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심장부에 태극기 꽂다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공장은 어딜까. 1981년 4월 LG전자가 미국 앨라배마 헌츠빌에 설립한 헌츠빌 공장이다. 헌츠빌 공장은 건설 초기부터 국내외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한국기업들이지만 설마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생산공장까지 설립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헌츠빌 공장에서는 컬러TV를 비롯해 VCR, 전자레인지, 비디오테이프 등의 제품을 생산했다.LG전자에 이어 삼성전자도 포르투갈에 현지생산법인인 ‘SEP’를 설립(82년)하며 해외진출에 나섰다. 80년대 중반부터는 LG,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봇물을 이룬다. 당시 한국기업들이 해외에 적극 진출한 것은 선진국의 견제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80년대 들어 국제수지 흑자가 지속되자 한국상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심해졌다. 덩달아 국내시장의 개방압력도 거세졌다. 더 이상 국내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해외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해외진출 기업이 경쟁적으로 늘어났다. 투자건수를 보면 2000년 2,000건을 넘어선 이후 해마다 기록을 경신해 2004년 3,000건을 넘어섰다.2004년 8월 현재 한국기업의 해외법인수는 2만개사를 훌쩍 넘겼다. 90년 1,513개사였던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의 중국진출이 러시를 이루며 ‘산업공동화’의 우려까지 낳았다. 2001년 이후 해마다 신설되는 제조업 해외법인의 75%가 중국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해외진출에 적극 나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강성노조, 고임금, 기업경영의 어려움 등이 탈출을 부추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해외진출 과정에서 GE, HP,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다. 브랜드 가치도 크게 높아져 유럽이나 미국시장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이 뿌리내렸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세계 곳곳에 24개의 생산 및 생산ㆍ판매 복합법인, 40개의 판매법인, 15개의 지점 등 48개국에 총 90개 거점을 갖추고 있다. LG전자도 76개의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이처럼 한국 대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기존의 글로벌 기업 못지않은 파워를 지니게 된다.특히 반도체, LCDㆍPDP 등 디지털TV, 이동통신 단말기 등은 세계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이 제품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총출동하는 각종 박람회에서 주어지는 기술, 디자인 관련 수상을 한국기업들이 싹쓸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기업들의 오늘을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엄연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부르다고 앉거나 눕게 되면 곤란하다. 아직은 전통의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해 약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빠르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충하다 보니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기업문화가 정립될 여유가 없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감당할 만한 인재양성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상당수 해외생산법인이 한국인 핵심인재 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원활한 경영이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외에도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이 나라마다 생산법인마다 다른 것도 문제점으로 보인다.이번 해외 현지취재에서 주재원들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마련을 위해 지금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들린다.그러나 한국기업의 힘은 세계가 알아줬다. “한국인 직원들의 열정과 빠른 움직임, 성실함에 감동을 받았다”는 현지인 직원들이 많았다. 목표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는 한국기업 특유의 근성도 앞날을 밝게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이 몇 개만 더 늘어나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현되기를 꿈꿔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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