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판짜기 가속…물밑 움직임도 ‘후끈’

미쓰비시도쿄-UFJ 통합 작업 박차, 스미토모은행도 파트너 물색 중

일본 금융계의 세력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재편에 따른 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사이에 잇따라 제휴와 합병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금융법 제도의 규제완화를 기다리지 않고 금융회사들이 직접 합병과 매수를 통한 다각화, 복합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직접적인 계기는 미쓰비시도쿄은행과 UFJ가 제공했다. 지난 7월 일본 2위 은행 미쓰비시도쿄가 4위인 UFJ홀딩스와의 합병을 선언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특히 미쓰비시도쿄는 인수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최근 정예멤버로 인수합병 전문팀까지 발족시켰다. UFJ 인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스미토모신탁은행뿐만 아니라 UFJ 외국인 주주들이 아직도 반발하고 있는 까닭이다.미쓰비시도쿄와 UFJ는 2005년 하반기에 합병을 최종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합병은행은 자산규모가 188조엔에 달해 현재 세계 1위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을 누르고 새로운 ‘금융황제’가 될 전망이다.미쓰비시도쿄가 거액의 부실채권(3조9,000억엔)을 안고 있는 UFJ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데는 현재 일본의 금융업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 그대로 반영됐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앞으로 영업기반을 넓혀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특히 최근 들어 일본 금융회사들은 자기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격적 경영을 하는 외국계 은행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가능하면 덩치를 키워 이를 바탕으로 고객층을 적극 공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쓰비시도쿄는 개인 및 소매금융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미쓰비시도쿄와 UFJ의 합병결정은 일본 금융업계에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이들 은행과 경쟁관계에 있던 미즈호홀딩스와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 등은 대응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몸이 된 거대공룡을 견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의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은 금융그룹들의 경우는 아예 생존까지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더욱이 최근 들어 일본 금융계는 은행, 증권, 신탁 등 각 회사별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힘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금융그룹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그룹금융력’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이에 대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금융그룹 사이의 경쟁은 일차적으로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쓰비시도쿄의 구로야나기 사장은 합병선언 직후 “통합 후 이익을 극대화해 고객에게 환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고객중심의 경영을 펼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비해 미쓰이스미토모의 니시가와 사장은 “주주이익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방침을 주주이익 추구에 두겠다는 구상이다.미즈호는 일단 내실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인수합병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언할 정도다. 올해 초 UFJ와 합병한다는 소식이 돌았지만 최근 들어 검토한 적이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증권사 인수설이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강하게 부정한다.은행 1위 자리를 넘겨줬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70%의 상장회사와 거래를 하고 2,300만개의 개인 예금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십분 살려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는다는 입장이다.회사측은 “더 이상 외형을 키우기보다 규모에 맞는 수익을 창출하는 쪽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미즈호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한다.실제로 미즈호처럼 금융권 일각에서는 규모의 경쟁은 이제 의미가 없는 만큼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 규모 면에서 미쓰비시도쿄-UFJ를 능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만큼 비즈니스모델 등의 다양화를 통해 고객을 잡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산규모를 합산한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금융그룹들도 적지 않다.고객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심기 위해 미쓰이스미토모처럼 이익배분 등에 적극성을 보이는 금융그룹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익의 고객환원과 주주이익 극대화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금융그룹 전쟁의 또 다른 축은 증권 쪽이다. 금융재편의 핵심으로 떠오를 만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태풍의 핵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도 적극적이어서 이미 증권사의 전업의무를 폐지했다. 증권중계만 하도록 한 규제를 없애고 업무역영을 대폭 확대시켰다. 금융선물업이나 상품거래업뿐만 아니라 보험모집까지 가능하게 길을 터줬다.수수료율 자유화도 허용했다. 일률적인 규제를 걷어내고 증권사마다 자유롭게 풀어준 것이다. 증권사간의 본격적인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지만 능력 있는 증권사만이 살아남는 생존경쟁의 환경을 만들어놓은 셈이다.지방은행과 손잡는 금융회사 속속 등장증권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자칫 무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증권업계를 강타하면서 다양한 생존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먼저 창의적인 상품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또 은행 등과 손잡고 자산운용과 기업금융분야에 전력투구를 하는가 하면 중소형증권사는 대형은행과 손을 잡고 소매업무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증권사는 수수료경쟁보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증권사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증권중개업 자체를 개방, 개인이나 일반법인에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들도 증권을 중개할 수 있게 됐고, 로손 같은 편의점이나 자동차대리점에서도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가능해졌다.금융권 재편의 움직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때 UFJ신탁은행과 통합을 검토했던 스미토모신탁은행은 이 건이 물건너가면서 미쓰이트러스트와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일단 상대방은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스미토모측은 앞으로 손을 잡을 가장 우력한 후보로 올려놓고 다각도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공적자금지원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리소나홀딩스는 이른 시일 내에 경영을 정상화시킨다는 방침 아래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특히 리소나는 ‘기업풍토의 변혁’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고, 금융유통서비스분야에서 승부를 건다는 입장이다. 다만 3조엔이 넘는 공적자금을 어떻게 갚느냐가 정상화의 가장 큰 변수다.이밖에 마쓰이증권과 소매금융업체 아이플은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금융권 재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터넷전업 증권사 가운데 업계 수위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쓰이증권은 리소나와의 제휴에 이어 지방은행과의 연대도 적극 꾀하고 있다. 이미 후쿠시마은행 등 지방은행 2곳과 제휴를 맺었고, 앞으로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또 아이플은 메가뱅크보다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과의 제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회사측은 “아이플이 여신을 제공하고 해당 금융기관이 결제기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일본 금융그룹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빅3 은행 중심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나머지 금융그룹들도 규모에 맞는 특화된 전략으로 맞서고 있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더욱이 금융회사들 사이에 합종연횡을 위한 물밑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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