요. 정부가 ‘자유ㆍ시장경제’라는 국정의 기본원칙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내년 경제전망을 부탁드립니다.현재로서는 올해보다 더 좋아질 게 있겠냐는 정도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4% 정도의 성장은 가능할 것 같아요. 우리 연구원 분석을 종합하면 내년에 4%의 성장률이라면 잘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원래는 더 회복될 가능성이 높지만, 자꾸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있어 부담스럽네요.약력: 1946년 부산 출생. 69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4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69년 한국은행 입행ㆍ조사역. 90년 한화경제연구원 원장. 99년 한국경제신문 주필(상무). 2001년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ㆍ논설위원. 2005년 한국경제연구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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