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패권다툼 치열… 생존열쇠는 ‘질’

무리한 M&A는 ‘득보다 실 ’ … ‘수익·안정성’ 둘 다 잡아야

“살 떨리고 피 말린다.”A금융지주 모 관계자는 최근의 금융권 ‘새판짜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곁들여 그는 “불확실하다는 게 가장 확실하다”며 “앞날을 점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금융권이 유례없는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겉은 평온해도 내부는 전쟁터다. 합종연횡에 따른 판도변화도 일상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3차 빅뱅’이라 부른다. 과거 1차(외환위기 직후 퇴출ㆍ합병기), 2차(자산확대 등 외형성장기)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3차 빅뱅이 마무리되면 강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한다. 주도권 확보와 이를 통한 ‘리딩뱅크’ 타이틀 획득은 승자의 필수조건이다. 폭풍전야가 끝나면서 금융권은 이제 비상상태에 돌입했다. 대결은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며 동시에 무차별, 무한경쟁을 지향한다.그렇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 향후 어느 회사가 금융시장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을까. 이에 는 금융(은행)담당 애널리스트 1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한국씨티은행 등 이른바 ‘빅5’를 대상으로 1~5위를 선정하게 한 다음 1위에 5점, 5위에 1점을 주는 방식으로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랭킹은 국민(5점×10명=50점), 신한(40점), 우리(30점), 하나(20점), 한국씨티(10점) 순이다. 응답자 전원이 이 순위에 동의했다. 자산ㆍ시가총액 규모 등 수치적 변수와 경쟁력ㆍ이미지 등 무형적 변수가 함께 감안됐다.2004년 현재 순위를 바탕으로 향후 5~10년 후의 판도변화를 물었다. 결론부터 밝히면 신한(44점), 국민(41점), 우리(26점), 하나(20점), 한국씨티(19점)로 나타났다. 신한과 국민의 대역전극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다만 그 가능성은 꽤 조심스럽다. 실제로 점수분포를 살펴보면 3점차에 불과하다. 게다가 5점짜리인 1위는 여전히 국민(5명), 신한(4명) 순서다. 결국 승부는 2위에서 갈렸다. 신한(6명)이 국민(3명)보다 정확히 2배의 점수를 얻었다. 국민을 4위로 답한 응답자도 2명이나 나와 전체점수를 갉아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한은 10명의 응답자 전원이 1~2위에 고루 분포됐다. 결국 점수로만 보면 ‘국민 퇴보, 신한 부각’의 재편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메시지다.신한, 국민의 선두그룹만큼 우리, 하나, 한국씨티의 중위권 싸움도 치열하다. 선두권과의 격차는 추월이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져 있다. 실제로 2위 국민(41점)과 3위 우리(26점)의 간격이 가장 널찍하다. 중위권은 우리의 따돌림 속에 하나와 한국씨티가 박빙의 승부를 펼칠 공산이 크다. 재미난 건 순위별 점수가 수렴된다는 사실이다. 언제든 순위변동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8명에게서 3위 점수를 받았다. 지금과 큰 변화가 없다는 분석이다. 반면 5위 추락을 점친 사람도 2명 있었다. 하나, 한국씨티는 골고루 점수를 받았다. 몰표도 나왔다. 하나 4위(5명), 한국시티 5위(5명)에서 집중적인 응답이 쏟아졌다. 한미를 인수한 한국씨티가 유력한 1위 후보라고 답한 응답자도 1명 나왔다.10명의 애널리스트들은 ‘새판짜기’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입을 모았다. 비록 5~10년을 염두에 뒀지만 빅뱅으로 불릴 만한 판도변화는 그 이상의 시일이 필요한 것으로 요약된다. 때문에 지금의 랭킹구도는 당분간 유지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4명의 응답자는 변화가 아예 없을 것으로 답했다. 굳이 재편된다면 한국씨티의 4위 부상이 유일했다.여기에는 변수가 또 있다. 하나가 인수ㆍ합병(M&A)을 단행한다면 2위권에 바짝 다가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렇다고 신한, 국민의 1위 다툼에 가세할 확률은 낮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하나의 패권쟁탈은 무리라고 보여서다. 물론 1~5위간 격차 축소는 응답자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그만큼 순위 매기기가 유동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편 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춘 기타 멤버들의 5위권 진입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신한의 부각은 사실 예견된 것이다. 증권가뿐만 아니라 업계조차 신한의 저력에는 얼추 동의한다. 그만큼 신한의 중원제패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높다. 그렇다면 신한 파워의 핵심은 뭘까. 설문결과 1위 응답자는 국민(5명)이 신한(4명)보다 많았지만 종합점수에서는 신한이 리드했다.특히 금융경쟁력의 양축인 안전성ㆍ수익성이 모두 국민을 앞설 것으로 정리됐다. 이승주 우리증권 애널리스트는 “신한의 경쟁력은 업계 최고”라며 “시간경과에 따라 질적 우월이 양적 확대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작지만 강한 은행’으로 불리던 신한, 하나의 현재 입지가 이 가설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실제로 양이 커지면 질이 좋아진다는 ‘규모의 경제’가 최소한 금융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게 그간의 사정이다. 10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또 다른 은행을 인수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론도 없지 않다. ‘은행규모=총자산=현금흐름(Cash Flow)=이자수익’이라면 국민보다 열세일 수밖에 없다는 스토리다. 조병문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08년 250조원(자산) 달성 목표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며 “자칫 자산의 질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물리적인 수치로 매년 15%의 성장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무리한 ‘덩치 키우기’가 대손ㆍ연체율 급등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진 LG카드 사례가 대표적이다.국민에 대한 평가는 양분됐다. ‘1위 수성’과 ‘2위 추락’을 두고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다만 현재와 비교해 점유율과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데는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구용욱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민과 신한의 격차는 앞으로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며 “때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위 수성 근거는 역시 현재의 덩치와 영향력에 주로 기인한다.사실 국민의 수신시장 파워는 독보적이다.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패자는 원한다고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다”며 “남들이 인정하고 당국이 협상파트너로 불러줘야 한다”고 전했다. 즉 리딩뱅크로서 시스템 리스크를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데 지금껏 국민만 이를 감수했다는 판단이다. 성병수 애널리스트는 “국민은 고객층, 마진폭이 두텁다”며 “리스크 관리만 해결되면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1위를 빼앗긴다면 그 이유로 부실(소매)심화, 낡은 문화, 기업부문 열세 등이 꼽혔다.우리는 1~2권과 멀찍이 떨어져 중위권을 리드할 가능성이 크다. 양과 질 모두 신한, 국민보다 못하지만 하나, 한국씨티보다는 낫다. 국민처럼 선발은행의 특ㆍ장점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조병문 애널리스트는 “단골고객으로 요약되는 수신파워가 가장 돋보이는 경쟁력”이라고 전했다. 펀딩 측면에서의 경쟁력을 뜻하는 저원가성 수신비중이 국민과 함께 40% 수준으로 월등해 향후 무난하게 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소매와 무역금융에서 우월적 지위가 강조된다. 단 건전성은 보완이 필요하다. 연체와 자산운용에서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상태다. 이들 한계를 시정하는 새 선발주자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지분이 높다는 점 역시 한계로 지목된다.하나의 앞날을 얘기할 때는 M&A 전제가 항상 붙는다.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융권 판도변화는 IMF 때처럼 시스템 변화나 M&A가 아니면 힘들다”며 “현재로서는 외환이 매물로 나왔고, 이것을 하나가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하나의 랭킹은 순식간에 상위권으로 점프한다. 신한, 국민, 우리와 함께 각축을 벌인다는 그림이 가능하다. 단 ‘무리하면 피 본다’는 M&A 부작용이 인수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하나는 자산건전성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국민조차 약점으로 꼽히는 리스크 관리에 일가견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 PB점 등 일부 특화영업을 빼면 고객층이 얇다는 게 한계로 꼽힌다.한국씨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미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운 한국씨티의 향후 행보는 3차 금융빅뱅의 중요한 키워드다. 세계 최대 금융그룹에 걸맞은 글로벌 경쟁력이 발휘된다면 시장평정은 시간문제다. 이재원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건전ㆍ수익성과 다양한 상품ㆍ서비스 등 장점이 많다”며 “자산ㆍ효율 측면의 잠재성이 조만간 표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출범 직후 예상을 깨고 공격적인 시장접근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되는 한국고객의 폐쇄성을 극복해야 하는데다 시장파이를 늘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따라서 PBㆍ신용카드ㆍ기업금융 등 씨티그룹의 원초적 파워가 한국에 먹힐지는 유동적이다.금융재편을 둘러싼 일련의 대결에는 몇몇 관전포인트가 있다. 우선 국적별 대결양상이 눈에 띈다. 토종과 외국계의 경쟁격화는 시장개방 이후의 주류적 추세다. 지분만 봤을 때 외국계가 은행권을 완전히 장악했을 만큼 다국적 금융그룹의 한국진출은 일반적이다. 증권ㆍ보험은 사정이 더 긴박하다. 외환위기 이후 숫자가 더 늘어난 탓에 구조조정 차원의 빅뱅이 불가피하다. 직접인수를 선언한 외국계도 수두룩하다. 사업모델로 종합금융그룹을 지향하는 지주회사가 유행한 것 역시 골리앗 외국계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 차원이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박사는 “향후 국내계ㆍ혼합계ㆍ외국계간의 상호견제, 균형발전이 모색될 것”이라며 “금융기관 민영화는 종합적 차원에서 배려돼야 한다”고 전했다. 민영화 후보기업의 행보도 그만큼 중요해질 전망이다.백그라운드도 향후 금융재편을 이해하는 키포인트다. 이른바 금융자본이냐, 산업자본이냐의 문제다. 가령 산업자본의 대표주자인 삼성이 생명ㆍ화재ㆍ증권을 필두로 금융권에 확대ㆍ안착한다면 기존 금융자본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기업집단의 금융회사 소유비중은 증가 추세다. 자금조달에 따른 거래비용 절약과 업종다각화 결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론에서다. 반면 경쟁제약과 안정성 훼손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반박하는 논리다. 현재 정부방침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다. 칸막이를 세워 금융자본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분명하다.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업무영역별 싸움구도도 뺄 수 없다.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고유영역을 둘러싼 경쟁이다. 현재 흐름은 은행중심의 판도변화다. 2금융권의 구조조정 압력 고조로 대변되듯 금융겸업화는 은행의 강세부각을 뜻한다. 방카슈랑스조차 은행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할 정도다. 박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과 2금융권과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전략적 제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화분야에 따른 도ㆍ소매 양자대결도 볼 만하다. 서민금융 중심의 대형은행과 PBㆍ기업금융 전문은행, 그리고 증권ㆍ보험에 특화된 금융회사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설문응답자 명단(가나다순)구경회(한화) 구용욱(대우) 김홍석(신흥) 성병수(교보) 이병건(동부) 이승주(우리) 이재원(굿모닝신한) 임일성(메리츠) 조병문(LG) 전제곤(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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