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유머강사…‘웃기는 리더가 성공’

“아직 한국은 유머경영 태동기라고 봅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그런 만큼 유머강사 입장에서 할일이 많고, 기업들 역시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국내 1호 유머강사로 꼽히는 김진배 유머경영연구원장(47). ‘웃음전도사’의 맏형답게 항상 어떻게 해야 유머경영이 제대로 뿌리내릴까를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직업과는 다르게 너무 진지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유머경영의 효과는 확실합니다. 같은 조건을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CEO가 각 분야에 유머를 접목하면 분명히 성과가 좋아집니다.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직원들을 대할 때도 일방적으로 다그치기보다 부드럽고 유쾌하게 풀어야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법이지요.”더 나아가 김원장은 ‘유머형 인간’, ‘웃기는 리더’가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직장인의 경우 예전에는 시키는 일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창의력과 순발력, 톡톡 튀는 아이디어 등을 겸비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지금은 정보화시대죠. 근면과 성실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인간형이 필요하고, 창의력이나 순발력 같은 것도 이런 사람들한테서 잘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대중을 상대로 유머를 강의하지만 사실 김원장은 젊은 시절 고된 삶을 살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대리운전을 해야 했고, 자가용 운전기사를 한 적도 있다. 출판사에 다니며 책더미를 지고 이리저리 뛴 기억도 또렷하다.하지만 이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학 내 팬터마임 동아리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늘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곤 했다. 또 80년대 초 시간만 나면 당시 산업강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천세욱씨 등의 강의를 들으며 어떻게 하면 남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80년대 후반에는 대학가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던 마광수 연세대 교수 등의 강의실에 녹음기를 들고 들어가 강의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오기도 했다.“이미 대학에 다니면서 유머강사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죠. 늘 ‘웃을 때가 천국이요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요인도 있지만 팬터마임을 하면서 스스로 무대체질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마침내 91년 유머개발연구원을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수강생을 받아 직접 교육에 나섰고, 기업체 문도 두드려 직장인을 상대로 강의할 기회도 하나하나 얻어나갔다. 초기에는 유머강사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도 많았지만 책도 내고 강의를 자주 나가면서 외부에 두루 알려지게 됐다. 최근 들어 유머경영이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전국을 누비며 청중을 상대한다.“예전에는 일부 기업을 상대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대기업, 경영대학원, 공사, 정부기관 등에서 요청이 너무 많아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하루에 두세 번 강의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요.”무대에 서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김원장의 꿈은 소박하다. 한국인의 유머코드를 많이 전파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언젠가는 한국의 직장인들이 신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론을 담은 책을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1958년 서울 출생. 76년 건국대 축산학과 입학. 건국대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 다시 86년에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해 90년 졸업. 90년 감신대 대학원 입학. 91년 유머개발연구원(유머경영연구원 전신) 설립 △저서: 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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