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등 정보기기분야서 ‘우뚝’

영국 출신 산업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누드형 컴퓨터 ‘아이맥’과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디자인해 쇠락의 길에 들어선 듯 보였던 ‘애플’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잘 키운 디자이너 한 사람이 한 기업을, 한 국가의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시대가 온 셈이다.당연히 ‘디자인코리아호’의 순항에도 역시 ‘일등선원’ 디자이너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대부분 디자인코리아의 주역들은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디자인은 글로벌 경쟁력 지표인 동시에 글로벌 감각의 바탕 위에서만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제품디자인의 대표주자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55)이 디자인코리아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MP3플레이어 ‘아이리버’의 디자이너로 알려지면서 세계적 명사로 떠오른 김사장은 처음부터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컨설팅 전문그룹 이노디자인을 세웠다. 이노디자인은 이노베이션(Innovationㆍ혁신)의 앞부분을 따 만든 이름이다. 주문을 받아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먼저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디자인 우선주의’를 실천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올해 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세계가전전시회(CESㆍ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개막 연설을 하면서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시대’가 왔음을 강조하며 우리나라 MP3플레이어업체 레인콤의 아이리버 제품을 예시로 들어보였다. 이 제품이 대표적인 김사장이 강조하는 디자인 우선주의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는 디자인 AtoZ를 지향한다. 오디오(Audio)에서 지퍼(Zipper)까지 알파벳 A부터 Z까지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해 시장에 내놓고 제작사를 찾는다는 얘기다.김사장은 이밖에도 미 경제주간지 와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가 주관하는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 IDEA(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의 금ㆍ은ㆍ동상 등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수상해왔다. IDEA상 금상을 수상한 세 발 달린 휴대용 가스버너 ‘랍스터’의 경우 디자인전문지 의 커버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90년에 골프백 ‘ProtechⅡ’가 선정 ‘올해의 최우수 제품’에 뽑힌 데 이어 2000년에는 LG스마트폰이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또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유럽 3세대(G) 휴대전화 시장에 공급하게 될 바타입 로테이션형 3G폰(SGH-Z130)의 디자인컨설팅을 맡고 있다. SGH-Z130은 삼성의 유럽 3G시장 공략을 위한 주력 휴대전화 중 하나다.그는 각종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19세기가 기술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마케팅의 시대, 그리고 21세기는 휴머니즘, 즉 인술의 시대”라고 강조한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한대로 넓어진 시대를 맞아 소비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디자인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를 두고 D(Digital)+D(Design)=D(Dream)라는 새로운 공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김사장이 디자인한 애크미 볼펜은 지난해 새롭게 개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ㆍMuseum of Modern Art)에서도 팔리고 있다. 또 김사장은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씨와 대학시절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듀엣으로 활동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김사장이 평소 강연에서 휴대전화 같은 정보기기의 경우 소비자가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다른 디자인전문가들 역시 휴대전화와 관련이 깊다.정우형 다담디자인어소시에이트(이하 다담디자인) 사장(45)은 디자인을 맡은 중국 아모이소닉 GSM 휴대전화 A8이 2002년 첫선을 보인 뒤 단일모델 판매량으로는 상당한 수치인 1,000만대를 돌파했다. 역시 다담디자인의 디자인컨설팅을 받은 중국 판다사의 GM800 제품은 중국 내 고가 프리미엄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 7~8위를 고수하고 있다.정사장은 중국 휴대전화 시장이 싹트기 시작한 2001년에 휴대전화 디자인 샘플 10여개를 들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디자인도 수출로 뚫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사장이 말하는 디자인사업의 성공포인트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의 주장과 흡사하다. 다시 말해 ‘선행디자인 개발’이다. 단순히 의뢰를 받아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디자인사업은 부가가치가 낮다. 시장상황을 분석해 1년 후 시장변화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홍익대에서 산업도안을 학부 전공으로 하고 산업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한 정사장은 92년부터 다담디자인 최고경영자로 활동해왔다. 그의 목표는 정보기술(IT)에 기초를 둔 새로운 아이템으로 중국과 미국, 유럽에 제품 디자인을 수출하는 디자인 글로벌기업을 일궈내는 것이다.88년에 제품디자인 전문회사 모토디자인을 세운 송민훈 사장(45)은 매년 50~6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소비자의 트렌드를 반영한 덕분에 96년에 한국 최초로 일본 굿디자인전 외국상품상을 받았다. 또 98년 프랑스 디자인비엔날레 한국대표 상품에 모토디자인 제품이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열린 2004 도쿄 베스트 오브 쇼 어워드(Best of Show Award)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그 역시 최근에는 휴대전화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부터 휴대전화 디자인을 수출하고 있는 송사장은 중국ㆍ대만ㆍ홍콩 등 중화권 시장에 20여종의 휴대전화 디자인을 공급하고 있다. 휴대전화 디자인의 가격은 1종류당 4만~5만달러에 이른다.송사장은 모바일보다 생활용품 디자인의 부가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디자인 선진국인 유럽의 예를 보면 문손잡이, 수도꼭지 하나에도 예술적 감각이 발휘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송사장은 모토디자인이 단순히 제품디자인회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토털 디자인경영 컨설턴트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이들 디자인코리아의 주역이 운영하는 회사처럼 휴대전화 등 제품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전문회사는 국내에 167개 업체(한국산업디자인전문회사협회, 2005년 1월 기준)가 있다.이유섭 코다스디자인 사장 역시 제품디자인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코다스디자인은 국내 디자인회사로는 상당 규모를 자랑하며 90년대 말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한국 10대 디자인회사’에 2년 연속 뽑히기도 했다. 이사장은 현대자동차에서 디자인 활동을 시작해 92년 코다스디자인을 세웠다. 뉴그랜저, 아반떼, 티뷰론 등의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이사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제 물건의 기능을 사는 게 아니라 제품이 주는 기쁨과 정신적 효용을 구입한다”며 “디자인은 경영활동의 본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선행디자인 개발이 성공포인트그렇다면 디자인코리아의 미래를 책임질 면면은 누구일까.올해 초 산업자원부는 스타 디자이너 육성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며 ‘제1차 차세대 디자인 리더’를 선발, 포상했다. 차세대 리더로 뽑힌 이돈태 탠저린 부사장(38)은 영국의 대표적 디자인전문회사인 탠저린에서 유일한 동양인 임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왕립예술대학(RCA) 제품디자인학과를 마친 이부사장은 98년부터 영국 탠저린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아시아지역 총괄담당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항공(BA)의 비즈니스클래스를 인간 친화적 디자인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세계 디자인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부사장은 특수한 기술력이나 싼 노동력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 실정에서야말로 디자인이 한국의 경쟁력을 살리는 무기가 된다고 주장한다.이부사장과 함께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뽑힌 설은아 포스트비주얼 대표(30)는 특히 국내에서 각광받고 있는 온라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를 전공하다 과감히 전공을 바꾸고 뒤늦게 미술학도가 된 설대표는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등 영화와 나이키, DOHC 등 패션 홈페이지를 만들어 칸광고제 황금사자상, 뉴욕광고제 금상, 런던광고제 파이널리스트 등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스타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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