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아름답게’… 뉴마켓 선도

여성 사회활동 증가 영향…시장 초기지만 수요 탄탄

임신 14주차인 직장인 강모씨는(28) 최근 임부복을 사기 위해 동대문시장에 나갔다가 실망만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천편일률적 레이스, 리본장식 디자인의 옷만 눈에 띌 뿐 정작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는 해외구매 대행사이트에서 몇몇 외국브랜드 임부복을 주문해 놓은 상태다.하지만 얼마 전 친구로부터 “국내에도 직장에 다니는 예비엄마를 겨냥한 패션임부복 브랜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씨는 조만간 백화점에 다시 들를 생각이다.최근 강씨처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예비엄마가 늘면서 임신 중에도 최고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임신여성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로 임신상태에서 출근해야 하는 직장여성이 많아져 임산부 산업의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패션임부복시장이 싹트는가 하면 임신한 상태를 사진으로 간직하려는 여성이 늘면서 임신사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진스튜디오가 늘고 있다. 임신 중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는 여성이 늘자 문화센터, 태교교실을 중심으로 요가 등 임신부 체조강좌도 덩달아 인기다. 여기에 마치 에인절비즈니스(일반적으로 0∼14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말하는 것으로 불황에도 끄떡없는 대표적인 비즈니스 아이템이다)가 앞당겨진 듯 출산 전부터 내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는 임신부를 겨냥한 시장도 함께 힘을 얻고 있다.임신부 비즈니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역시 패션임부복 시장의 확대다. 국내 임부복 시장은 브랜드 제품만 약 200억원으로 추정되며 크게는 800억원까지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최근 임부복은 펑퍼짐한 원피스로 대표되던 획일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패션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갖춘 브랜드가 등장해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패션임부복의 대표적 브랜드인 에프이스토리(Fe story)는 2000년에 런칭했다. “임신했을 때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는 오진아 에프이스토리 사장(34)은 “바로 내 고민에서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사업취지를 밝힌 만큼 꾸준히 트렌디한 아이템을 늘려가고 있다. 오사장은 “최근 임부복 매장을 찾는 주요 고객은 교복자율화 세대”라면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다른 데는 날씬하게 보이고 배만 도드라져 보이는 디자인”이라고 최신 트렌드를 설명했다.에프이스토리는 런칭한 지 4년 만에 국내 대표 임부복 브랜드 ‘쁘래나탈’과 함께 2대 브랜드 제품으로 꼽힐 정도로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다.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병원에서 환자에게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숍인숍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한몫 하는 것이 산부인과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에서는 지난해 5월 1층에 임부복ㆍ유아복 편집매장 ‘차더샵’을 열고 유럽 직수입 브랜드 임부복을 선보이고 있다.인터넷쇼핑몰에서도 패션임부복은 떠오르는 신규 아이템이다. ‘카렌둘라’(www.carendula.com)는 맞춤 임부복을 판매한다. 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입점해 있는 소호몰 중에서도 임부복만 전문으로 파는 쇼핑몰이 느는 추세다. 여성포털 마이클럽 등 예비엄마들이 모여드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어느 쇼핑몰이 저렴하고 트렌디한 제품을 판매하는지를 묻고 대답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온다.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는 패션을 가미한 임부복 브랜드가 다양하다는 데 착안해 해외구매 대행사이트를 이용하는 예비엄마들도 있다. 해외구매대행 쇼핑몰 ‘WIZWID’(위즈위드)의 경우 지난해와 비교해 임부복 매출이 30% 가량 늘었다. 서민정 여성대상 제품 전문 머천다이저(MD)는 “미국은 기존 브랜드에서 임부복 라인(Maternity)을 별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며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임신부를 위한 청바지가 특히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는 것은 연예인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탤런트 김지호, 방송인 최은경씨와 축구스타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씨의 만삭 사진이 공개되면서 이것이 임신여성 사이에 크게 화제가 됐다. 사라 제시카 파커, 기네스 팰트로 등 해외스타 역시 임신 중 찍은 감각적인 옷차림의 사진이 잡지 등을 통해 소개됐다.따라서 연예인이 아닌 경우에도 예비엄마 사이에서 임신 프로필 사진이 단연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임신전문 촬영스튜디오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많은 아기사진 전문점에서 임신사진 촬영을 신규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특히 사진촬영권은 산후조리원이나 임부복 브랜드의 공동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임신 8개월째인 김모씨(30)는 “산후조리원에서 받은 촬영권으로 다음달에 남편과 스튜디오를 찾을 예정”이라며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 사진을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남양유업이나 일동후디스처럼 임신, 출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분유회사 역시 이 같은 공동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이 두 회사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 사진촬영 쿠폰을 제공한다.임부복 브랜드 에프이스토리도 포토밤비니라는 스튜디오와 공동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서울 양재동의 메이스튜디오처럼 아예 임신, 출산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업체들간 공동마케팅 유행임신 중 피부가 망가지는 것에 대비한 임신 전용 화장품도 인기다. 비오템나 클라란스 같은 수입화장품 브랜드에서는 튼 살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임신부 전용 크림을 판매하고 있다. 클라란스에서는 임신부 마사지교실도 운영하고 있다.처녀 적 체형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임신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요가강좌 등도 임신부 틈새시장 중 하나다. 백화점 문화센터와 태교교실 등에 개설돼 있다.아직까지 이처럼 임신부를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은 시장형성 초기다. 그렇다 보니 이들 업체 사이에서는 공동마케팅이 대세다. 임부복 브랜드와 피부관리업체, 임부복 브랜드와 사진스튜디오 등 윈윈 전략으로 공동마케팅을 선택해 시장 키우기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그렇다면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에 임신 여성이 신규시장의 타깃으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출산율이 떨어져 임신부가 수치상으로는 줄었을지 몰라도 임신시기에 대한 집착은 강해졌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하나만 낳는 여성이 많다 보니 일생에 한번 보내는 시기를 즐겁게 보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하지만 역시 가장 큰 배경이 된 것은 임신한 연예인들의 활동상이다.이처럼 연예인이 산업 트렌드를 형성하기는 해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미국 뉴욕의 경우 주간지 커버스토리로 임신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을 정도다.뉴욕을 대표하는 주간지 중 하나인 9월27일자는 ‘완벽한 임신’(The Perfect Pregnancy)이라는 제목으로 임신 기간에도 날씬하고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유명인사가 많은 뉴욕의 많은 여성이 임신 중에도 몸매에 관심을 가지며 이는 연예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이 기사는 또 인기 있는 임부복 브랜드에 대한 나열과 함께 임신 여성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센터도 소개하고 있다.물론 이처럼 임신부가 지나치게 외모에 관심을 갖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두 달 전 아이를 출산했다는 노모씨(29)는 “임신 중에 외모에 관심을 가지면 아이에게 공급해야 할 영양소가 부족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최근 트렌드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다.‘완벽한 임신’에 대한 논란 역시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도 태어날 아이에 대한 부정적 영향의 우려를 들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서도 패션임부복 등 임신부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게 이 매체의 보도다.또 실제로 임신부시장의 신규 아이템이 여성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임신 초기부터 태아에게 공을 쏟는 일종의 ‘얼리 에인절비즈니스’도 각광을 받고 있다. 태아의 얼굴 윤곽까지 확인할 수 있는 3차원 초음파사진이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초음파사진을 모아 앨범으로 만드는 일도 있다. 태교영어교실도 등장했다. 태아보험, 태교댄스 등도 빼놓을 수 없다.출산율 저하로 임신, 출산 관련 시장이 규모면에서 위협받고 있고 태아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부 전문가들 시각도 있지만 ‘완벽한 임신’을 꿈꾸는 여성소비자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INTERVIEW 김현경 메이스튜디오 사장임신 30주 만삭 여성 주요 ‘타깃’지난 7월 중순 첫아이를 출산하고 방송에 복귀한 방송인 최은경씨는 임신 중에 배를 드러내고 찍은 파격적인 사진을 공개하고 이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방송 홈페이지에 올렸다.이 사진을 찍은 김현경 메이스튜디오 사장(31)은 1인 기업 운영자로서 ‘메이킴’이라는 영문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메이스튜디오 김사장은 임신, 출산 사진촬영을 전문영역으로 내세웠다. 임신 30주 정도에 들어선 만삭의 여성이 주요 타깃으로 촬영 의뢰가 오면 집에 찾아가 남편과 함께 있는 생생한 사진을 만들어낸다. 최은경씨 이외에도 탤런트 송채환씨, 개그우먼 김지선씨 등이 그녀의 손을 거쳐갔다.결혼과 동시에 도미, 유학생활을 한 김사장은 지난해 귀국하면서 메이스튜디오를 차렸다.“결혼 전에는 방송작가를 했습니다. 미국에 가서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진공부를 시작했습니다.”학생시절 임신한 모습을 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상대로 아르바이트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는 김사장은 졸업 후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로스앤젤레스에서 일했는데 연예인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임신, 출산 사진만 전문으로 찍는 스튜디오가 있더군요.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귀국과 동시에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등 혼자 준비해 이 일을 시작했다는 김사장은 그래도 이 시장에 대한 의구심이 약간은 있었다고 말했다.“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지만 ‘과연 잘될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특별한 광고도 하지 않고 그저 제 사진에 로고 하나 넣었을 뿐인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문의전화가 많더군요.”그녀는 인터뷰 도중에도 걸려온 고객전화에 응답해야 했다.김사장은 “사진작가로서 여성은 핸디캡이지만 임신, 출산 사진 전문작가로서는 여성이고 주부인 게 장점이 된다”고 덧붙였다.“제가 고객과 나이도 비슷하고 5살 아이의 엄마라서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집에 찾아가서 사진촬영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느낌에다 친밀감도 느끼는 것 같고요.”서울 강남 일부 계층에서 유행하는 현상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강북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걸려오는 문의전화도 종종 있다”며 “관심 있는 여성이 예상보다 많다”고 대답했다.이제 사업한 지 막 1년이 지났다는 김사장에게 남들이 안하는 일을 하니 돈도 많이 벌 것 같다고 했다.“입사 1년 된 직장인 수준으로 법니다. 하지만 이 일이 좋은 건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임신한 여성 사진도 좋지만 역시 출산 장면을 찍은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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