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다운’, 특별법에 ‘초죽음’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서울 강남의 러브호텔도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룸살롱과 연계해 영업했던 일부 모텔은 아예 영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테헤란로의 한 러브호텔 주인)“대실료 1만9,000원, 숙박료 2만5,000원. 10년 전 가격으로 영업해도 찾는 손님이 이전의 절반도 안됩니다.” (A은행 봉천동 지점장)“양평 러브호텔의 전성시대도 끝난 것 같습니다. 최근 매출이 외환위기 때보다 못한 곳이 많으며 심지어 외환위기 때의 절반밖에 안되는 곳도 수두룩합니다. 사랑도 돈과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B은행 양평지점장)성매매특별법 시행 한 달여를 맞아 은행 지점장들과 모텔 주인들이 전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음지산업인 러브호텔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데 이어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끝없는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목좋은 곳에 건물만 잘 지으면 1~2년 안에 투자금액을 뽑을 수 있다던 것도 이제는 옛말. 대출이자도 못내는 곳이 수두룩하다.강남 러브호텔도 겨우 유지하는 수준경기침체에도 꿋꿋하게 버텼던 강남의 러브호텔들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매출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룸살롱과 연계해 장사를 했던 일부 러브호텔은 아예 문을 닫았다. 어차피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경찰의 집중단속이라도 피하자는 것이다.이 때문에 러브호텔 등 숙박업에 9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2조원씩 빌려준 은행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숙박업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으며 몇몇 시중은행들은 각 20~30명의 전담팀을 만들어 거래 중인 전국 1,000여개 숙박업체에 대한 실태점검에 들어갔다. 러브호텔에 들어오는 자동차 수나 말리는 수건 등을 체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수도 사용량을 체크하고 업주들과 일대일 면담도 꼭 한다.시중은행 소호대출 담당자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유흥업소 밀집지역에 위치한 모텔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지방 모텔의 연체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강남지역 모텔의 경우 어느 정도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연체하는 곳이 거의 없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테헤란로와 잠실 등에 위치한 러브호텔 중에는 룸살롱과 연계해 장사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러브호텔의 경우 80~90%가 룸살롱 손님이었는데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는 엄모씨는 “특별법 시행 이후 룸살롱 매출이 60% 정도 떨어졌다”며 “2차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러브호텔은 영업이 거의 중단됐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역삼동 지점장은 “일부 러브호텔은 경찰의 집중단속 기간을 피하기 위해 아예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 업주는 집중 단속기간이 지나면 영업이 괜찮아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맞은편 모텔 밀집촌. 2년 전만 해도 매일 밤 업소 불을 끄던(객실이 다 차면 업주들은 외벽의 네온사인을 꺼 객실이 없음을 알린다) 이곳도 경기침체와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이중악재를 겪고 있다. 업주들은 정부의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완전히 없앨 수 없으며 집중단속기간만 넘기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버티고 있다.선릉역 뒤쪽 모델 밀집촌의 R모텔. 이 모텔은 객실수 30개에 개업한 지 2년밖에 안돼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 업주 동생으로 모텔을 관리하고 있는 김모씨는 “올 상반기만 해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보였는데 하반기 들어, 특히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모텔의 월평균 매출은 평소 7,000만원 정도. 하지만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한 달 동안의 매출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김씨는 “평소 룸살롱을 통해 오던 손님들이 25% 정도였는데 이 매출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상당수가 불륜관계로 이들은 단속이 두려워 오지 않는다”며 “이로 인한 매출감소도 30%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 성매매는 아니지만 재수 없이 단속에 걸리면 불륜관계가 들통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텔 출입을 삼가고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실제 단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단속이요? 경찰들도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며 김씨는 모 경찰서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청첩장을 보여줬다. 경찰과 다 연결이 돼 있어서 단속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실제 주인이 운영하는 업소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 주인은 따로 있고 임대해서 영업을 하고 있는 모텔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100만원을 내고 있는 역삼동 S모텔의 업주는 “아직은 월세를 낼 수 있는데 현 상태가 지속다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모텔의 경우 월평균 매출이 3,000만원 수준. 하지만 월세 내고 보증금, 대출 이자 내고 직원월급 등 관리비용을 빼고 나면 사실상 업주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서울 다른 지역의 러브호텔도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있는 모텔 밀집촌의 경우 최근 대실료와 숙박료를 할인, 10년 전 가격으로 영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모텔은 숙박료와 대실료를 손님이 주는 대로 받는 곳도 있다. A은행 봉천동 지점장은 “업주들이 경기침체와 성매매특별법 등의 영향으로 장사가 안되자 대실료와 숙박료를 할인해 주고 있다”며 “하지만 가격을 할인해도 찾는 손님이 이전의 절반도 안된다”고 말했다.시가 70%에도 팔리지 않는 러브호텔한때 객실 회전율이 하루 평균 2~3회나 되는 등 호황을 누렸던 양평지역의 러브호텔은 내수침체와 펜션의 등장으로 지난해부터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매출이 외환위기 때보다 못한 곳이 많고 심한 곳은 외환위기 때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기침체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든데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러브호텔 대신 고급형 펜션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러브호텔의 영업이 이처럼 악화됨에 따라 급매물도 급증하고 있다. 은행으로부터 52억원을 대출받은 잠실의 한 러브호텔은 55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대출만 승계할 수 있다면 3억원에 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가의 70~80%만 받고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법원경매의 경락률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숙박시설의 올 1~8월 전국 평균 경락률은 56%로 아파트 경락률의 79%에 비해 크게 낮은 실정이다. 결국 2002년을 전후해 은행대출을 이용해 러브호텔을 산 사람들은 장사가 안되는데다 부동산가격마저 하락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지난해부터 경기가 침체되면서 결과적으로 2002년에 대출을 받아 러브호텔을 산 사람들은 상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러브호텔이 초과공급 상태이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장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금융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러브호텔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러브호텔이 호황을 누렸으나 공급과잉으로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한 과정을 밝고 있다는 것이다. 소호대출을 담당하는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러브호텔 중 과반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러브호텔의 과다공급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그러나 문제는 러브호텔의 업종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업종을 전환하려면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하지만 러브호텔 주인들이 대부분 대출을 많이 받아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투자자가 나와야 하지만 서울의 일부 목좋은 곳을 제외하곤 러브호텔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한 은행 관계자는 “서울의 목좋은 곳에 위치한 러브호텔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기수요가 있지만 지방의 경우 싼값에 내놓아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현금장사로 인식됐던 러브호텔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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