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끌고… 정치 발목잡고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인생사에 좋은 일만 있기도, 나쁜 일만 생기기도 어렵지만 올해 우리 경제는 유독 양극화가 심했다. 2004년 한해 우리경제를 장식한 주요 사건을 되짚어본다.베스트10수출 2,000억달러 돌파 : 경제여건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이 유일하게 숨통을 틔웠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규모는 지난 10월 2,000억달러를 돌파하며 64년 1억달러 돌파 후 정확하게 40년 만에, 95년 1,000억달러 시대를 연 지 9년 만에 2,0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수출액은 지난해 4,045달러로 3,710달러인 일본을 제쳤고 올해 1인당 수출액은 5,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황우석 교수 배아줄기세포 복제 : 지난 2월 서울대 황우석ㆍ문신용 교수팀이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를 이용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특정세포로 분화시킨 뒤 체내에 주입할 경우 파킨슨병과 뇌졸중 및 치매 등 뇌신경질환, 뇌척수손상, 관절염, 당뇨병 등의 질환에 대한 ‘세포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한류 열풍 : 올해는 한류 열풍이 더욱 거세진 한해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류 열풍에 힘입어 올해 외국관광객은 580만명, 관광수입은 59억달러로 당초 목표인 485만명, 50억달러를 초과한 것은 물론 2002년 한ㆍ일월드컵 때의 535만명보다도 많다. 특히 일본에서 ‘욘사마’ 붐을 몰고 온 의 효과는 무려 2조원대에 달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고속철 개통 : 1992년 천안~대전 시험구간에서 첫 삽을 뜬 지 12년 만인 지난 4월 고속철(KTX)이 개통돼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40분 만에 도착하는 시대가 열렸다. 전국을 한나절 생활권으로 바꾼 고속철도는 우리나라의 경제지도를 크게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연간 1조8,500억원의 물류비 절감효과를 기대한다는 당초의 목표치 달성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고속철 개통 후 첫 6개월간, 당초 목표에 비해 수송실적은 59%, 영업수입은 53%에 불과했다.자동차 수출 300억달러 : 올해 자동차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반도체를 누르고 수출 1위 품목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처음으로 200억달러를 넘어선 지 불과 1년 만에 3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며 1976년 ‘포니’ 승용차 6대를 선적한 지 28년 만의 일이다. 특히 현대차는 올해 누계 수출 1,000만대(누계 수출액 816억달러)를 돌파하는 기쁨을 누렸다. 98년 6,355달러에 불과했던 자동차 수출단가는 2000년 7,000달러를 지나 1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디스플레이 세계 1위 :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디스플레이산업에서 한국 전자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브라운관과 TFT-LCD 부문의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올해는 PDP,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도 1위에 오른 것. PDP 시장점유율은 삼성SDI와 LG전자가 48%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중소기업까지 합하면 50%를 기록할 전망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OLED 점유율은 삼성SDI가 40%로 대만(33%), 일본(25%)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삼성전자 반도체사업 30년 : 올해로 반도체사업 3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가 이번에는 세계 최초로 60나노미터(nm)의 벽을 깼다. 60nm 공정의 8기가비트(Gb)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해 내년 양산에 들어가기로 한 것. 8Gb는 칩 단품 하나로 1기가바이트(GB) 시대를 열 수 있는 용량이며, 특히 60nm 미세가공기술은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을 앞선 기술로 D램ㆍS램ㆍ플래시메모리ㆍ비메모리를 통틀어 최첨단 미세공정을 적용한 제품이다.한국 영화산업 활짝 :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 시대가 열렸다. 와 두 작품이 올 상반기에 잇달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월에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80%를 넘기도 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EF쏘나타 2만2,200대를 생산한 것과 같은 규모인 연간 5,000명에 가까운 고용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또 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김기덕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사마리아), 베니스영화제(빈집)에서 잇달아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영화계에서 한국영화의 명성을 떨친 한해였다.부실기업 회생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하이닉스가 올해 순이익 2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해만 해도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으며 생사가 불투명했다. 여기에 미국과 EU에서 덤핑혐의로 상계관세까지 맞는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성장세로 돌아서 5분기 연속 흑자행진에,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의 자리까지 되찾았다. 쌍용중공업과 대동조선 등을 모태로 한 STX도 올해 범양상선을 인수하면서 매출 4조7,000억원에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해운ㆍ조선 전문그룹으로 우뚝 섰다.FTA시대 개막 : 우라나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인 한ㆍ칠레 FTA가 4월 발효됐다. FTA 발효로 2,450개 품목이 칠레에 무관세로 수출되고 있다. FTA 적용 후 처음 5개월 동안은 칠레와의 5억1,600만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장기적으로 전자, 자동차 등 우리 주력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내년부터 논의가 본격화될 일본, EU, 싱가포르 등과의 FTA협상을 앞두고 첫 물꼬를 텄다는 의미를 지닌다.워스트10총체적 내수침체 : 내수경기가 빈사상태에 빠졌다. 소매업 생산은 21개월째 감소세를 보였고 소비심리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축됐으며 민간소비가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소비를 이끌어야 할 부자들도 지갑을 닫았고 불황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던 할인점 매출도 하락세로 반전됐다. 내수침체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정쟁에 밀려난 민생 : 기대를 모았던 17대 국회도 실익 없는 정쟁으로 물들었다. 연초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10월 정기국회에서는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을 빌미로 14일간이나 국회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12월 임시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 의혹이 번지면서 민생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각이 날로 첨예해지는 등 지루한 색깔논쟁이 이어지고 있다.환율급락 : 달러약세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추락하고 있다. 정부가 환율조정에 나섰지만 저지선이 번번이 뚫리면서 11월15일 급기야 1,100원선마저 무너졌다. 12월16일 현재 환율은 1,054원으로 심리적 저지선인 1,050원에 바짝 다가선 상태다. 환율하락에 따라 기업, 특히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유가급등 : 텍사스중질유(WTI)가 10월 한때 배럴당 55달러를 넘어서는 등 고유가 행진이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의 수요증가, 이라크사태 등으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경제는 채산성 악화 등 된서리를 맞았다.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던 국제유가는 12월 들어 다시 오르고 있다. 미국 동북부의 한파 영향으로 난방유 수요가 폭증한 결과다. 여기에 OPEC가 고유가를 유지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고유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신행정수도 파문 :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신행정수도 건설이 위헌으로 판결났다. 이에 따라 부동산시장이 철퇴를 맞았다. 판결에 크게 실망한 충청권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분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청년실업난 심화 : 경기침체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전체 실업률은 전달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청년실업률은 7.3%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이는 전체 실업률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에 따라 임시근로자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고용의 질도 악화됐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구직포기자도 10만명 수준에서 좀처럼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절실한 상황이다.공정거래법 통과 : 논란을 겪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부안 그대로 통과됐다. 재계는 그동안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재벌그룹 계열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모두 무시됐다. 이에 따라 신규투자, 경영권 방어 등 기업환경이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 기업들의 불만이다.중국 쇼크 : 지난 4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의 경기과열 억제 방침을 발표하면서 국내 경제가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증권시장은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면서 종합주가지수가 한달 만에 900대에서 700대로 움츠러드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10월에는 중국 인민은행의 금리인상 발표로 ‘제2 중국쇼크’가 우려됐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자재가 하락 등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구조조정 한파 : 환율하락, 고유가, 내수침체가 겹치면서 기업들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코오롱,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제조업체가 이미 감원에 착수했고 증권, 은행권 등도 이에 합세할 조짐이다. 기업환경이 악화되는데다 정책의 불확실성도 가시지 않아 인력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경제성장률 하락 : 2004년 경제성장률이 싱가포르(8.4%), 홍콩(7.0%), 대만(6.3%) 등 아시아 주요 경쟁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4.7%로 내다보며 이는 아시아 평균인 7.7%에도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해 경기침체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돋보기 히트상품 & 트렌드최대 히트상품은 ‘싸이월드’불황의 골이 깊어진 한해였지만 그 와중에도 빛난 히트상품도 많았다. SK커뮤니케이션의 ‘싸이월드’는 히트상품 차원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2001년 선보인 이래 급성장을 이어가 지난해 1,0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이용자들 사이에 ‘싸이질’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시킬 정도로 문화적 파급력도 상당했다.정보통신업계에서는 고기능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도시바코리아의 노트북 ‘새틀라이트 M30’은 한때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팔려나가 이 회사의 입지를 제고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고화질 액정과 고성능 스피커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한 게 주효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는 매월 5만대가 판매된 삼성전자의 ‘가로본능폰’이 주목받았다. 다른 디스플레이처럼 가로가 긴 화면을 채택한 전략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비데, 공기청정기 등 2004년 유통가를 달군 ‘웰빙’ 트렌드에 부응하는 제품들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웅진코웨이개발의 신제품 비데인 ‘룰루 BA03-A’는 총 2만대가 판매되며 비데업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공기청정기에서는 샤프전자의 ‘플러스마이너스’ 공기청정기가 돋보였다. 살균이온 방식으로 청정효과를 배가한 것이 남달랐다.자동차업계에서는 신형모델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NF쏘나타는 시판 3일 만에 1만대 예약을 돌파한 데 이어 매월 판매대수 1위를 지키고 있다. 스포티지는 판매 첫날 2000년 이후 SUV 차량 부문에서 가장 높은 예약률을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약 2만3,000대가 판매됐고 미출고 차량이 1만9,000대에 이른다.돋보기 말말말“한국 팔자 바꾸자” “기업 옥죄지 말라”“변화에 앞장서 뛰는 공직사회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팔자를 바꿔야 한다”(노무현 대통령 1월 공직자 간담회)는 말로 시작된 2004년은 정치권에서 불어온 갈등의 바람이 우리 국민들 사이에 깊은 골을 패게 만든 ‘상쟁(相爭)의 해’였다. 특히 말 한 마디가 빗어낸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새겼다.느닷없이 몰아닥친 탄핵사태는 올봄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노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뒤이어진 총선정국에서는 때아닌 편 가르기로 ‘폄하’논쟁이 불붙었다. 촛불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이태백’ ‘사오정’ 등 실업자로 몰아붙이는가 하면(홍사덕 한나라당 의원, 대표경선 출마선언),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는 실언이 이어졌다. 심지어 “지금 20~30대는 분별력이 떨어진다”(박상희 민주당 의원, KBS 심야토론)는 등 자기편이 아니다 싶은 계층에는 어김없이 독설이 퍼부어졌다.이해찬 총리가 유럽순방 중에 잇달아 내뱉은 “조선. 동아는 내 손안에 있다” “한나라당이 나쁜 건 세상이 다 안다”는 발언이 몰고 온 파행 정국은 민생현안을 팽개친 국회의 모습을 보여줬다.재계에서는 총대를 멘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시장은 개혁 대상이 아니다” “때늦은 과거를 가지고 기업을 옥죄지 말라”는 등의 말을 쏟아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은 “수출이 꾸준히 잘되고 있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거듭 내놓아 재계가 정부와 화해무드를 타진하는 듯한 기류도 감지됐다.성매매특별법과 관련해서는 이헌재 부총리와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등이 경제에 대한 부작용과 사회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 여성단체들의 눈총을 받았으며 박용성 회장의 ‘하수구’ 발언이 집중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행정수도 위헌결정에 대해서도 ‘서울이 수도면 지방은 하수도냐’는 자조적 표현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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