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사수하라’ 비상 걸린 넘버2

오비맥주·영남소주 3사 초긴장 돌입

폭풍전야라고 할까. 진로의 우선협상자로 하이트가 선정되면서 주류업계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국내 주류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소주와 맥주시장을 석권한 하이트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졸지에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주류 공룡기업과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주류업체들은 속이 바싹 탈 정도이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소주, 맥주, 양주시장 등 판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소주 - 첫 타깃은 영남권최근 소주업계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폭풍전야’다. 하이트의 진로 인수는 그만큼 강력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소주시장 전체가 재편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는 것. 아직 인수건이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국내 소주시장 규모는 대략 2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진로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2월 기준 55.5%. 특히 수도권의 시장점유율은 92.7%에 달해 소주시장의 절대강자라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 여기에 맥주시장의 최강자인 하이트의 힘이 더해지면 영향력이 더욱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소주업계의 진단이다.하이트-진로 진영의 첫 번째 타깃은 영남권이 될 공산이 크다. 수도권은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한 상태고 충청권 역시 상당부분 진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강원권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해 별 매력이 없고 호남권은 하이트의 텃밭이다.하지만 영남권은 사정이 다르다. 이 지역은 그동안 숱하게 진입을 시도했지만 진로가 자리를 잡지 못한 지역이다. 부산 5.4%, 경남 4.1%, 경북 5.7%로 체면치레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시장도 크다. 영남권 소주시장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올리고 있는 대선주조, 금복주, 무학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전체의 26% 수준에 이른다. 시장진입의 성패에 따라 매출을 크게 올릴 수도 있다.진로가 영남권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이 지역의 강한 지역색 때문이다. 하지만 경남지역에서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트의 힘을 빌리면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하지만 지방소주업체들은 어떤 경우에도 진로의 공격을 방어할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금복주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진로와 경쟁을 하면서 시장을 내주지 않은 이유는 지역 정서 덕이 아니라 우수한 품질과 서비스 때문”이라며 “갑작스러운 시장변화는 없을 것이며 강력한 마케팅과 서비스로 시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영남 3사의 공동대응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더욱 강력해진 경쟁자에 맞서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는 것. 대선주조의 손흥식 기획이사는 “최대 업체인 진로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주시장의 환경이 불안정한데다 만만한 경쟁사가 하나도 없다”며 “영남 소주업계의 공생을 위해 필요에 따라 공동대응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강원권에서 진로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산주류도 자신감에 차 있다. 이번 상황은 예상된 것이며 이에 대한 준비도 진작부터 해왔다는 것. 회사측의 한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조직을 정비해 내실을 다져왔다”며 “신제품 개발도 완료해 출시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진로의 영향력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민기업’으로 알려져 있던 진로의 이미지가 이번 일을 통해 상당부분 희석된데다 대부분의 도매상이 이번 인수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양사가 합병될 경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도매상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해 도매상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진로와 하이트의 합병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은 진로측에서도 들린다. 진로의 한 관계자는 “합병의 시너지 효과는 틀림없이 있겠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방어력이 강한 지방업체들은 품질경쟁력이 뛰어난데다 지역정서를 동원한 전략을 구사하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고 방어력이 약한 곳이라 해도 지역정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맥주 - 수도권 대충돌 전야맥주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도 흔치 않다. 만년 2위 하이트가 1993년 ‘하이트’를 출시하며 1등 기업 오비에 도전장을 던진 뒤 두 회사의 자존심 경쟁이 오랫동안 맥주시장을 달궈왔다. 부동의 맥주 명가로 명성을 떨치던 오비는 96년 ‘천연암반수’ 전략을 펼친 하이트에 허무하게 1위를 넘겨줬다. 오비는 그후 모기업이 두산에서 98년 인베브(당시 인터브루)로 바뀌는 와중에도 맥주시장 1위 탈환을 틈틈이 노려왔다. 하지만 하이트는 현재 5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맥주시장 1위 자리에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진로로부터 카스맥주를 인수하며 대역전을 노렸던 오비는 두 브랜드를 합쳐도 시장점유율이 42%에 머물고 있다.오랜 숙명의 라이벌인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경쟁에 다시 한 번 전운이 감돌고 있다. 맥주 강자 하이트가 진로의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 됐기 때문이다.일단 유리한 하이트측은 아직까지는 함박웃음은 감춘 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이트맥주의 한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뿐 아직까지 정밀심사를 거친 것도, 본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다”며 “넘어야 할 벽을 모두 넘은 뒤 진로 인수 이후에 맥주시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짜겠다”고 말했다.당장 불이 붙을 곳은 수도권. 하이트맥주는 전국적으로는 분명 1위이며 연간 3조3,000억원 규모인 맥주시장(주세 포함)에서 1조9,000억원을 차지하지만, 수도권으로만 좁히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이트맥주의 수도권 시장점유율은 40%로 60%의 오비맥주(카스 포함)에 밀리고 있다. 서울ㆍ경기의 소비자 가운데 하이트보다 오비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 반면 하이트는 부산과 대구 등 영남권 시장에서 특히 강해 이곳에서는 9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나타낸다.반면 진로는 수도권에서 소주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양사의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이트와 진로의 양사 유통망만 공동 활용하고 연합마케팅만 펼쳐도 수도권에서 오비맥주의 아성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하이트ㆍ진로’가 핵폭풍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한 오비는 어떤 입장일까. 오비맥주도 겉으로는 담담한 모습이다. 정용민 홍보팀 차장은 “오는 7월 말까지는 변수를 따져볼 것”이라며 “하이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본계약까지 체결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맥주시장 전략을 다시 세우기 전에 모든 변수를 살펴보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하지만 하이트의 진로 본계약이 체결돼 진로 인수 절차가 끝나면 오비맥주는 라이벌에 수도권 시장도 내줄 수 있게 된다.박종렬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트가 최종적으로 진로를 인수하게 되면 열세를 보였던 서울ㆍ경기 맥주시장의 점유율이 뛰어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오비가 하이트에 대응할 카드가 어떤 것인지 아직까지 소비자의 눈에는 전략이 보이지 않지만 사실 오비측은 올 봄부터 역량 재정비 작업을 펼쳐왔다. 그 선봉에는 김준영 사장이 서 있다. 인베브는 지난 3월 오비맥주를 인수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사장을 앉혔다. 연초에 취임한 패트리스 티스 사장을 몇 달 만에 한국인으로 바꾼 것은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영업총괄부사장에서 승진한 김준영 사장은 한국과 미국, 일본의 코카콜라를 거쳐 99년 오비맥주에 마케팅 상무로 합류한 업계에서 인정받는 마케팅전문가. 인베브는 김사장에게 1위 탈환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김사장은 99년 오비맥주의 구원투수로 합류한 뒤 ‘카스’의 새 브랜드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카스의 이른바 ‘톡!’ 캠페인, 즉 ‘내가 살아있는 소리, 카스’라는 제품 컨셉을 젊은층에게 각인시켜 현재 오비맥주 매출 가운데 카스가 60% 오비가 40%를 차지하게 됐다. 이후 ‘그냥 친구가 진짜 친구다’는 오비의 카피를 대대적으로 유행시켰고 또한 페트병맥주 ‘오비 큐팩’ 출시에도 앞장섰다.진로 인수 가능성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하이트와 한국인 사장 취임으로 공격적인 추격전을 펼치려는 오비. 양사의 경쟁이 한층 더 가열될 조짐을 보이면서 승리의 여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관심을 끌고 있다.위스키 - 하이트 급부상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주류업계에 미치는 여파는 클 수밖에 없고, 위스키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위스키시장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미 하이트맥주의 경우 ‘랜슬럿’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위스키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아직 점유율이 4%를 오르내릴 만큼 시장에 미치는 힘이 약하지만 그동안 잠재력만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았다.이런 상황에서 하이트의 진로인수가 확정되면 메가톤급 변화가 불가피하다. 진로를 통해 위스키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진로는 국내 위스키시장의 쌍두마차 가운데 하나인 진로발렌타인스 지분을 30%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임페리얼과 발렌타인이 주력인 진로발렌타인스는 시장점유율이 35%를 넘나든다. 국내 위스키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5 가운데서도 디아지오코리아와 쌍벽을 이룬다.윈저와 딤플이 간판인 디아지오코리아는 그동안 1위를 독주하다가 최근 진로발렌타인스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입장이 됐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선두를 빼앗기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근 최고경영자(CEO)를 한국인으로 교체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그 뒤를 이어 스카치블루 브랜드로 유명한 롯데칠성이 ‘넘버3’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스키 전문업체는 아니지만 롯데 나름의 막강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17~18%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나머지 두 자리는 하이트 계열의 하이스코트와 시바스리갈을 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차지한다. 두 업체 모두 4%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위스키시장 진출이 늦은데다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서지 않아 업계 내 위상은 높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업계 재편의 ‘키’를 쥘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특히 하이스코트는 하이트의 진로인수가 확정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진로발렌타인스가 35%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여기에다 하이스코트의 4% 정도를 더하면 40%에 근접한다. 디아지오코리아를 제치고 부동의 1위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 셈이다. 아직 두 회사의 합병 여부를 예상하기는 이르지만 하이트 계열이 될 경우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올 들어 위스키업계는 오랜 불황 끝에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월 위스키 출고량은 48만7,804상자(750mlㆍ12병)로 전년 동기(47만288상자)에 비해 3.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위스키 출고량은 전년보다 9.5%포인트 줄었고, 지난해에는 18%포인트나 감소했던 것을 감안할 때 위스키 소비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시장상황이 나아지면서 업체들 역시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시장점유율 높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접대비 실명제, 성매매특별법 등 시장환경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바(Bar)와 카페에 대한 마케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또 페르노리카코리아가 로얄살루트 38년산을 내놓는 등 신제품 출시도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출고량에서 보듯 위스키업계는 올해를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하이트맥주의 진로인수가 가시화되면서 이에 따를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업계 판도가 바뀌면서 시장점유율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전통주 - 아직은 ‘무풍지대’전통주 시장은 하이트-진로 합병의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진로가 과실주인 ‘천국’을 판매하고 있지만 비중이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언제라도 전통주 시장 진입을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통주 시장의 지각변동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전통주시장은 지역색도 희미해 대기업이 공세를 벌이면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점쳐진다.국내 최대 전통주업체인 국순당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피했다는 분위기다. 식음료 시장에서 막강한 유통망을 자랑하는 롯데나 CJ보다는 하이트가 수월한 상대라는 것. 전통주 브랜드가 없는 롯데나 CJ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승패를 예측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회사측의 한 관계자는 “진로나 하이트가 공세적으로 나오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백세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고 80여개의 튼튼한 자체 유통망을 활용하면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산사춘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배상면주가도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 마찬가지다. 이유도 같다. 회사측의 한 관계자는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앞서 3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며 “가장 우려한 롯데를 피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전통주업계가 진로나 하이트에 위협을 덜 느끼는 이유는 진로의 천국에 맞서 시장을 지켰다는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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