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비즈니스, 황금방망이 굳혀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최강국이다.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정치적 파워 역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여기에다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역시 질과 양 모두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미국기업들의 파워가 센 것은 지식재산의 가치 향상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경영전략에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IBM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세계 각국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요즘 IBM은 전세계 반도체 메이커들 사이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기술을 하나하나 상품화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까닭이다.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동시에 고속화를 가능케 한 동배선(銅配線)과 처리성능을 높이고 전력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을 잇달아 선보인 것이다. 이런 기술을 사용한 반도체는 성능이 크게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을 대폭 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PC용 반도체의 거인 인텔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한 반도체 벤처기업 트랜스메타의 경우 사실은 생산의 전부를 IBM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IBM의 기술 덕에 시장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케이스로 분류된다. 다른 의미에서도 IBM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황 탓에 관련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하지만 IBM은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특허수익은 해마다 크게 증가, IBM을 떠받치는 주수입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허료 등 다른 회사에 자사의 지식재산을 유상으로 주고 여기서 받는 금액이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6년 8억달러에 그쳤던 것이 2000년에는 17억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늘어 2003년에는 3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사실 IBM이라고 하면 대형 범용기에서 PC로의 다운사이징 물결에 뒤늦게 올라타면서 90년대부터 해마다 1.000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93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루 거스너는 죽어가던 IBM의 기업풍토를 일신하는 한편 고객의 욕구에 맞춰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서비스사업을 회사의 주력사업 가운데 하나로 삼아 키운 것도 이 무렵이다.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루 거스너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연구개발부문에도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반도체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거액의 특허료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때 뿌린 씨앗의 결실이다.TI, 97년 중앙연구소 폐쇄IBM의 변화는 크게 2가지 방향에서 추진됐다. 먼저 지식재산권 비즈니스를 들 수 있다. 회사측은 연구결과를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제품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IBM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방법을 채택했다. 다른 회사에 지식재산의 권리를 사용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IBM은 이후 큰 수익을 올렸다. 그 이전에는 사내의 연구성과는 회사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돼 있었으나 이를 과감하게 바꿨던 것이다.또 한가지 IBM은 연구개발의 프로세스도 대수술을 했다. 연구결과를 효율적으로 제품에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조직을 새로 짰다. 구체적으로는 체계적인 개발 프로세스 관리, 관리 프로세스의 매뉴얼화, 감사체제의 정비 등이 그것이다.예전에 IBM의 신제품 개발은 연구부문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 결과 성능은 좋았지만 시장에 맞지 않는 가격이 된다거나 개발에 시간을 너무 많이 들여 순발력 면에서 경쟁업체에 뒤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자연 시장대응력이 떨어지고 회사의 수익성은 좋을 리가 없었다.TI는 업계에서 ‘킬비(Kilby)특허’로 유명하다. 반도체 설계의 기본적인 개념은 담고 있는 이 특허만큼 부와 명성을 얻은 특허도 드물다. 발명자인 잭 킬비는 200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더욱이 잭 킬비가 연구원으로 있던 TI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안겨주었다.하지만 TI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궤도를 수정한다. 97년 중앙연구소를 폐쇄하는 결단을 내리고, 기존의 연구조직도 해체했다. 대신 반도체 개발설계 및 초기생산을 담당하는 킬비센터를 열었다. 당시 회사측은 “연구개발에서 제품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이런저런 사고가 많아 결단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결과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에는 제품화까지의 기간이 6년이나 걸렸으나 이후 3년 정도로 크게 줄었다. 외부인력도 과감하게 발탁했다. 주력제품인 신호처리 프로세서(DSP) 비중을 높이기 위해 스탠퍼드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영입했다.특히 TI는 중앙연구소를 포기하면서 기초연구의 일부는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무리하면서까지 모든 것에 손대는 대신 대학이나 공적연구기관 등 외부의 인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아울러 TI는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 인수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특히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까지 매우 왕성하게 인수에 참여, 무려 20여개사를 사들였다. 기술혁신을 가능한 한 빨리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을 인수합병했던 것이다.TI는 대학이나 벤처기업 등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 투자를 DSP 같은 틈새분야에 집중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선택과 집중’을 연구개발의 모토로 삼았던 것이다.돋보기 지식재산 가치 평가방법금융공학 옵션이론이 잣대특허는 대차대조표상에서 자산으로 분류된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가치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매각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시장규모만 2조달러 정도 되고, 궁극적으로는 50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특히 일부 기업들은 특허 매각 등을 통해 큰돈을 버는 사례도 적지 않다. 뛰어난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매각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또 자사의 기술을 다른 경쟁회사에 빌려주는 일도 적지 않다. 혼자 기술을 독점하기보다 다른 회사에 빌려줘 시장을 확대하는 쪽이 투자에 대한 회수도 빠르고, 지적재산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P&G가 섬유유연제 기술을 경쟁회사에 대여해 시장확대를 이끌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그렇다면 특허 등의 지식재산은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것들을 평가하고 중개해주는 업체가 등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토지 등과 마찬가지로 이전하는 지식재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사고 싶어 하는 고객에게 팔아준다.가치평가는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한다. 주식이나 채권 등의 매매에서 사용되는 옵션이론을 지식재산에 응용하는 것이다. 옵션이란 장래의 특정 시점에 일정가격으로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평가하고 중개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지식재산을 구입하는 것은 그 지식재산이 장래 쏟아낼 캐시플로(현금흐름)를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현금흐름을 측정하기 위해 제품화에 필요한 기간이나 비용, 제품화할 수 없는 리스크 등을 감안해 현시점의 시장가치를 산출하는 것이다.이런 금융공학을 사용하는 측정방법에는 종업원 연금재산 적립부족액을 산출할 때 쓰는 할인 캐시플로(DCF) 방법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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