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를 곳 없다’ 하락세 본격화

4월 중순 이후 유가가 안정되고 있다. 배럴당 57달러까지 올랐던 유가(WTI)가 최근에는 52달러까지 하락했다. 유가는 완만하지만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첫째, 글로벌 유동성 둔화와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으로 투기적인 원유수요가 약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금리가 낮은 단기자금을 빌려서 상품시장, 정크본드 혹은 이머징채권 등에 투자하는 캐리트레이드(Cary Trade)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선물시장에서 비상업용 원유의 순매수 포지션이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에너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수급구조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이론적인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유가는 리스크 프리미엄과 투기적인 요인에 의한 유가상승분이 배럴당 10달러 내지 15달러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인상 지속과 경기둔화 등의 영향으로 투기적인 원유수요가 위축되면서 유가는 점차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기조절 정책 등으로 원유의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원유수요 증가율 중 미국과 중국의 원유수요에 대한 기여율이 44%에 달했다. 즉 2000년 이후 유가상승은 상당부분 미국과 중국의 원유수요의 급증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금리인상과 긴축정책으로 미국과 중국의 원유수요 증가세도 점차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4년 하루 273만배럴이 증가했던 원유수요가 올해는 181만배럴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셋째, 달러화의 강보합세 때문이다. 산유국의 고유가 정책을 지속시킨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이었다. 달러화 약세는 산유국 원유판매대금의 실질구매력을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의 강보합으로 산유국들의 실질구매력도 개선됐다는 점도 유가하락의 주요한 근거다. 넷째, 미래에 인도될 석유가격인 선물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다섯째, 고유가로 인한 원유공급 확대 및 공급능력 확대 투자 때문이다. 산유국들의 원유공급 여력이 크지 않아 단기적으로 원유공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고유가 지속으로 중기적으로 에너지 공급능력을 늘리는 에너지 관련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2004년 중 원유수입액 5,227억달러)과 석유 메이저(2004년 엑슨모빌, 로열더치쉘, 세브론 텍사코 등 3사 이익이 2003년보다 215억달러 증가)는 늘어난 원유수입 대금으로 원유생산과 정제시설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유가로 그동안 생산원가가 높아 제대로 생산되지 못했던 오일샌드(석유가 묻어 있는 모래·배럴당 생산원가가 25달러)의 생산량도 점차 늘어날 것(2003년 중 하루 81만배럴 생산)으로 보인다. 케나다의 오일샌드의 확인된 가채매장규모는 1,800억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00억배럴)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이란의 가스생산을 위한 설비투자(2005~2010년까지 1,000억달러 투자 계획)가 본격화될 것이다. 가스생산뿐만 아니라 가스로 액체석유를 만들어내는 GTL(Gas to Liquidㆍ카타르) 투자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유가가 1% 오르면 원유생산이 0.23%가 늘었다는 추정결과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석유공급 여력 확대로 중기적으로도 유가가 더 이상 상승하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의 명목유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유가 수준은 과거 2차 오일위기 때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의 산업구조는 IT화 혹은 서비스화로 석유를 적게 쓰는 구조로 바뀌었다. 세계경제는 고유가에 대한 내성이 상당히 강화됐다.단기적으로 유가는 세계석유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보여 하락 추세가 예상된다. 중기적으로도 유가는 선진국의 효율적인 에너지 산업구조와 산유국들의 석유공급 능력 확대로 추가 상승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결론적으로 유가가 국내외 경기 흐름을 크게 제약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사우디 등 일부 국가의 석유터미널에 대한 테러 혹은 일부 산유국들의 정치ㆍ사회적 불안요인 등이 야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진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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