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머니헌터’…바쁘다 바빠!

▷풍경 하나 = 최홍식씨(36ㆍ가명)의 출근시간은 오전 7시다. 지금에야 날이 훤하지만 겨울이면 아직 동트기 직전이다. 이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면 기상시간은 늦어도 오전 6시를 넘기면 곤란하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분. 모두 여의도에 위치해 있다. 출근 직후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잠시, 널찍한 책상 위를 차지한 컴퓨터 3대의 전원을 켠다. 3대 모두 주식투자용이다. 시세단말기와 주문용, 그리고 정보체크용으로 나뉜다. 오전 8시 전장 동시호가 개시와 함께 그의 하루일과는 시작된다. 키보드 3대를 넘나드는 신기에 가까운 그의 손놀림은 놀라울 따름이다. 간간이 울리는 전화까지 거침없이 소화해내며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점심은 대부분 배달해 먹는다. 질리지 않게 요일마다 메뉴가 바뀌는 단골식당에서 알아서 넣어준다. 오후 3시까지 그의 사무실은 이방인에게 철저히 폐쇄된다. 손님은 장이 끝나는 오후 3시 이후에야 노크가 가능하다. 최씨는 주식투자가 본업인 전업투자자다. 올해로 만 5년째 ‘오전 8시~오후 3시’ 틀(동시호가 포함한 주식시장 개장시간)에 맞춰 생활 중이다. 원래는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다 3년 전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보교류와 거래편의를 위해서”란 게 그의 설명이다. 선택이 옳았는지 여의도에 둥지를 튼 후 안정적인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월평균 두 자릿수 수익률은 기본이다. 각종 투자수익률대회에서의 상위권 입상도 꾸준하다. 밝히길 꺼려했지만 투자원금만 얼추 수억원대다. 최근 강세장이 펼쳐지면서 ‘꽤 짭짤한’ 투자수익을 거둔 걸로 전해진다.그는 중소기업 영업직 시절과는 비교가 안되는 금전ㆍ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요즘 주식투자 자체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며 “다만 그만큼 꼼꼼하고 열정적인 노력ㆍ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입소문을 듣고 그에게 한 수 배우기를 청하는 예비 전업 주식투자자가 적잖다. “4~5년 전 코스닥 붐 때 잠깐 유행했던 전업투자 열기와는 차원이 달라졌어요. 기본적으로 진지하고 나름대로 투자전략도 확고하죠. 공부도 참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연령층도 꽤 폭넓어졌고요.” 최씨가 분석한 최근 전업투자자들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예전처럼 무분별한 붐업은 별로 없다. 알음알음 전업투자자로 변신하는 케이스가 상당수다. 전업투자자지만 굳이 노출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괜한 구설수가 우려돼서다.▷풍경 둘 =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차라리 불안한 직장생활보다 더 매력적이죠. 언제 잘릴지 불안해하기보다 평생의 밥벌이 수단을 일찍 배우는 게 낫죠. 아직 대놓고 직업을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제 꿈을 이루는 데 한발 다가선 것 같아 뿌듯해요. 첫출발도 꽤 무난한 편이죠.” 대학졸업 후 취직이 안돼 미국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귀국한 박미진씨(27ㆍ여). 지난해 가을 그녀에게는 난생 처음 직업이 생겼다. ‘부동산 컨설턴트’다. 명함에는 그럴싸한 회사이름과 사무실 전화번호까지 있다. 그는 ‘1인 투자자’다. 자신의 종자돈을 밑천삼아 부동산 물건에 투자하는 게 본업이다. 주로 정부규제가 없거나 약한 상가ㆍ아파트(지방) 등에 투자한다. 때로는 주변에 소개한 후 수수료도 받지만 아직은 작은 돈에 불과하다. 그녀는 “현재 그리 만족스러운 수익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배운다는 자세로 2~3년 열심히 뛰다 보면 수완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그녀가 부동산투자자가 된 건 모친의 영향과 권유가 컸다. 그녀의 모친은 일찍 남편을 여읜 뒤 돈벌이 전선에 뛰어든 맹렬여성이다. 80~90년대 강남권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움켜쥐었다. 지금은 한정식당 몇 곳을 운영하며 한편에서는 부동산투자자로 활약 중이다. 서울 도심의 상가건물 2채와 경기도 인근에 적잖은 토지를 보유한 내로라하는 자산가다. 일찌감치 장사와 부동산에 눈뜬 까닭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딸 미진씨를 키워냈다. 돈 없는 설움과 돈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모친이었기에 딸에게 직업적인 투자자로 나설 것을 권유하는 데 주저함은 없었다. 문제는 딸의 결심이었는데, 빗장 처진 철옹성 같은 취업문의 현실 앞에서 선택의 기회는 별로 없었다.요즘 박씨는 소위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닌다. 오전에는 개인사무실에서 서류업무를 본 뒤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현장답사에 나선다. 딱히 주말이라고 쉬는 법은 없다. 일의 특성상 1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 며칠씩 몰아서 쉬는 게 전부다. 점심ㆍ저녁은 대부분 외부인사와의 약속이다. ‘인맥이 곧 돈’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럴 때 모친의 존재감은 업무에 큰 힘이 된다. 모친에게 빌린 투자원금은 몇 년 안에 모두 갚을 계획이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해서다. 조만간 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을 더 깊이 파볼 작정이다. 그는 “몰라서 그렇지 부동산 투자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며 “이는 부동산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것도 없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사실 ‘재테크=부업’이란 이미지가 많다. 본업에서 벌어둔 여윳돈을 부업 차원에서 불리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설혹 본업보다 더 높은 투자수익을 거뒀어도 재테크는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이었다. 자투리 시간 혹은 근무시간 이외에 시도되는 비공식ㆍ비주류 재산불리기 행위였다. 그랬던 게 최근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재테크를 본업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부쩍 잦아졌다. 과거에도 전업투자자가 없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트렌드로 정착되지 못했었다. ‘그들만의 직업’에 머물며 3040의 일부 주식파, 5060의 몇몇 부동산파가 고작이었다. 숫자와 투자규모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요즘 떠오른 ‘재테커(財+techer)군단’은 전 연령대에 걸쳤을 뿐 아니라 투자규모ㆍ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전업투자자가 재테크 신풍속도의 주인공으로 데뷔한 데는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한다. 일단 위기감의 발로다. 거듭된 저성장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최근 몇 년 새 재테크 필요성은 크게 늘었다. 빠듯한 월급쟁이 봉급만으로는 ‘내집마련’조차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샐러리맨 타이틀조차 길게 가져가기 힘든 시대다. 이 와중에 재테크는 자연스러운 선택의 결과다. 여기에 부동산에 이어 주식까지 사상 최고의 활황을 반복 중이다. 주변에서는 한두 번 매매로 억대 연봉을 벌었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실제로 거품론과는 무관하게 주식ㆍ부동산의 엄청난 부가가치 상승률도 증명됐다. 실업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조직의 얽매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도 더해진다. 잘하면 한몫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있다. 아예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유다.전업투자자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전문직까지는 아닐지언정 최소한 곱지 않은 시각에서는 벗어나는 중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에서 전업투자자로 옷을 갈아입은 김형진씨는 “예전에는 전업투자자라고 하면 괜히 작전이니 투기니 하며 색안경을 끼고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씨 역시 서류상 직업을 ‘무직’에서 ‘전업투자자’로 바꿔 쓰고 있다. ‘재테커’ 대열 중에서는 유독 젊은층이 두터워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 전업투자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먹구구식 직감투자에서 벗어나 주도면밀한 분석ㆍ접근을 지향한다. 사무실 하나를 함께 빌려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전업투자자간의 동호회까지 생겨났다. 투자 대상도 다양해졌다. 소액의 지방 경매물건만 노리는 사람부터 거액의 도심 상가건물을 통째로 다루는 투자자까지 있다. 이들을 위한 틈새시장도 성황을 예고 중이다. 법률ㆍ세무 등 특화ㆍ전문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다만 누구나 재테커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여차하면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어서다. 부업 재테크와 전업투자는 차원이 다르다.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충분한 실전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노하우와 자신감이 없다면 곤란하다. 전업투자자들은 하나같이 ‘안정성’을 강조한다. 당장의 생활비와 무관한 여윳돈과 한두 번 실패해도 바로 일어설 수 있는 투자환경 조성이 급선무라고 전한다. 특히 부동산 투자라면 유동성을 감안한 긴 안목이 필수다. 샐러리맨 시절의 마약(월급)이 그리울 만큼 자금회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인드 컨트롤과 대인관계, 건강관리 등도 전업투자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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