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한 가부장에서 주부 아빠까지

전통 아버지상 그려 … 시대변화 따라 모습 달라져

“아들아.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여보 사랑하오”라고 쓰여진 쪽지와 마시다 만 소주병. 한 40대 가장은 아버지묘 옆에서 쪽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기러기아빠’라 불렀다. 우리 사회가 낳은 기러기아빠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기꺼이 먼 이국으로 자식과 아내를 보내놓고 매월 벅찬 교육비와 생활비를 보내며 혼자 지내는 기러기아빠의 모습을 대량 유포시킨다.한때 아버지의 또 다른 여자를 ‘세컨드’(정부ㆍ情婦)라 불렀다. 정부가 본부인(마누라)에게 발견되면 머리채 잡는 싸움이 벌어지고 마누라는 특권을 가진 듯 일방적인 굴종을 정부에게 강요했다.하지만 세월이 흘러 세련과 합리성이 가미되면서 정부는 ‘애인’(愛人)으로 용어 전환이 됐다. 만약 아내에게 남편의 애인의 존재가 발각되면 그 애인은 거리낌 없이 당당함으로 맞서고 아내는 거친 몸싸움 대신 남편에게 위자료를 요구하며 가정법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홀로 남는다. 극단적인 예라고 하지 마라.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곧잘 나오는 등장인물이니.원싱(원래 싱글), 돌싱(이혼과 사별 등으로 혼자 지내는 사람), 비혼족(非婚族), 기러기아빠, 마마보이, 파파보이, 섹스파트너, 동거족…. 과거에는 들을 수 없는 가족형태나 가족 구성원,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 등을 규정하는 용어들이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속속 등장하고 있다.특히 가족의 형태와 역할이 변하면서 새로운 아버지를 규정하는 용어와 명칭이 등장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아버지상이 정립되고 이는 드라마나 영화, 광고, 가요 등에 수용되고 있다.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이다. 그것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함에 따라 낮은 형태로부터 높은 형태로 발전한다. 가족은 사회,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면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대중문화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주요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는 드라마나 영화, 광고, 가요는 시대와 산업구조, 사회 시스템에 따라 변화하는 아버지의 형태와 역할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이 대중문화 텍스트 속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과 역할은 어떻게 변모했을까.‘가장’(家長)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였던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권위였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가난의 시절 1960년대까지 말이다. 60년대 관객과 만났던 영화 속의 아버지(김승호)는 근대화 이전의 우리 사회의 아버지 전형, 가장이었다. 삼남매를 둔 홀아비는 힘든 마부 일을 하면서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침범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근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고 그 과실이 고도성장과 도시화로 나타난 70년대는 가족의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가족의 규범적 형태이자 전통적 형태인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3대 가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버지와 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의 형태가 대세를 이뤘다. 이 와중에 아버지의 독점적 지위는 예전보다 크게 약화됐지만 가족의 생계와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사랑을 베푸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여전했다.74년 4월15일 시작해 75년 10월 끝나 398회가 방송됐던 KBS 일일드라마 에서의 아버지는 핵가족의 형태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자식을 위해서는 힘이 돼주고 비뚤어져가는 자식에게는 엄한 회초리가 돼 인생의 교본 역할을 하는 아버지(김희갑)였다. 이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의 대표적 모습이었고 현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우리의 아버지였다.경제성장의 효과들이 생활향상과 화려한 소비로 나타나고 돈의 위력이 발휘된 황금만능주의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해체나 파편화가 본격화한 80년대에는 전통적 아버지상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아버지상의 혼재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80년대 초반 시작됐던 MBC 주간드라마는 격변을 겪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시대에 맞지 않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는 비판과 상실해 가는 전통적 가치를 지킨다는 찬사가 이 드라마에 동시에 쏟아졌던 것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변화의 진통의 방증이었다. 김회장(최불암)으로 대변되는 아버지는 사랑과 희생의 아버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찾아가면 늘 변함없이 맞아주는 고향의 느티나무 같은 전통의 아버지상이라면 극중의 자식들(김용건ㆍ유인촌)로 대변되는 아버지는 수직적 권위가 수평적 권위로 전환되는 약간은 민주화된 아버지로의 단초를 보였다. 무언(無言)으로 사랑을 표현하던 모습이 아닌 자식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며 자식의 등을 두드려주는 유언(有言)의 아버지가 등장한 것이다.남녀권력차별의 시대에서 남녀동등권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속화되고 힘이 중시되는 하드웨어 사회에서 창의성과 부드러움이 강조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가 된 90년대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휩쓸어왔던 남성책임주의, 맏아들 제일주의 등 가족 근간의 이데올로기들이 구시대의 유물로 퇴장하던 시기였다. 가족해체나 파편화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의 가정을 덮쳤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권위의 상실과 역할의 축소로 나타난다. 존재 자체가 권위였던 아버지는 쓸쓸히 대중문화 속에서 퇴장준비를 하고 대신 자식들과 아내에게 경제적 책임만을 지는 기능적 아버지로의 모습이 대세를 이룬다.90년대 이후 아버지 역할 ‘축소’90년대 등장해 10년 넘게 우리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있는 트렌디드라마에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아니 나온다 해도 고작 식탁에서 밥 먹는 장면에서만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가정 내,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축소됐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90년대 중반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절대권위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드라마 는 현실 속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버지상의 향수가 불러일으킨 반응의 방증이었다.화려하게 지속될 것만 같던 경제의 거품은 순식간에 거치고 외환위기로 노동유연성이 강조되면서 명예퇴직, 감원, 구조조정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던 90년대 후반부터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2000년대 초중반의 상황은 생계만을 책임지는 기능적 아버지로서의 모습조차 설자리를 잃게 한다.또한 이제 더 이상 가족이라는,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떠안던 아버지는 우리 대중문화 텍스트 속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일일드라마 에서 자식(서경석)에게 생선의 뼈를 발라주는 아버지(김용건),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아버지가 전혀 거부감 없이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대중문화가 담보하기 때문이다. 영화은 더 이상 가족에서의 중심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사회와 산업구조에 따라 아버지의 지배적인 상과 역할의 급변은 전통적 아버지의 그리움으로 드러난다. 바로 드라마 의 아버지(송재호)에 대한 시청자의 열띤 반응은 더 이상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그리움의 구체화다.이제 사물과 현상이 0과 1이라는 2개의 숫자로 변환되는 디지털시대가 대세를 이룬다. 디지털시대에 걸맞게 가족의 형태와 아버지의 역할은 변형, 합성, 조합이 너무나 쉽게 이뤄진다.하지만 첨단의 디지털만 좋은 것은 아니다. 전통과 사람의 냄새로 대변되는 아날로그는 낡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첨단의 디지털 아버지가 행복을 보장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의 아버지가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드라마나 영화, 광고 등 대중문화 텍스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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