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익 안정적…긍정효과 많아

우리나라의 해외 직접투자, 즉 우리 기업의 해외생산은 1980년대 말 이후 꾸준한 증가세다. 2000년 이후에는 중국진출 붐이 일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지난해 8월 말 현재 투자누계액이 2003년 GDP의 8.0% 수준인 486억달러에 달한다. 세계 곳곳에서 2만개가 넘는 해외법인들이 활동, ‘우리 기업의 세계화’는 이미 기정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기업들의 해외진출 행렬은 비용절감 목적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지난 2003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인건비가 중국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현실에다 3D업종 기피로 구인난까지 겹치면서 이전을 서둘렀다는 업체가 절반 이상(64%)을 차지했다. 이전을 계획하는 기업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중국, 베트남 등지로의 공장이전이 비용절감 열쇠인 양 인식되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해외이전 행렬에 동참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반면 해외시장 개척 및 확보, 현지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새로운 사업 발굴 같은 요인은 후순위로 밀려났다.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비용절감보다 시장개척형 투자의 비중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진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시장개척 요인을 압도적인 비중으로 꼽았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대한 투자 동기 역시 시장개척과 함께 생산비용 절감을 비슷한 비중으로 꼽는 것으로 조사됐다.그렇다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은 비용절감과 인력수급, 시장개척에 성공해 원활한 영업활동을 영위하고 있는가. 하병기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실장은 지난해 라는 보고서를 통해 해외진출 기업들의 경영성과가 국내법인이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해외법인들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003년 기준 평균 2.7%로 일본의 2.5%(2002년 기준)와 비교해도 안정된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음식료품(14.5%), 펄프(7.3%), 조립금속(7.0%) 산업은 순이익률이 최상위에 랭크됐다.하지만 이런 성과는 국내기업의 평균 순이익률 3.8%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또 주요 해외투자업종인 전자부품 및 통신기기, 자동차, 트레일러 등은 국내기업에 비해 수익률이 각각 0.2%포인트, 2.8%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하박사는 “업종, 기업에 따라서는 수익률보다 시장개척을 위한 경영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고 전제하고 “영업성과가 국내기업에 비해 다소 낮기는 하지만 열악하다고 판단하긴 곤란하다”고 밝혔다. 신설 해외법인의 영업ㆍ생산활동이 정상 궤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나 모기업의 경영목표가 수익성 증대 이외에 있는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해외투자의 성과는 조사 기준이나 현지 특성, 시점에 따라 업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생산비용 절감에 착안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경우, 생산성이나 주재원 운영 등에서 복병을 만날 수도 있다. 현지에 근무하는 주재원을 몇 명 두느냐에 따라 현지 토종기업과 연간 수억원대의 원가경쟁력 차이가 나기도 한다.국민성이 생산성을 좌우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멕시코의 한 가전 공장의 경우 종업원 임금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80% 수준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한 관세혜택이 낮은 생산성을 커버하고 있지만 현지 주재원에게 생산성 향상은 늘 숙제로 남아 있다.주요 업종들의 해외투자 성과는 각기 다른 평점을 받고 있다. 자동차업종은 해외투자가 가장 활발한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투자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전기전자 역시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매출증가율은 눈에 띄게 호전된 반면, 시장점유율과 경상이익률은 기대를 밑돈다는 평이 많다. 특히 북미나 일본, 서유럽과 같은 타깃 지역에서의 경상이익률이 저조한 실정이다.반면 화학업종은 시장점유율과 생산비용 절감 효과가 커 해외투자 성과가 비교적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남미, 유럽, 일본, 북미 등지에서 시장점유율 확대가 두드러지고 아시아시장에서는 생산비용 절감이 나타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 설비 및 자본재의 절반 이상을 국내 모회사로부터 조달받아 수출효과가 큰 반면, 판매는 현지시장 중심(73%)이어서 안정적인 매출구조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았다.이렇듯 해외진출은 여러 측면에서 장단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해외투자 확대로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다고 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제성장의 주춧돌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수출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국내경기에도 긍정적 효과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해외 현지법인은 설비(자본재)의 76%를 국내에서 조달받고 있고 부품도 65%를 국내에서 조달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매출에 있어서는 대한국 판매가 11.8%, 현지시장 판매가 57%, 제3국 판매가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해외법인으로의 설비 및 부품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해외법인이 생산한 제품의 국내 역수입은 아직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재료는 국내에서 갖다 쓰되, 해외에서 판매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이야기다.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구조가 수출 및 무역수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많은 기업들이 지금은 국내에서 일부 공정을 먼저 수행하고 해외법인에서 후공정을 수행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앞으로는 해외에서 일괄생산체제를 갖추겠다는 계획이다.또 부품의 현지 조달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기업도 절반에 달하는 실정이다. 해외법인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현지화 노력이 필수인 만큼 국내 산업과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는 것은 명약관화다.특히 인건비 등 생산비용이 저렴한 아시아 국가에 진출한 기업들은 이미 현지 재료 조달을 두드러지게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 동남아 투자 기업 1,500여개 가운데 원료를 현지에서 구매하는 비중은 96년 24.7%에서 2001년 말 33.8%로 9.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용감소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의 해외투자로 국내생산이 축소됨에 따라 고용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은 노동계 전반의 이슈가 된 상황이다. 이에 따른 국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 역시 최근 수년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동화 현상을 산업 고도화의 한 단계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이는 제조업을 대체하는 신산업 육성이 선행돼야 설득력을 가진다”고 지적하고 “해외투자 기업들의 현지 생산 및 판매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실업해결과 대체산업 육성에 국력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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