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Oh my papa!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지난 2002년 인터넷을 휩쓴 작자미상의 글 ‘아버지는 누구인가?’의 일부다. 많은 이들이 이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거리로 내쫓긴 아버지들도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로 이어진 21세기 벽두의 아버지 신드롬은 지금 한풀 꺾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우리 시대의 ‘화두’로 남아 있다. 오히려 불안한 경제, 계속되는 구조조정, 기러기아빠 증가, 호주제 폐지 등 일련의 요인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더욱 위협하는 시대다. ‘부자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자격도 없다’던 외환위기 시절의 아버지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실제로 직장 밖으로 내몰린 아버지들이 선택했던 소자본 창업의 경우 지난해 경기불황과 겹치면서 다시 대량 실업자를 쏟아내는 창구가 되고 말았다. 성공률 10%도 안되는 바닥에 경험도, 전략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두 번째 치명타를 맞은 아버지들은 절망해야 했다.퇴직금마저 날리고 가정으로 돌아간 이들은 가족에게서도 배척받아 외톨이 신세다. 이뿐만 아니라 “돈 못 버는 아버지는 필요없다”는 노골적인 멸시마저 당하는 처지다. 아내에게 맞았다며 남편이 경찰에 신고한 건수가 99년 167건에서 지난해 290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통계가 이 모든 세태를 말해 준다면 억측일까.아버지에겐 경제활동의 불안만큼 가족해체도 무거운 고민이다. 직장에서의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사이, 가정은 아버지를 배제한 시스템으로 성질이 바뀌었지만 아버지만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자리가 없더라” 하는 자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버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한달이 멀다하고 이어지는 존속살인, 청소년 자살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특히 자녀교육의 주도권이 어머니 쪽으로 넘어가면서 더 위축된 아버지의 ‘역할’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큰 문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처럼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시대가 멀찌감치 지나가버린 지금,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그럼에도 어떤 아버지는 도리어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하기도 한다.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자신은 돈을 벌어 송금하는 기러기아빠들이 그렇다.의 저자인 독일의 교육자 카를 게바우어는 ‘소년기 아이에게 아버지는 미래를 만드는 최고의 격려자’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거울이자 역사’로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이 단순해 보이는 명제가 오늘의 아버지에겐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아버지 되기’,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되기는 쉬우나 아버지 답기는 어렵다’는 말처럼 배우지 않은 모델을 새로 만드는 게 녹록지 않다.게다가 자신이 모델로 보고 자란 아버지상은 이미 구시대 유물로 던져진 지 오래인데다 자녀는 ‘종(種)이 다른 세대’나 다름없다. 대교 CEO로 일하다 ‘가정’으로 방향을 튼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어른이 된 자식과의 관계로 고민하는 노년의 아버지도 꽤 많다”면서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에 대한 의존과 기대, 원망 등을 서서히 낮춰가는 심리적인 이유(離乳)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어느 때보다 아버지 스스로의 마인드 컨트롤이 요구되는 시대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이면서 쉬운 방법으로 ‘좋은 남편 되기’를 꼽는다. 가정사에 관해 아내 위주 ‘원톱체제’이던 것에서 부부가 공유하는 ‘투톱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집안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리고 가족 구성원의 관심사에 주목하는 등 세부행동도 따라야 한다.의 작가 윌 글레넌은 “일이나 스포츠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우왕좌왕한다”며 오늘의 아버지를 묘사했다.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 일을 빙자한 무관심 등으로 ‘아버지 되기(파더링)’를 간과한 결과는 ‘고립과 더 큰 좌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다행히 최근 들어 ‘아버지 답기’에 관심을 갖는 아버지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설립 10년째 접어든 두란노아버지학교를 찾는 이들이 지난해로 5만명을 넘어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정 시간을 할애에 아이와 함께하는 ‘신인류 아빠’들도 확산 중이다.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우한 시대라고 했다. 가부장 권위가 쩌렁쩌렁하던 시대, 아버지는 울 일이 있어도 울지 않았다. 가부장 권위 대신 ‘좋은 아버지’가 미덕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새벽 세시에 일어나, 엄마보다 열배나 짙은 눈물을 남몰래 훔치는 분’이라는 글귀처럼, 여린 가슴을 숨기고 사는 이가 우리의 아버지다.이제 새로운 ‘아버지론’을 읊어야 할 때다. 눈물 섞인 아버지론 대신 희망과 활력을 노래해야 한다. 세살짜리도 따라 부르는 노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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