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물밑거래’ 여전

아직도 충청지역 주민들은 ‘행정중심도시’ 혹은 ‘행정도시’라는 이름보다 ‘행정수도’ 또는 ‘행수’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사실상의 수도이전이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행정수도 예정지역이 발표된 이후 해당지역인 연기와 공주 일대는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수개월을 보냈다. ‘평생 배운 도둑질이 땅 파먹기(농사)뿐’이라며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내줄 수 없다고 행정수도이전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도 열렬 찬성자들 못지않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 판결이 난 후 이 지역은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연일 규탄집회가 이어졌고 지역적 소외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러다가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중심도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천도(?) 작업이 재추진되면서 성난 민심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평생 터전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일부 주민들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관심은 최근 현실성 있는 보상이 이루어질 것인지의 여부로 옮아가고 있다.최근 실시된 개별 공시지가에 대한 이의신청에서 충남지역에 접수된 이의신청 건수는 모두 2,758필지로 지난해 992필지보다 무려 178%가 증가했다. 이중 상향조정 요구 건수는 1,515필지였다. 개별 공시지가 상향조정을 요구한 건의 상당수가 행정중심도시 예정지 인접지라는 사실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올 1/4분기가 그래도 거래가 좋았습니다. 행정도시 예정지와 주변지를 막 벗어나 큰 도로와 맞닿은 땅은 인기가 좋았지요. 하지만 사는 사람들부터가 수개월에 팔아넘기고 나가면 큰코다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때문에 무리해서 만든 자금으로 찾아오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윳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찾았었죠.”대전시 유성구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며 주로 조치원과 공주 일대 토지 거래를 알선하고 있는 J씨는 4월 이후 토지시장이 중장기 투자로 패턴이 옮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충청권의 부동산 시장을 표현하면 한 마디로 ‘정중동’(靜中動)이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시작으로 토지 및 주택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등 각종 규제로 묶이면서 무섭게 들끓어대던 시장은 하루아침에 찬물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심리가 상존하면서 신규 아파트 분양을 비롯해 합법적인 수단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행정중심도시의 건설로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대전지역의 부동산시장은 일정 주기로 부침(浮沈)을 반복하고 있다. 행정중심도시 입지 예정지와 인접해 있고 신흥 개발지로 높은 인기도를 반영하고 있는 유성구와 서구지역의 아파트 신규분양이 있을 때마다 한차례 거대한 태풍을 동반해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최근 실시된 대덕테크노밸리(대전과학산업단지) 2단계 지구의 아파트 분양은 지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꺼번에 보여줬다. 모델하우스 개관 첫날부터 관람객이 몰려들어 2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겨우 집 구경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청약 열기는 그대로 계약으로 이어져 100% 계약률의 경이로운 기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아파트 청약 과열 양상이 서구와 유성구에 국한돼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구와 유성구를 제외한 동구, 중구, 대덕구 등 3개 지역은 아직까지도 큰 동요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대전의 토지시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대전에서는 1/4분기 동안 1만2,388건의 토지거래가 이루어졌고 이중 서구와 유성구에서 발생한 거래가 전체의 67%인 8,339건이었다.충청권의 토지시장은 이미 한차례 들불이 지나갔다. 몇 달 동안 조용하다가 1~2개월 타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언제든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지난 3월을 예로 들면 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이 0.34%를 보인 가운데 행정도시 이전 예정지인 연기군은 6.34%가 올랐다. 전국 최고의 상승률임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전국 평균 인상률과의 차이는 무려 18.5배다. 연기군과 더불어 행정도시가 들어서게 될 공주시도 같은 기간 2.16%의 상승률을 보였다. 최근 수년간 지가 상승률 상위 톱10은 경기도 일부 지역이 간헐적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 모두 충청권 지역들이 독식했다. 덕분에 충청권에는 전국 각지에서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챙기려는 고수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과거의 부동산시장이 편법이나 불법을 동원해 일거에 큰 차익을 노리는 위주로 진행됐다면 각종 규제가 강화된 최근에는 가능한 한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시장에 뛰어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아직도 각종 개발예정지에서의 이주자택지 분양권을 중심으로 불법 딱지 거래 등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대전을 비롯해 대단위 개발로 인한 보상이 진행되고 있는 충청권 각 지역에서는 최근 불법 딱지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새롭게 조성되는 택지개발지구 내에서 주거용지의 경우 원칙적으로 근린생활시설 설치를 불허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개의 개발지에서 원주민들은 생활권 보상 차원에서 자신들에게 공급되는 이주자택지에는 예외적으로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이 같은 주민들의 주장은 일부 개발지에서 관철됐다. 주민들의 주장이 관철돼 이주자택지에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개발예정지일수록 불법 딱지 거래는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아직도 부동산 거래가 외지인들 위주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척 냉정해지고 차분해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1~2년 전과 달리 무리해서 치고 빠지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공주지역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K씨도 다른 중개사들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 불법거래나 편법을 동원한 각종 지능형 투기는 1~2년 전이 가장 심각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투기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고요한 상황이다.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아파트 분양을 위해 주민등록을 이전하는 위장전입이 다반사였고, 타인 명의로 분양을 받거나 분양권을 거래하는 사례가 일반화되다시피 했다. 토지거래허가를 피하기 위해 양도거래를 증여로 위장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멀쩡한 땅을 번지분할해 거래를 유도하기도 했다. 서울을 비롯해 광역시에서 부지기수의 부동산업소가 충청권으로 남하해 각종 신종 불법거래 수법을 전파시켰던 것도 ‘과거’ 일이다.대전지역에 강풍을 일으켰던 대덕테크노밸리의 아파트 청약 열기도 행정도시 개발의 직격탄이라기보다는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려는 시각이 많다. 특히 최근 수년간 아파트 분양가가 수직 상승한 것을 지켜본 지역민들이 가수요에 가담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정부는 충청권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아직까지도 이 지역을 화약고로 여기는 눈치다. 충청권의 부동산 시장이 정부가 잠시만 눈길을 돌리면 곧바로 큰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충청권 부동산시장은 기능이 마비된 휴화산이 아니라 언제 활동을 시작할지 모를 활화산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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