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흐림’…펀드 ‘맑음’

출판계는 올해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겹게 보내고 있다. 매년 써왔던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이란 단어가 호들갑스러운 수사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최악의 불황 속에서 대안을 못 찾는 현실적 낭패감만 곱씹으며 버티고 있다.무엇보다 장기불황에 따른 내수시장의 부진은 책마저 가계지출의 최우선 기피 대상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최악의 판매부진을 보이고 있다. 여름휴가철임에도 딱히 판매부진에서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요즘 재테크서적의 풍향계를 대략적으로 표현하면 부동산 관련 도서는 ‘흐림’, 주식 관련 도서는 ‘약간 흐림’, 펀드 관련 도서는 ‘맑음’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2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부자 관련 도서가 새롭게 약진을 하고 있으며, 한때 온 나라를 로또와 함께 떠들썩하게 했던 ‘10억 만들기’ 열풍은 퇴조세가 뚜렷하다.지난해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으로 주택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토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김혜경, 국일미디어), (조성근, 한국경제신문사>, (박용석, 시대의 창>, (안명숙, 한국경제신문사>, (곽창석, 아라크네)과 같은 땅 재테크 실용서들이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다. 그나마 출판사들에 급한 불을 끄게 해준 고마운 책들이었던 셈이다.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부동산 관련 책들은 정부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정책적 혼선과 규제 일변도의 정책 남발로 베스트셀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땅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열기가 많이 식은 상태이다.이에 비해 독자들의 부자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여전한 것 같다. 최근 인기를 끄는 (조상훈, 명진출판),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명진출판), (한동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심영철, 팜파스), (한동철, 국일미디어) 등의 예에서 보듯이 관련 서적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다 반응도 좋다.이들 책을 쓴 필자들은 기자, 교수, 은행원, 개인투자자까지 다양하다. 취재와 경험, 부자들에 대한 통계적 통찰을 바탕으로 해서 독자들에게 돈 버는 방법과 그들만의 노하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변함없이 독자들은 불을 좇는 불나방처럼 ‘부자’에 이렇게 매달리는 것일까.한국사람처럼 열심히 사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목표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한때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장안의 화두가 된 적도 있다. 2년 전에 10억원 모으기 열풍은 이런 독자들의 욕망의 풍속도를 반영한 단면일 것이다. ‘진정한 부의 기준과 가치는 진정 무엇이며 당당한 부라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 속에 부자 열풍이 독자들에게 아직도 유효한 관심사인 것이다.우리나라 상위 1%가 전국 토지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현실에서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느끼는 빈익부 부익부의 괴리감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의 도덕적 해이가 주는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 속에 감춰진 이율배반적인 부자의 유혹이자 모순이야말로 우울한 미래의 불길한 예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전통적 유교사회에서 부자는 질시의 대상이었고 해방 후 한국사회에 도입된 천민자본주의의 횡횡은 더욱 부자를 경원의 대상으로 만든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황금가지)의 놀라운 판매는 책의 판매를 넘어 우리에게는 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 삶의 소구점을 새삼 점검하게 만드는 핵폭풍과도 같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그런 맥락에서 나온 (한상복, 위즈덤하우스)에 열광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부자에 대한 인식전환을 넘어 부에 대한 추구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삶의 중심적 주제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사건이었다.앞서 언급했듯이 부자에 대한 열풍은 더욱 각박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대비를 말하고 있다. 2030년에는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정말 ‘20년 벌어 50년’ 먹거리를 준비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는 다른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하게 한다.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10억원이 주는 마취적 감흥의 강도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 속에 냉정하게 검증되기 시작했다. 그 검증의 현실적 필터를 거치면서 10억원은 ‘나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즉 대안이 아닌 단지 신기루와 같은 존재라는 점을 독자들이 스스로 깨달으면서 ‘10억원 만들기’는 급속도로 퇴장하고 이후 나온 것이 펀드 관련 책들이다.올 상반기에 14쇄를 찍은 (강창희, 팜파스)에서 필자는 인생 노후를 펀드로 대비하라는 좀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 펀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정철진 외, 한스미디어)에서 비로소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펀드는 우리 금융계를 뒤흔든 최고의 투자상품이다. 적립식펀드의 등장은 실질 마이너스 저금리시대에 부자가 되려면 은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투자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가입자 60만명 돌파, 200조원 펀드시장은 펀드 열풍이야말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하나의 투자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성급한 판단도 가능하게 한다.그렇다면 주식 관련 책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고승덕, 개미들출판사), (조홍래, 김영사), (오성진, 더난출판사), (권정태, 국일경제연구소) 같은 책들의 제목 면면을 보면 몇 년 전에 나온 책들이 초보에서 초단타에 이르기까지 투기를 충동하는 책들과는 제목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식투자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장기적인 투자의 대안이라는 정상적인 재산 포트폴리오를 안내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을 정도로 장이 호황이나 주가가 경기활성화의 방증이 아닌 부동산시장의 침체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린다는 판단에 주식 관련 책들이 다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그러나 향후 경기가 회복된다면 투자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관련 책들도 독자들에게 더욱 관심을 끌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2~3년 재테크 관련서가 봇물 터지듯 출간됐다. 10만원을 훌쩍 넘는 책들이 등장하는 것은 독자들이 재테크에 대한 정보를 책에서 얻고자 하는 욕구가 매치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올 상반기는 대형 베스트셀러는 나오지 않았으나 하반기에는 독자가 원하는 알찬 정보로 무장하는 내실 있는 재태크 책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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