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 ‘막강’…적응력은 ‘글쎄’

PB·기업금융 단기성장 어려울 듯…내부갈등 수습도 과제

씨티은행과 한미은행의 통합을 11월1일자로 출범한 한국씨티은행의 기세가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의 한국시장 본격상륙이라는 점에서 리딩뱅크 경쟁에서 태풍의 눈으로 지목을 받고 있는 한국씨티는 출발부터 외형성장의 기치를 걸고 총공세로 나서고 있다. 총자산규모 기준으로 현재 6~7% 수준인 한국씨티의 시장점유율을 2007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하영구 행장의 취임일성부터가 국내은행들을 긴장시켰다.이를 반영하듯 한국씨티는 지난 11월8일부터 한달여에 걸친 통합기념 이벤트를 벌이면서 대대적인 고객몰이에 들어갔다. 특히 시중은행 최고수준인 연 4.5%의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을 내놓아 은행권에 가격경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은행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33%의 고성장을 기록했던 씨티카드사업에 한미의 카드고객 342만명이 통합되면서 국내 5~6위권에 해당하는 428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한국씨티가 다른 카드사를 인수할 경우 단번에 선두권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한국씨티가 LG카드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한국씨티가 이처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시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의 자금력과 영업력, 글로벌 네트워크를 등에 업은 파괴력 때문이다. 씨티가 1977년 부산지점을 처음 개점한 이래 국내에 겨우 15개 점포만을 운영했던 데 비해 한미의 점포 223개를 손에 넣음으로써 순식간에 한국금융시장에서 임계질량(Critical Mass)을 넘어서는 폭발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한국고객 잡는데 시간 필요한국씨티의 외형은 총자산 기준으로 66조원에 달해 8개 시중은행 가운데 6위인 조흥과 비슷하며 원화대출금은 24조원으로 7위, 직원수는 5,576명으로 제일(5446명) 다음으로 가장 적다. 외형상으로는 현재 6위권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자회사로는 한미캐피탈과 한미열린기술투자가 있으나 외형이 그리 크지 않아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씨티그룹은 98년 보험과 증권에 강했던 트래블러스그룹과 씨티은행이 합병함으로써 탄생한 미국 최대의 종합금융회사다. 2002년 기준 자산규모 1조971억9,000만달러에 총수익 925억5,600만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순익만 152억7,600만달러에 달했다. 씨티그룹은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 2억여개의 고객계좌를 보유하고 있다.씨티그룹을 배경으로 삼는 한국씨티의 강점은 고액자산가를 위한 PB(프라이빗뱅킹)를 포함하는 소비자금융을 들 수 있으며 시티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IB(인베스트먼트뱅킹)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또 씨티그룹의 대외신인도에 힘입어 자본조달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신용평가모형이나 리스크 관리 등 선진금융기법을 앞세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특히 소비자금융의 경우 15개에 불과했던 씨티 지점에 한미 지점 223개가 추가됨으로써 소비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통로가 대폭 확장됐다는 점이 큰 의미를 지닌다. 전국적인 지점망을 토대로 씨티의 질 높은 금융서비스가 제공될 경우 소비자금융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LG경제연구소 조영무 선임연구원은 “씨티그룹이 자본조달력과 영업력에서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어 은행권 판도변화가 예상된다”며 “특히 소비자금융과 IB의 결합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자금융은 점포수나 수익성만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IB와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처를 확보해야 하는데, 씨티그룹은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국제투자처를 갖고 있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씨티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는 기업금융에도 상당한 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행장이 “중견ㆍ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금융 역시 영업의 핵심으로 삼겠다”며 소비자금융과 기업금융의 균형을 지향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스티븐 롱 씨티그룹 아시아ㆍ태평양 기업투자금융 대표도 “소비자와 지점, 기업 등 모든 부문에서 조직의 균형을 갖추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포석을 뒷받침했다.한국씨티가 국내 금융권 판도에 큰 파급효과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단기간에 리딩뱅크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씨티와 한미 두 은행의 조직통합 문제를 비롯해 내부적으로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씨티가 자사의 강점을 발휘해 한국 소비자와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이승주 우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씨티가 PB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지녔지만 제도권 흡수가 가능한 개인자산 52조원 가운데 대부분이 이미 은행에 들어온 상태라 남은 시장이 10조원을 약간 상회할 것”이라며 “이 부문에서의 성장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진단했다. 또 씨티그룹의 해외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금융에서도 오랫동안 신용관계를 유지해 온 기업들이 쉽게 은행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한국씨티가 외형성장보다 내실경영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지적이다.또 한국씨티의 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수준이 높은 반면, 이를 갑자기 늘어난 전체 지점에 확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오히려 기존 씨티 고객을 비롯한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조직통합이 한국씨티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하행장이 “인력구조조정은 없다”고 강조했음에도 감원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 특히 씨티와 한미 모두 전통적으로 강성노조를 보유하고 있어 두 조직의 인사시스템 등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소지가 적지 않다.이미 내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두 조직간의 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임원 가운데 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영어구사 능력에서 앞선 씨티 출신들이 조직을 장악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한미 노조측은 이 같은 우려를 제기하며 적응시간을 요구하기도 했다.한편 외국기업의 인수로 한미의 상장폐지가 이뤄지면서 비상장사로 남게 된 한국씨티의 경영투명성을 둘러싼 외부의 의구심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실제 씨티그룹은 최근 일본과 유럽에서 불법금융거래를 묵인하거나 이상 채권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금융시장의 까다로운 규제 안에서 씨티그룹이 어떻게 적응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이같이 산적한 문제를 하행장의 역량으로 얼마나 풀어내느냐가 향후 3년 안에 한국씨티의 좌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49세의 나이로 한미은행장에 취임하면서 국내 최연소 은행장의 기록을 세웠던 하행장은 강력한 추진력과 뚝심을 지닌 원칙주의자다. 기준을 지키는 데 엄격한 하행장은 지난 여름 한미 노조의 파업에 강경대처해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다시 확인했다. 그는 또 한미은행장 시절 연공서열 중심의 국내 금융계의 인사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능력과 성과위주의 인사제도를 정착시켜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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