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3역 여장부… ‘제조업 지킬 터’

쓰러져가는 공장 되살려 알토란 기업으로 키워내

문유정 사장(38)이 경영하는 성림하이텍은 전자ㆍ통신ㆍ기계부품 가공업체다. 통신기기, 반도체장비 등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생산해 관련 벤처기업, 대기업에 납품한다. 3D CAD, CAM 설비와 5대의 머시닝센터를 갖춰 기계설계부터 정밀 가공제품 생산까지 직접 해내고 있다. 주로 알루미늄을 깎아 정밀부품을 만들어내는 게 성림하이텍의 ‘전공’.말 그대로 ‘쇠를 깎는’ 굉음이 가득한 공장은 광활한 인천 남동공단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75평 가건물에 직원수 5명의 작은 기업이어서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알토란이 따로 없다. 매년 조금씩 매출액을 높여가며 고가의 설비를 하나둘씩 확충하고 영업선도 다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5억원으로 목표를 올려잡았다.여성이 경영하기에는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분야지만 문사장은 공장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타고난 기름밥 체질이다. 어릴 때부터 틈틈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판금공장에서 일을 도운 덕택에 보통 여성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혀 다른 분야인 유아교육과에 진학, 유치원 교사로 일해 봤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문사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장이지만, 이곳에서 그는 혹독한 아픔을 겪었다. 꽃다운 22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판금공장에서 오른손가락 2개를 잃었다. 철판을 누르는 프레스기계에 당한 사고였다. 얼굴 한쪽도 머시닝센터를 살피다 입은 화상 자국이 뚜렷하다.겉모습뿐만 아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공장을 차린 후에도 어려움이 끊이지 않았다.2000년 머시닝센터 두 대로 시작한 사업은 연매출 1억원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2003년에는 아버지의 판금공장이 부도를 맞았다. 보증관계에 있던 문사장의 공장에도 큰 타격이 왔다. 가뜩이나 힘들었던 사업이 아예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시련은 가족관계도 해체하게 만들었다. 이혼을 한 것도 이때였다. 일터와 가정 모두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하지만 문사장은 당찬 성격을 발판으로 이내 새 출발에 나섰다.“다 쓰러져가는 공장을 떠맡아 생산과 관리, 경영의 1인3역을 하며 밤샘을 밥 먹듯 했지요.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의 역할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때였어요. 중국으로 부품 조달 라인을 옮기려는 거래처를 붙들기 위해 뛰어다니고 운영자금 대출을 위해 은행, 지원기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요. 그런 노력 덕분인지 차츰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더군요.”보통사람 같으면 ‘꼴도 보기 싫다’ 할 만큼 큰 상처를 준 공장이지만, 문사장은 오히려 이곳에서 결판을 보자고 덤볐다. 한편으로는 인천기능대 컴퓨터응용기계과에 진학해 공부를 하여 틈틈이 경영서적을 읽고 여성경제인협회에 나가는 등 CEO 소양 쌓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문사장은 최근 또 다른 희망을 발견했다. 그동안 운영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낯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털어놓고도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는데, 사업성을 인정받으면서 자금 조달에도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이혼과 부도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숱하게 경험한 터라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최근 인천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자금인지 모릅니다. 자금 지원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뛰면서 여성가장, 소기업 운영자의 자립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어요.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이 자립하려는 여성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사회의 편견도 없어져야 하고요.”문사장의 좌우명은 ‘견디자’. 예사롭지 않은 집념과 배포, 부지런함은 그의 좌우명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잘사는 기업 만들기’다. 제조업이 쇠락해가는 현실이지만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품질로 승부, 종업원과 행복을 나누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의지다.“한방에 성공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키워나가야 바탕이 튼튼한 기업을 만들 수 있지요. 그간의 시련은 체질을 더 강하게 만든 자양분이라 믿어요.”활짝 웃는 문사장의 얼굴에서 예사롭지 않은 힘과 에너지가 뿜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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