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변신에 ‘승부수’

‘작지만 좋은 은행’에서 ‘세계 50위권’ 도약 자신감…선택과 집중에 사활

한국 금융사에서 하나은행과 같은 ‘기린아’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제일, 외환, 옛 한미은행 등이 속속 외국인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하나는 차근차근 덩치를 키워 금융권 빅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하나는 충청(98년 6월), 보람(98년 9월), 서울(2002년9월)을 잇달아 흡수합병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오는 2009년까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은행 진입이라는 야심찬 청사진까지 세웠다. 지난 97년 이 은행의 캐치프레이즈가 ‘작지만 좋은 은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하다. 현재 이 목표달성에 사활을 걸었다.그러나 최근 한국씨티 출범 등으로 야기된 대형은행들간의 치열한 영토전쟁은 하나에 보다 정교한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엇비슷한 덩치로 지금까지 경쟁자였던 신한은 조흥과의 합병을 서두를 것으로 보이며 밑에서는 한국씨티가 5위권 입성을 공언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올 태세다. 때문에 특히 내년에는 하나가 선도은행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느냐, 중견은행으로 처지느냐를 가름하는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물론 하나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에 하나는 금융지주회사체제로의 변신을 ‘승부수’로 띄웠다.지난 71년 모태인 한국투자금융을 시작으로 3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하나는 그 스스로 주주들에게 최고의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른바 ‘통합화된 금융서비스그룹’을 지향한다.하나가 이 같은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환경이 갈수록 대형화, 겸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은행이 증권사, 자산운용사, 캐피털사 등을 거느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근의 추세다.이뿐만 아니다. 한국씨티가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고 HSBC가 제일 인수를 검토하는 등 선진 금융자본이 속속 진입함에 따라 영업양태의 선진화가 근본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오는 2008년을 전후해 신바젤협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각 은행들의 자산구조와 영업시스템의 선진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반면 시장의 위기는 상존하고 있으며 전방위적 경쟁은 달아오르고 있다.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는 금융시장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판단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2005년과 2006년은 수익성 극대화를 통해 성장에 속도를 붙여야 하는 시기라고 하나측은 설명한다. 하나의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체제로 변해야 영업력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각 사업별로 유기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하나가 지주회사체제로 넘어가기 위해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바로 대투증권을 무리 없이 인수하는 일이다. 하나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연내에 공정한 매각가격을 산정해 인수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인수 후 대투증권을 집중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지주회사로 완전 전환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더 걸릴 가능성이 있다”며 “하지만 대투를 인수하게 되면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업계는 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그렇다면 금융권의 강자로 남기 위한 하나의 강점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하나는 최근 3년간 중소기업 대출부문에서 자산건전성이 강화되고 순이자마진과 자본건전성이 개선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최고경영자(CEO)가 수시로 바뀐 다른 은행과 달리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8년 가까이 장수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다.그러나 다른 은행과의 차별화를 통해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것은 하나의 약점으로 꼽힌다. 하나 하면 떠오르는 핵심사업이 없고 금융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애매하다는 것이다.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는 내년에 △영업기반 확대 △저금리성 수신 확대 △프라이빗뱅킹(PB) 등 우량고객 시장우위 유지 및 확대 △신규수입원 개발 △품질향상 △성과주의 확산 등 6가지를 영업전략의 화두로 정했다.하나가 스스로 자랑하는 리스크 관리부문에서는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등을 종전보다 약간 수정할 계획을 갖고 있다. PB부문은 5억원 이상 금융자산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골드클럽’ 확대, 지방 거점점포 증설 등의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올해 29조5,000억원을 대출하며 전체 은행수익의 30%를 차지한 기업금융업무에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적용할 예정이다.하나는 산하에 7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11개 은행의 연합체인 비씨카드를 제외한 실질적인 자회사는 6곳정도다. 천진석 사장이 이끄는 하나증권, 알리안츠AG와 50대50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오이겐 뢰플러 사장), 김종열 소장이 이끄는 하나경제연구소, 전산시스템 업무를 담당하는 하나I&S(김종식 사장), 김종수 사장의 한국리스여신, 역시 알리안츠그룹과 공동출자한 하나생명보험(이정세 사장) 등이 그것이다. 이호군 사장이 이끄는 비씨카드도 하나의 가족회사다.내년에는 지주회사 출범과 함께 자회사 2곳 정도가 명단에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대투증권 인수가 마무리되면 지주회사에 편입될 예정이며 현재 은행 사업본부 가운데 하나로 편입돼 있는 카드사업본부를 분사시키는 문제도 검토 중이다.다만 신용카드사업의 경우 분사시키면 마케팅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이점과 함께 조달금리가 높아져 비용이 늘어난다는 단점도 있어 은행 입장에서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중국 소재 칭다오국제은행 등 하나은행이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해외법인들도 오는 2007년 이후부터는 그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성장의 한 방편으로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하나가 2007년 이후에 동남아지역에 자회사를 세우기로 했기 때문이다.앞서 언급했듯 2005년 한해는 하나가 생존하는 데 중요한 한해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경우 내년에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 한국씨티 등 4~5개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권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금융전문가들 가운데는 국민, 신한, 한국씨티 등 3개 은행이 시장을 나눠가질 것이라는 사람도 많다.물론 하나가 올 3분기를 기준으로 7,520억원의 누적당기순이익을 기록, 전년 동기에 비해 112.85%나 증가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씨티의 등장으로 그간 강점으로 인정받아온 PB영업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데다 서울은행 인수를 통해 키워온 이익도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투인수와 추가합병 등이 없다면 하나는 ‘비주류’로 밀릴 가능성마저 있다”며 “하나 하면 떠오르는 강점을 금융소비자들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이 같은 우려에 대해 하나측은 2009년까지 100대 은행에 진입하기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100대가 아니라 50위권에 진입할 자신이 있다”며 “내년은 도약의 첫 단추를 끼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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