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원으로 일군 성공… ‘변신 즐겨라’

이하연 봉우리 사장(46)은 입지전적 커리어우먼이다. 거의 무일푼으로 시작해 지금은 내로라하는 한정식당을 일궈냈다. 1987년 그녀는 ‘먹고살려고’ 길거리로 나섰다. 손에 쥔 건 단돈 8만원. 장호원터미널 옆에서 만두노점을 열었다. 하지만 민원 탓에 6개월이 고작이었다. 이듬해 서울로 입성했다. 대림동 시장거리에 밥집을 차렸고, 이내 입소문이 났다.푸짐한 밥에 맛깔스러운 포기김치는 금방 유명세를 탔다. 3년간 짭짤하게 벌었지만, 늘 바쁜 엄마로서의 미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저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고, 그게 덕성여대 앞에서의 호프집이었다. 5년을 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심각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패러다임 변화였다. 노래방ㆍ비디오방으로 대변되는 창업전선의 변화는 호프집을 사양길로 내몰았다.97년 강남으로 넘어왔다. 한정식 아이템을 갖고 역삼동에 ‘봉우리’라는 음식점을 냈다. 업력이 쌓이면서 본관ㆍ별관을 갖춘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 한정식에 걸맞은 분위기를 더했다. 그녀의 도전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전에는 ‘봉우리식품’이라는 김치공장까지 차렸다. “한정식도 패러다임 변화를 피할 수는 없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김치였어요. 40대 이상은 성가셔서 안하고 또 30대는 몰라서 김장을 안 담그죠. 이 틈새를 사업으로 연결시켰죠.” 봉우리식품의 월매출은 약 3,000만원. 단체급식용으로 납품한다.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작은봉우리’라는 김치전문점까지 개업했다. 덕소농장에 묻어둔 500여통의 김치를 주재료로 중저가 메뉴를 선보였다. 프랜차이즈로 키워 앞으로 40~50개까지 늘릴 작정이다.그녀의 성공스토리에는 ‘도전정신’이 곳곳에 살아있다. 아이템 변경을 적시에 감행한 데는 특유의 도전정신이 한몫 했다. 이사장은 “소비성향을 못 따라가면 손님은 금방 떨어진다”고 누차 강조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녀 역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업종변경을 첫손에 꼽았다. 굽이굽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독 트렌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김치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우리가 자리잡고 돈까지 벌자 정작 불안하고 사는 맛이 안 났어요. 대신 요즘은 힘들지만 아주 재미나죠.” 곡예사가 외줄타기를 즐기듯 그녀 역시 도전을 기꺼이 반기는 듯했다. 기업가정신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또 하나의 포인트는 ‘잘 아는 것’에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식당장사의 왕프로다. 외식업종 경력만 20여년에 이른다. 올곧이 그녀의 손끝에서 나온 음식 맛은 동종업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력제품인 음식에서 경쟁력을 갖추니 매출이 느는 건 당연지사. “외식업은 음식공부를 끝낸 후 뛰어드세요. 종업원으로 취직도 해보고요. 흔히 ‘식당이나 하지’라며 만만하게 보시는데 절대 아닙니다. 식당은 전문직이에요. 자본보다는 경력ㆍ노하우가 훨씬 중요하죠. 10집 중 8~9집이 망한다잖아요. 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죠.”목이 좋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뜨내기 손님이야 한두 번 가겠지만 관건은 ‘음식 맛’이다. 여기서 ‘고객감동’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음식은 정직하고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한 번은 종업원에게 맡겨두고 식당을 비운 일이 있었는데, 손님이 바로 음식 맛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후에는 식재료를 구하는 데부터 마지막 조리까지 신경을 씁니다.” 미묘한 차이야말로 고객이 먼저 안다는 깨우침이었다. 그러자면 주인이 뛰어야 한다. 리더십이다. 뛴 만큼 나오는 게 베테랑 이사장이 그간 겪은 경험이다. 동시에 뭐든 고객입장에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내가 불편해야 손님이 편하다”며 “종업원 관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지금껏 얼마나 벌었을까. “벌 만큼 벌었고 쓸 만큼 썼다”며 그것보다는 “김치 하면 이하연과 봉우리를 떠올리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총총히 일어선다.이하연의 성공 팁1. 패러다임 변화에 올라타라2. 잘 아는 곳에 승부를 걸어라3. 고객감동으로 단골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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