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흐름은 ‘토종 vs 외국계’ 양대구도

사업다각화 위한 대형화 대세… 틈새 노린 특화형도 대안

외환위기 발생 이후 국내 금융권에서는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외환위기 발생으로 기업부실이 증가했고, 이들 부실이 금융권으로 집중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이었다.금융구조조정은 최근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형태나 상황에서 변화가 있다. 외환위기 직후의 구조조정이 IMF 자금지원과 대규모 부실채권 정리 등과 관련된 강제적인 성격이었다면, 최근의 구조조정은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금융구조의 재편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의 중심은 은행이었다. 또 최근의 금융권 구조재편 과정에서도 은행권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와 관련한 정책적인 변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의 확대가 이뤄졌다는 점이 타 업종과 달리 은행권이 구조재편의 핵심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다.외환위기 이후 국가적인 충격발생시 이를 흡수해 줄 수 있는 대형금융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경됐다. 이런 가운데 저성장 구조의 출현은 수익확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다각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은행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는 판단이다.은행권의 사업다각화 노력이 금융권 구조재편의 한축이라고 한다면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진출은 금융재편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을 설립했고, 최근에는 HSBC가 제일은행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거 특정고객을 대상으로 소규모 영업을 하던 외국계 은행이 국내은행의 인수를 통해 국내 금융산업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향후의 금융권 판도변화는 외국계의 진출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계의 한국진출에는 어떤 전략과 방침이 있을까. 우선 외국은행의 국내진출이 갖는 몇가지 의미를 살펴보자. 최근 외국계는 국내시장에 대한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외국계 은행들은 국내 지점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시장에서의 성장잠재력을 파악했다. 이제는 본격적인 국내진출을 통해 토착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국내은행의 규모가 확장됐고 사업다각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외국계 진출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다. 국내은행은 합병을 통해 규모가 확대됐고, 또 이를 기반으로 업무영역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규모로 국내시장에서 영업을 전개해 왔던 외국계 은행의 주요 영업범위로까지 국내은행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국내 시장잠재력을 인식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로서는 본격적인 진출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려워졌던 것으로 보인다.외국계는 외환위기 발생에 따른 충격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채권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경제에는 여러가지 충격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과거 멕시코의 경우를 보더라도 외환위기가 재발했음을 감안할 때 한국의 경우도 그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정학적 측면에서 국가위험도(Country Risk)가 지속됐다. 이런 점들이 국내 금융시장의 성장잠재력에도 불구, 본격적인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외국은행의 국내진출이 본격화되는 건 한국의 위험요인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외국계 금융그룹의 국내진출은 국내 금융회사의 영업이 다소 위축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한편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본격적인 국내진출은 상품이나 조달비용 등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선발주자의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시장점유율 하락이나 영업위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특히 과거 소매금융부문에 치중했던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은행 인수를 계기로 경쟁부문이 기업부문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을 방어하기 위한 국내은행들의 경쟁력 제고 노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은행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요인이 부각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 강조될 수도 있다.그렇다면 향후 금융시장 판도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우선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인수ㆍ합병(M&A)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은행의 국내진출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국내은행의 사업다각화 노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경제의 저성장 국면으로의 진입은 국내은행들로 하여금 수익원 확대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다각화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계 은행의 본격적인 국내시장 진출은 사업다각화를 위한 M&A를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사업다각화 노력은 국내 금융기관, 특히 은행의 대형금융그룹으로의 진화를 재촉할 것이다. 씨티그룹의 경우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재는 금융지주회사 형태의 대형금융그룹으로 변신했다. 대형금융그룹으로의 변신은 새로운 수익원 확대라는 필요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은행도 이런 변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고 외국계 은행의 본격적인 국내진출은 이러한 노력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현재 씨티그룹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사업모델을 진화시키고 있는 은행은 신한지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금융도 이미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했고, 조직의 심화 과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밖에 하나은행도 금융지주회사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국민은행은 아직 금융지주회사의 사업모델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유니버설은행(Universal Bank)으로의 비전을 제시한 상황이다.또한 금융기관의 계층이나 특성이 보다 분명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금융그룹이 탄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금융기관이 대형화에 성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전체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업종별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력에 있어서도 차별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금융기관별 특성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모든 금융부문을 포함하는 대형금융그룹과 업종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중소형 금융기관, 그리고 지방에 특화된 금융기관의 형태로 금융기관이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 구도가 형성된 이후에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1~2년간은 자사만의 특성을 만들어가려는 금융기관간의 노력이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결국 외국계 은행의 본격적인 국내진출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시장을 지켜내려는 국내은행과 시장을 확대하려는 외국계 은행의 대결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국내은행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업다각화 노력을 지속할 것이고, 외국계 은행은 기존 은행의 인수와 선진금융서비스를 이용해 시장확대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국내와 외국계 은행과의 대결 승패는 국내은행의 사업다각화를 핵심으로 하는 사업모델 구축의 성공여부와 외국계 은행의 현지화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은행의 경우 상품의 다양성이나 선진금융기법 등과 관련된 부분이 취약하지만 현지화라는 측면에서는 강점을 지니고 있는 반면, 외국계 은행은 선진금융서비스 제공이라는 강점이 있지만 현지화에서는 열위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결의 승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국내은행과 외국계 은행간의 대결과정에서 국내은행들은 자사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고, 이는 금융시장의 구도를 재편하는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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