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근성 몸에 밴 ‘1등경영’ 전도사

세계 초우량 LG가 평생 목표… 책임·현장경영 앞장서 실천

로마제국 최고의 전성기인 5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좋은 황제가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자질 역시 비범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가장 힘겨운 세월을 선물했다. 19년의 제위기간 내내 자연재해와 돌림병, 내부반란, 동방의 강대국 파르티아와 게르만족의 침략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힘겨운 전선을 누벼야 했다. 동시대의 역사학자 디오 카시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그의 진지한 생활방식과 강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좀더 행복한 세월을 보냈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가 제위에 있는 동안 거의 줄곧 어려운 문제들이 연달아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에게 더욱 깊은 경의를 품는다. 황제로서 그가 직면한 문제는 모두 새롭고 어려운 과제뿐이었다.”돌이켜보면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지나간 10년만큼 힘겨운 시기는 없었다. 30대 그룹의 절반이 무너졌고, 의욕적으로 진출한 사업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지 않은 기업인이 없을 정도다. 현대, 대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한창 잘나가고 있는 있는 삼성조차 쓰린 경험을 겪기도 했다.공교롭게도 올해로 취임 10주년을 맞은 구본무 LG 회장의 행로는 정확히 이 기간을 꿰뚫고 있다. 95년 럭키금성그룹에서 LG로 대대적인 탈바꿈과 함께 그룹 총수자리를 물려받은 구회장은 이듬해 ‘도약 2005’라는 야심찬 중장기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만년 2등’ LG를 10년 안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1등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97년 외환위기는 한국 재벌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정보통신사업의 부진과 신용카드 대란으로 인한 타격까지 LG를 괴롭혔지만 구회장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역경을 이겨냈다.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고, 몇 대에 걸쳐 이어져온 친족경영체제도 정리했다.잇단 계열분리로 재계 서열은 뒤로 밀렸지만, 주력사업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의 주목을 끌며 탄탄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인 셈이다.따지고 보면 구본무 회장의 역경은 본인의 선택이기보다는 주로 과거 경제개발시대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낙후된 경영관행과 산업구조가 곪아 터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분투는 이런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때를 벗고 한결 가볍고 새로워진 LG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답은 역시 구회장에게서 찾을 수 있다.구회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강한 승부근성’을 이야기한다. 본인 스스로도 “누구랑 내기를 하면 내기돈은 돌려주지만 승부만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0년간 구회장이 LG 임직원들에게 갈구했던 것도 이 같은 승부근성이었다.“저는 LG를 반드시 ‘초우량 LG’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회장 취임 전에도 LG를 2등이라고 부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구회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초우량 LG’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사실 구회장 취임 이전 LG에 대한 평판은 ‘인화’를 강조하며 무리한 일을 하지 않는 ‘점잖은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혹자는 ‘건실한 2등’이라고 칭찬을 했다. 하지만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사는 구회장에게 이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었다. 한때 비약적인 성장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론을 내세우며 “10%, 15%의 성장목표가 아니라 30%, 50% 성장하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독려를 했던 것도 임직원들의 머릿속에 ‘1등’이라는 강한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IMF 위기 이후 몇 년간 ‘비약적 성장’ 목표가 ‘현금창출’과 ‘수익위주경영’으로 바뀌어야 했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구조조정 작업이 제자리를 잡게 된 2001년 가을부터 구회장의 눈은 다시 먼 곳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사장단 앞에서 ‘1등 LG’를 달성하자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지금은 1등이 아닌 기업은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대입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수록 1등 기업은 오히려 진가를 발휘합니다. 1등의 프리미엄이 나날이 커진다는 증거입니다.”이후 구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1등 정신’을 강조했고, 직원들의 변화를 독려했다. 지난해 초에는 이 같은 심경을 솔직히 드러냈다.“지난 몇 년간 우리는 1등을 향해 열심히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도 대다수 사업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사업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할 사업들이 오히려 시장의 흐름에 뒤처진 경우도 있었고, 무리하게 외형성장을 추구한 나머지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딛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더 이상 ‘과감한 변화’를 주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새해 들어 구회장은 ‘1등 경영을 통한 1등 LG’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차별화된 전략의 부재와 타성에 젖은 경영방식은 ‘1등 LG’로 가는 우리에게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나섰다. 그만큼 ‘변화’와 ‘도전’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임직원들의 의식변화를 외치는 데는 누구보다 앞서 달려가고 있지만 구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전문경영인에게 철저히 믿고 맡기는 ‘자율경영’이다. LG 기획조정실장과 LG전자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구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헌조 고문은 구회장의 경영방식에서 ‘자율성’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결정을 내릴 때는 항상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상의를 하지만, 결정은 신속하게 내립니다. 결정을 했으면 집행자에게 자율적으로 맡깁니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를 꼼꼼히 챙기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지요.”2005년을 맞은 구본무 회장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연초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인 CES를 참관하며 LG전자의 글로벌 전략을 적극 지원한 데 이어 멕시코를 방문한 것도 이 같은 의욕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1등 LG 달성의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흔히 ‘선진 1등 기업’이라고 하면, 운이 좋아 그렇게 됐다거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떠오를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철저한 시스템하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냉정하게 평가받는 혹독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뼈아픈 고통의 산물인데 혹시 우리들 중 희생 없이도 1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1등 LG’는 결코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악착같이 파고들어 성과를 내고 경쟁에서 이기는 ‘강력한 실천’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합니다.”돋보기 구본무 회장 경영 어록“1등 LG는 1등 경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1등 경영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해 온 사업과 사람에 대한 경영활동을 경쟁사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더욱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업모델을 확실하게 차별화하고, 사업과 전략에 꼭 맞는 핵심인재를 적극 확보ㆍ육성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새해인사모임)“어떠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기술, 고부가가치사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미래 핵심사업을 일궈나갈 우수인재 발굴에도 CEO가 선봉장이 되어 적극 나서야 한다.”(2004년 7월13일 임원세미나)“학창시절에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창의와 승부근성으로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LG가 원하는 인재의 참모습이다.”(2004년 6월24일 LG글로벌챌린저 발대식)“승부사업의 성공과 미래 성장엔진 육성을 위해서는 인재확보가 최우선 과제이며, CEO들이 앞장서 사업전략 방향에 따른 인재확보 전략과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2004년 6월 CEO와의 간담회)“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어려울 때는 물론 호황 때조차도 불황에 대비해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돌파구는 바로 혁신활동에서 찾아야 한다.”(2004년 5월28일 스킬올림픽)“LG의 미래는 연구개발의 성패에 달려 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훌륭한 R&D 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업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2003년 10월23일 연구개발 현황 보고회)“‘1등 LG’를 향한 모든 노력은 ‘정도경영’의 기반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단순히 단기성과가 아닌 50년, 100년 지속하는 일등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건전한 기업만이 오래도록 존경받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금까지 견지해 온 ‘정도경영’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한다.”(2003년 1월2일 새해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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