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기술개발 ‘밀어주고 끌어주고’

대학내 R&D센터, 맞춤형 교육과정 속속 등장… 취업난 해소에도 도움

1990년대 미국 경제성장률의 43%를 담당했다는 실리콘밸리의 태동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 대학의 위기에서 시작이 됐다. 80년대 중반 학생수가 급감하면서 재정위기에 몰린 대학들이 산업계와의 제휴를 통해서 위기탈출을 모색한 것이다.당시 스탠퍼드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대학등이 테크노파크 형태의 산학협력 단지를 조성해 기업을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벌였고, 이 같은 노력의 하나로 탄생한 것이 실리콘밸리다. 현재 미국에는 130개 이상의 테크노파크와 700개 이상의 창업보육센터가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스턴 외곽순환도로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하버드와 MIT가 이끌고 있는 루트 128과 뉴욕주립대 중심의 실리콘 앨리, 텍사스 주립대의 오스틴지역 등이 실리콘밸리와 함께 세계 최강의 미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대학 역시 기업으로부터 유입되는 자금과 인력 기술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MIT가 99년 대학발전기금 마련을 위해 15억달러 모금에 나서 불과 2년 반 만에 이를 달성하는 저력을 보여준 사례만 봐도 기업과 대학이 서로에게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대학 - 기업 교류 러시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근래 들어 크게 활발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 미국 대학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상당수 대학들이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대학의 경영사정이 악화되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교생의 대학진학률이 지난해 81.3%로 미국의 63.3%, 일본의 49.1%를 크게 앞지르며 대학교육의 양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핵심인재 양성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실제 지난해 발표된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는 60개 국가 중 59위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어 기업과 사회의 필요에 맞춰 대학의 대대적인 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새해 들어 대학과 기업간의 교류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성균관대, 한양대, 부산대, 인천대 등이 잇달아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및 경제단체 등과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치기로 협약을 체결하는 등 대학과 기업간 교류에 봇물이 터지고 있다. 특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에 집중되던 기업들의 지원 및 교류가 다른 대학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기업과의 교류는 정부 발주 연구 프로젝트를 공동 수주하는 형태의 단순 연구프로젝트에서 벗어난 것이 특징이다. 최근의 교류는 공동 R&D센터 설립 등 연구개발 분야와 기업 직원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 개설, 그리고 우수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재학생 실무교육 강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한양대의 경우 올 들어 LG전자와 산학협력 교육과정을 개설해 정보통신 관련 분야의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LG화학과도 전지사업 인재양성을 위해 맞춤형 전공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들 과정에 합격하면 장학금 혜택과 함께 현장실무 교육을 받게 되며 취업에도 혜택을 준다.성균관대는 올 봄 학기부터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윤우 부회장, 황창규 사장 등 삼성의 간판 CEO가 강연을 맡은 2학점짜리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성균관대는 2000년부터 사내대학인 삼성전자 공과대와 산학협동 운영약정을 맺고 석ㆍ박사 과정 공동운영과 기술교류를 하고 있다. 또 내년 1학기부터는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반도체학과를 신설한다. 성균관대는 또 인터넷 포털업체인 NHN과 최근 업무 제휴를 맺고 학내에 초고속인터넷 전용공간인 ‘네이버 카페’를 설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NHN은 성균관대 중앙학술정보관에 130여평 규모의 카페를 설치해 IT인력 육성에 활용하도록 하는 한편 자사의 실무자들을 강사로 파견해 인터넷 비즈니스 실무특강도 하기로 했다.경희대는 지난 1월 서울시, 아시아나항공 등 25개 기관과 공동으로 ‘서울컨벤션산업발전 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교류협정’을 체결하고 컨벤션산업 발전에 나서고 있다. 또 정보디스플레이학과와 LG필립스LCD 안양연구소간에 교류 협정을 맺고 대학원생을 위한 ‘박막트렌지스터 액정 디스플레이2’ 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국민대는 2001년부터 IBM코리아와 함께 BIT전문대학원에 ‘데이터 및 지식 엔지니어링 전공’ 등 현장 적용 중심의 석사학위 과정을 신설한 것을 비롯해 SAP코리아, HP코리아 등 유수의 기업들과 산학협력 협약을 맺고 있다.아주대의 경우 공과대학과 정보통신대학에서 교과과정 개설과 재학생 인턴십을 통해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최근 공과대에 ‘산학협력자문위원회’(가칭)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원 교육으로는 석사과정인 학연산협동과정이 마련돼 지난해 1학기부터 삼성전기, 2학기부터는 LG전자 DDM사업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공동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공공단체·해외제휴도 활발부산대는 지난 1월 LG필립스LCD와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하고 LCD기술 개발과 인력양성을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이에 따라 부산대와 LG필립스LCD는 공동으로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교내 석ㆍ박사과정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며, 이들을 졸업 후 LG필립스LCD에 취업시킬 계획이다. LG측은 앞으로 3년간 이를 위한 연구비 3억원을 지원한다. 부산대는 또 2003년부터 삼성SDI 부산공장과 ‘드림캠퍼스’라는 이름으로 사내대학 과정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영MBA와 전자공학 2개 전공에 대한 석사과정도 추가해 현재 30여명을 교육 중이다.서울시립대는 올 들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산학기술교류 및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MS 본사가 실시하는 SSN(솔루션 공유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처음 운영하기로 했다. 또 교수진에 대한 MS의 기술지원과 소프트웨어 개발 지원, 정보제공 등을 받기로 했다.이밖에 영진전문대와 두원공대, 용인송담대, 남도대, 동의공대 등 5개 대학은 삼성전자와 산학협력을 맺고 올해부터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졸업생에 대해서는 취업에 특전을 받기로 했다. 전문대학의 경우 특정 기업과 협약을 통해 기업명칭을 붙인 학과를 개설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형태의 교육과정은 기업이 원하는 내용으로 실무위주의 교육이 이뤄져 산업인력 양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취업까지 보장되므로 대학과 기업 모두에 이익이 되는 셈이다. 영진전문대의 경우 하이닉스반, LG실트론반을 올해부터 운영하기로 했으며 경남정보대는 LG전자, 한진중공업, 넥센타이어 등의 이름을 붙인 학과를 개설하기로 했다.대학의 교류대상은 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지역기반을 같이하는 경제단체 등과도 다양한 교류를 펼쳐가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로 인천대가 올 들어 인천여성CEO협의회와 상호협력 협정을 맺었다. 인천대는 인천여성CEO협의회와 공동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기술 이전,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공동연구과제 개발, 맞춤형 교과과정 개설 및 인턴십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서울시립대는 강남구청과 손을 잡고 올해부터 4년간 강남구청캠퍼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는 강남구청 소속 공무원 50명에게 정규 행정학 학사과정의 교육을 실시한다.문경대 역시 충주시 사회복지협의회와 산학협력 및 위탁교육 협약을 최근에 체결했다. 산업체 근로자를 위한 야간교육과 문경대 재학생의 사회봉사활동 협조, 산업체 위탁교육 협조 등에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상지대는 강원농협지역본부와 산학협력 과정을 개설해 농촌여성과 복지대책 추진에 필요한 전문인력에 나서기로 하고 최근 사회복지학과에 농협직원 34명을 선발했다. 대전 한밭대는 인근지역에 위치한 조폐공사와 2000년부터 사내대학을 공동 운영해 그동안 5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부산대를 비롯한 부산지역 대학들은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등이 참여하는 차세대물류IT사업기획단 결성에 참가해 전파식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첨단 항만물류기지 건설계획에 한몫을 하고 있다. 강원대는 올해 기술신용보증기금과 협약을 맺고 산학협력 중심대학 육성사업에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기술신보는 이에 따라 강원대와 함께 지역 중소기업들에 기술거래, M&A, 기술 및 경영진단, 기술평가 보증 등을 연계한 지원사업을 펼칠 방침이다.국제교류에서 성과를 내는 대학들도 등장하고 있다. 인하대의 경우 대한항공, 프랑스의 에어버스, 미국 남가주대학과 공동으로 국제공동연구소를 설립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항공우주공학 분야의 공동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연구소는 국내에 설립하기로 잠정결론이 내려진 상태이며 에어버스가 앞으로 10년간 50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남대는 필리핀 정부와 손잡고 R&D종합단지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이상윤 총장이 2월 초 필리핀을 방문해 필리핀 정부와 ‘필리핀 미래 산업기술 R&D단지’ 설립 기획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돌아왔다. 경제개발특구로 지정된 필리핀 클라크 공군부지 안에 여의도 면적의 33배 크기로 조성될 R&D단지의 설립을 위한 기획사업을 한남대가 맡아 연구 및 생산 분야를 설정하는 등 기초작업을 맡게 됐다고 한남대측은 발표했다.최근 대학의 대외교류가 크게 활성화되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산학협력의 깊이와 넓이 모두에서 빈약함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IMD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산학협력 수준은 24위, 기업간 협력에서 34위에 그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 또 산학협력의 형태도 대기업들이 필요한 교육과정이나 기술개발 파트너를 대학에 분배해주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대학이 수동적으로 기업에 의존만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실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해 11월 국내 550개 주요 기업 부설 연구소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산학연 협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따르면 조사시점 1년 안에 산학협력의 경험이 있는 곳이 절반에 불과했다. 또 현행 산학연 협력체제의 만족도가 5점 만점에 3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산학협력을 하고 있는 연구소 가운데 앞으로 이를 유지하겠다는 대답이 32.5%에 불과해 앞으로 산학협력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기도 했다.산업연구원의 정진화 신성장산업실장은 “지난 몇 년간 대학의 인식이 변화하고, 정부가 산업협력중심대학 지정 등을 통해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산학협력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문제는 양보다 질”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인 교류의 내용이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발전을 위해 대학총장이 민간CEO의 마인드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서강대 산학협력단의 전도영 단장은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 “기술적인 완성도와 사업성이 있는 기술을 대학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며 특히 비영리 기관인 대학이 판로를 개척해 마케팅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산학협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분야에서의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했다.2005년 주요 대학 대외교류 일지1월5일 영진전문대-LG실트론, 하이닉스: 반도체공정기술센터 설치1월21일 부산대-LG필립스LCD: 맞춤형 산학협력 협약 체결1월29일 한양대-LG화학: 산학협력 교육과정 개설2월1일 한남대-필리핀 정부: R&D단지 개발 MOU 체결2월2일 한양대-LG이노텍, LG마이크론: 부품연구단지 설립, 계약형 학과 개설2월3일 서울시립대-강남구청: 강남구청 캠퍼스 운영 협약영진전문대-삼성전자: 컴퓨터응용기계계열 취업 제휴백석대-STS반도체통신: 산학협력 및 위탁교육 협약2월4일 인천대-인천여성CEO협의회: 상호협력 협정 체결문경대-충주 사회복지협의회: 산학협력 협약 체결2월11일 강원대-기술신보: 산학협력대학 지원 협약 체결2월13일 인하대-대한항공, 에어버스: 국제공동연구소 설립 발표2월14일 성균관대-NHN: 네이버 카페 건립 합의2월15일 서울시립대-한국MS: 기술교류 양해각서 체결금오공대-삼성전자: 계약형 학과 개설서울디지털대-LG텔레콤: 모바일 지식네트워크 공동연구 MOU 체결2월16일 전주대-(주)미림: 5년간 기술협약 체결2월18일 경남정보대-LG전자: LG전자 특별반 개설2월19일 부산대-삼성중공업: 드림아카데미 1회 졸업식2월20일 성균관대-삼성: CEO 릴레이 강연 개설2월28일 상지대-강원농협: 농촌여성 및 복지정책 인력과정조인식3월2일 서울산업대-가스안전공사: 산학협력 협정체결 예정돋보기 한양대 학연산 클러스터사업‘한국형 실리콘밸리를 꿈꾼다’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연산 클러스터는 대학캠퍼스 안에 대학과 기업, 국책연구소, 정부기관이 함께 입주해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에 나서는 입체적 네트워크다. 대부분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단편적인 R&D제휴나 교육프로그램에 그치고 있는 반면, 캠퍼스 안에 산학협력을 위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R&D와 교육, 국제교류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특히 기업이 중심이 되는 산학협력의 틀을 깨고 학교부지를 무료 제공해 기업과 각종 연구소 등을 유치함으로써 ‘원스톱 산업체계’를 갖춘다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한양대 학연산 클러스터는 지역혁신을 위한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안산캠퍼스 내 10만평의 학연산협력단지에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안산연구센터가 입주해 있으며 올 연말에 6,300평 규모의 분원이 준공되면 320명의 연구인력이 이곳으로 옮겨올 예정이다. 2007년에는 이를 1만평 규모로 확장할 예정이다. 또 산업기술시험원과 한국전기연구원이 들어와 있고, 벤처기업 70여개가 입주해 있는 경기도 테크노파크 등도 이미 들어서 있는 상태이며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을 유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국제교류 확대를 위한 기반시설로 지하 1층, 지상 11층 규모에 93개의 객실과 국제회의장 등을 갖춘 4성급 호텔 ‘게스트하우스’가 민자유치를 통해 건설 중이다.사업단장인 이재성 교수(한양대 재료화학공학부)는 “기존의 산학협력이 대부분 개별적인 프로그램에 기반을 두고 있어 평면적인 협력에 그치고 있지만 학연산 클러스터는 기업과 정부, 국제연구소 등이 입주해 대학캠퍼스 안에 하드웨어를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입체적인 산학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이교수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체제를 사회와 산업이 요구하는 체제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공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ㆍ사회와 예체능계까지도 산업협력 모델을 확산시켜서 취업률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학연산 클러스터 사업단은 인력양성과 관련해 차세대 기계시스템, IT 및 전자부품기술, 차세대 하이브리드 소재 기술, 테크노 마케팅, 문화콘텐츠기술, 바이오 환경기술 등 7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취업, 연구, 창업 등 각자의 목적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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