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시름… 금융대란설 ‘뒤숭숭’

유흥업소 종업원 신용카드 70만장, 연말이 분수령

지방은행 소속의 중소기업 여신담당자인 K씨는 요즘 숙박 및 유흥업소 대출을 체크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난 9월23일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들 업종에서 부실징후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경우 숙박, 음식, 건설업 등 내수와 관련된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높아 성매매특별법의 영향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시행 한 달을 넘은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금융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카드, 상호저축은행 등 유흥업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제2금융권은 물론이고 관련업종에 대출액이 많은 시중은행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흥업 및 숙박업 관련 종사자를 중심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면서 서민금융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설이 금융시장에 유포되고 있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성매매특별법의 영향은 우선 제2금융권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A카드사 강남지점 관계자는 “룸살롱, 단란주점, 여관 등 유흥업 관련 가맹점 사장들을 중심으로 이미 수개월 전부터 연체율이 점증해 왔다”며 “최근 한 가맹점 사장을 만났는데 더 이상은 못버티겠다며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룸살롱 등 유흥업소 종업원들에게 발급된 카드가 전국적으로 70만장 가량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은 그동안 워낙 씀씀이가 컸기 때문에 한 번 연체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저축은행도 상황이 비슷하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통상 100일짜리 일수대출을 해 왔는데 그간 전혀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요즘 들어 며칠씩 연체를 하기도 한다”며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장기화될 경우 대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산규모 상위 10위권 저축은행(한마음저축은행 제외)이 숙박업소에 대출해준 금액만도 지난 2002년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 총 890억원에 달한다.대부업체들도 성매매단속법으로 고민이 크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강남권 대부업체의 경우 보유 연립주택 등 숙소를 유흥업 종사자에게 빌려주는 속칭 ‘일수방’을 운영하기도 한다”며 “그간 내수경기 침체로 운영이 어려웠는데 성매매특별법으로 영업이 더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전했다.현장을 중심으로 감지되고 있는 이 같은 징후들은 통계에도 일부 반영되고 있다. 비씨카드의 경우 1개월 이상 연체율이 지난 8월 5.14%에서 9월에는 5.25%로 뛰었다. 대환대출을 감안해 지난 6월부터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하는 신규 연체율도 같은 기간에 7.99%에서 8.35%로 상승했다.카드업계 관계자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계한 연체율이기 때문에 9월 연체율 증가가 단지 성매매특별법만의 영향으로 상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룸살롱 업주 등을 중심으로 연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일선 점장들의 보고가 잇따르고 있어 특별법의 영향이 통계에 일부 반영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연초부터 내수관련 업종에 대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온 은행들도 성매매특별법이 가져올 후폭풍에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숙박 및 요식업종의 연체율이 계속 높아져온 상황에서 이번 특별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숙박ㆍ요식업종의 은행대출 연체율은 3.3%로 전체평균 대비 1.3%포인트가 높았다. 이에 은행들은 청량리 등 집창촌 근처 점포의 여·수신을 집계해 분석하는 등 특별법 시행 이후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특히 서울 및 수도권보다 경기침체가 심한 지방은행들은 긴장의 도가 더 심각하다. 전북은행 관계자는 “요식업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에 머물렀던 연체율이 지난 9월 말 현재 4%대까지 치솟았다”며 “내수관련 업종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연말에도 특수를 누리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제조업이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지역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중소기업 관련 대출의 연체율이 평균 1%대에 머물고 있는 대구은행의 경우 숙박업은 연체율이 무려 3.06%에 달하고 있다.그렇다면 성매매특별법이 금융시장에까지 이처럼 악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성(性)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직간접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유재성 금융팀장은 “성매매시장은 GDP에서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유흥 관련업종의 연체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금융회사 연체율이 높아져 실적이 나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 때문에 재정경제부 등 정부당국자들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고민을 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2년 한해 동안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규모가 24조원대에 이른다. 정부 관계자는 “성매매 직간접 관련자들의 수입이 연간 25% 감소한다고 추정하면 GDP의 1%가 줄어든다”고 파악했다. 정부는 또 성매매 직간접 관련자들이 100만명(전체 생산활동인구의 4%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어 소득이 4분의 1 줄어들면 성장률 역시 1% 둔화된다고 보고 있다.이에 따라 금융계는 아직까지 ‘징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의 영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연말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30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하게 될 경우 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자로 등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신규대출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금의 회수조치 등 신용경색을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따라 유흥업 관련 업종들에 대한 연체가 지난 9월부터 시작됐다고 가정하면 12월부터는 신용불량자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돋보기 빡빡해진 서민 금융창구저축은행도 몸사려…대출승인율 5%상호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서민 소비자금융회사들의 신규대출 관리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최후에 찾는 대부업계의 신규대출 승인마저 “은행권 뺨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지나친 리스크 관리가 신용경색을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APLO파이낸셜그룹을 예로 들면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정보업체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의 경우 소액신용 대출을 일절 내주지 않는 것을 물론이고 의료보험이 발급되는 직장에 6개월 이상 근속한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주고 있다. 심지어 단순히 소득이 있다는 것만 따져 대출을 해주는 게 아니라 ‘부양가족수를 고려했을 때 이 사람이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인가’를 검토해 대출승인을 해주고 있다. 때문에 대출승인 건수도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APLO그룹 이재선 팀장은 “구조조정과정을 거쳐 영업을 재개한 지난 5월 이후 한동안 대출승인율이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했다”고 전했다.상호저축은행도 별반 다르지 않는 분위기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상위권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확산됨에 따라 갈수록 돈 빌리기가 쉽지 않은 추세다. 자산 기준으로 업계 1위인 한국저축은행 고원용 기획실장은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대출승인 건수가 10건 중 1건에 불과하다”며 “상담창구에서 1차로 걸러내는 물량들까지 합하면 대출승인율이 전체의 5%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고실장은 “한국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초부터 소액신용대출을 중단한 이후 아직 영업을 재개하지 않고 있으며 대형 저축은행 중 상당수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이와 관련, 저축은행 및 대부업계 관계자들은 “경영여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대출금리가 연 200~300%에 달하는 불법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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