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치료 눈앞에…‘꿈의 치료제’ 온다

“저기 안락한 안방이 있는데 대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지난해에 그 첫 번째 대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보니 단단히 잠겨 있는 대문들이 또 있었다. 대문을 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경험과 기술이 생겨 이번에 대문 여러 개를 한꺼번에 열었다. 그러고 나니 사립문 몇 개가 또 남아 있다. 앞으로 저 사립문들을 열어야만 안방에 들어갈 수 있다.”세계 최초로 난치병 환자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지난 5월20일 ‘국보급’ 과학자로 금의환향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있었던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황교수가 말하는 ‘안방’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기에 그렇게도 간절히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걸까. 또 그가 열었다는 대문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안방 = 난치병 치료의 희망’줄기세포는 200가지가 넘는 인체 내 모든 장기로 자랄 수 있고 계속해서 증식하기 때문에 난치병 치료의 희망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뇌세포가 손상된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이식하거나 혈액세포로 분화시켜 혈액성분이 부족한 백혈병 환자에게 이식하면 치료할 수 있다.황교수가 말하는 ‘안방’은 결국 ‘줄기세포를 난치병 치료에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황교수는 지난해 2월 이미 ‘안방’에 들어가기 위한 대문 하나를 열었다.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한 것.황교수팀은 먼저 여성에게서 체세포와 난자를 제공받았다. 체세포는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를 제외한 인체의 모든 세포다. 황교수팀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를 이식했다. 여기에 전기충격을 줘 난자와 체세포를 융합해 배아를 만들었다. 바로 이 과정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도 배아를 만드는 첨단 생명공학 기법인 ‘복제’다.복제된 배아는 체세포가 갖고 있던 유전물질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다. 복제한 배아를 4~5일 정도 배양하면 내부에 세포들이 모여 있는 덩어리가 생긴다. 황교수팀은 바로 이 덩어리 속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것이다. 올해 황교수팀이 줄기세포를 얻은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열었다는 ‘대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대문 = 맞춤형 줄기세포 추출기술 향상’지난해 황교수팀에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은 ‘건강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는 실제 난치병을 앓고 있는 남녀노소 환자들로부터 각각 체세포를 제공받아 복제배아를 만들고 거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어떤 환자의 체세포로도 줄기세포를 얻는 기술을 확립한 것이다. 지난해 얻은 줄기세포가 ‘여성용’이었다면 이번 줄기세포는 개인별 ‘맞춤형’인 셈. 바로 이것이 올해 황교수팀이 열었다는 대문 중 하나다.줄기세포를 인체에 이식하려면 인체가 이를 외부에서 침입한 해로운 이물질로 인식해 밀어내려는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황교수팀의 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체세포에서 얻었기 때문에 다시 그 환자의 질환 부위에 이식해도 당연히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황교수팀은 이번에 얻은 줄기세포에 실제로 화학물질을 넣어 환자 자신의 세포와 비교해 봤다. 그 결과 모두 환자 자신의 세포와 면역학적으로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배아복제 기술을 난치병 치료 목적으로 실용화하는 데 지난해보다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지난해에는 여성 16명에게서 난자 242개를 제공받아 단 1개의 줄기세포주를 얻었다. 이에 비해 올해는 여성 18명에게서 난자 185개를 제공받아 줄기세포주를 11개나 얻었다. 지난해보다 줄기세포 추출 성공률이 10배 정도 더 향상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기술 향상이 또 다른 대문이다. 여기에는 1㎜도 안되는 난자를 마치 ‘탁구공 다루듯’ 한다는 황교수팀 연구원들의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가 단단히 한몫 했다고.지난해에는 일부 전문가들이 실제로 복제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했다. 여성의 난자와 여성의 체세포를 이용했기 때문에 난자 혼자 스스로 분화해 배아로 자라는 ‘단성생식’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그러나 이번에 황교수팀은 남자 환자 체세포로 얻은 줄기세포에는 정상 XY 염색체가, 여자 환자 체세포로 얻은 줄기세포에는 정상 XX 염색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단성생식이 아니라 실제로 복제배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것도 황교수팀이 열었다는 대문 중 하나다.‘사립문 = 실용화까지 남은 과제’황교수팀의 연구성과가 발표된 직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제약이나 바이오산업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했다고 한다. 줄기세포는 치매, 심장병, 척수마비 같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그야말로 ‘꿈의 치료제’이기 때문.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다분히 심리적 기대 효과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생명공학분야 전문가들이 배아줄기세포가 치료 목적으로 쓰이려면 적어도 10여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배아줄기세포가 실용화되려면 무엇보다 동물실험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필수. 황교수팀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와 함께 원숭이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임상시험을 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 황교수팀은 지난해 이미 식약청에 배아줄기세포 임상시험 허가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식약청은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 대한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은 상황이라 허가를 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려졌다.이에 비해 탯줄혈액이나 골수에서 얻을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경우 올해 초 국내 한 벤처기업이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배아줄기세포보다 성체줄기세포가 먼저 실제 치료에 쓰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배아줄기세포가 실용화되기까지 거쳐야 할 이 같은 난관들이 바로 황교수가 말하는 ‘사립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만만찮은 사립문은 줄기세포의 만능 분화능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기술이다.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질환 부위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특정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뇌에 이식한 줄기세포가 심장세포로 분화해 버리면 안될 일이니 말이다. 대책 없이 계속 분열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자칫 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기술들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또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얻은 줄기세포가 이식 후 그 환자와 같은 질병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다. 난치병을 치료하려면 줄기세포가 ‘건강한’ 세포로 자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복제배아를 만드는 데는 난자가 꼭 필요하다. 난자가 복제할 체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각종 영양분을 제공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난자를 얻으려면 여성이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므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황교수팀은 난자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인공구조체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황교수팀이 결코 쉽지 않은 ‘사립문 통과’에 성공한다면 세계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큰손’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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