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 앞세워 ‘조용히… 순서대로…’

희성그룹 첫 단추 꿰고 GS그룹 분리로 마무리

올해 초 57년 동업자인 허씨 가문(GS그룹)이 독립하면서 LG 분가작업이 마무리됐다.LG가는 국내 재벌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한 집안이다. 구씨, 허씨로 엮어진데다 대대로 자손이 많았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10남매(6남4녀)를 뒀다. 그의 아들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6남매(4남2녀)로 다복했다. 창업 초기 구씨가에 사업밑천을 댔던 허만정씨도 슬하에 8형제를 뒀다.양가의 자손들은 대다수가 LG그룹에서 경영에 참여했다. 이러다 보니 양가의 지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지분관계는 복잡해도 이들간의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재산싸움으로 송사를 벌이는 일이 흔하다지만 LG가는 영 달랐다. 3대째 동업을 이어오는 동안 사소한 잡음조차 들리지 않았다.이는 유교적 가풍을 갖고 있는데다 집안의 위계질서가 워낙 분명했기 때문이다. 장자승계는 철저히 지켜졌다. 동생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딸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못했다. 재산은 집안 어른들이 가족회의를 통해 공평하게 나눴다. 어른들의 결정은 법보다 엄중했기에 이를 어기는 자손이 없었다.그러나 늘어나는 자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양가 문중에서는 4대, 5대째 내려갈 경우 잡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에 90년 초부터 계열분리가 조금씩 논의되다가 95년 구명예회장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분리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그의 그룹 분할작업은 촌수가 가까운 곳부터 해결하고 먼 촌수로 옮겨가는 방식이었다.첫 작업은 96년 1월 이뤄졌다. 둘째아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넷째인 본식씨가 분가했다. 당시 LG그룹의 계열사나 다름없던 희성금속과 국제전선, 한국엥겔하드, 상농기업, 진광전기 등의 기업을 모아 희성그룹으로 출범시켰다.지금의 희성그룹은 희성전자, 희성정밀, 희성금속, 희성엥겔하드, 희성화학, 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구본능 회장이 희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희성전자 지분 38.1%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동생인 본식씨가 25.4%의 지분으로 2대주주.이어서 구명예회장의 동생들이 하나둘 새살림을 차려 형으로부터 독립했다. 직전에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동생인 구철회씨(작고)의 자녀들이 LG화재해상보험을 갖고 새살림을 차렸다. 이는 당시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제2금융권 지배구조개선 정책에 적극 부응하는 차원에서다. LG화재보험은 고 구철회 회장의 장남, 3남, 4남이 각각 명예회장, 회장,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2000년 3월 넷째동생인 구자두 당시 LG벤처투자 회장이 짐을 꾸려 LG그룹을 떠났다. 구자두 회장은 연세대 상대를 나와 59년 럭키화학 관리과장으로 입사해 금성전자, 금성반도체 사장 등을 지낸 핵심경영인 출신. 그해 9월 셋째동생인 자학씨도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은 그는 LG반도체와 LG건설 회장 등을 거친 인물. 그의 몫인 아워홈은 전문식당, 식재영업, 단체급식, 패스트푸드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업체다.형제들의 분가가 마무리되자 구명예회장의 삼촌들이 독립을 서둘렀다.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등 창업고문들이 장성한 자녀들을 데리고 분가했다. 세 사람은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그룹의 기반을 닦은 창업공신. 이들의 몫으로 LG전선, E1, 극동도시가스, 가온전선(옛 희성전선), LG니꼬동제련, LG산전 등이 주어졌다. LS그룹은 올 1월 말 현재 자산총액 5조1,000억원으로 재계 20위권에 속한다. LG전자 같은 초우량 회사는 없지만 대다수가 지속적으로 순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다.이렇게 구씨간의 분할이 갈무리되자 57년 동업자인 허씨 가문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그룹의 분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허씨 경영자들이 ‘전선이냐, 정유ㆍ유통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냐’를 놓고 고심했지만 결국 후자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양가의 재산배분 비율인 ‘65대 35’ 원칙이 적용됐다. 이별은 갈등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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