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물리친 개성상인 혼… 44년 흑자경영

신용 앞세운 위기극복 리더십 돋보여 …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도 적극적

‘우리에게 불황이란 없다.’신도리코 앞에서는 불황도 울고 간다. 아니 비켜간다는 표현이 더 맞다. 어지간한 불경기라도 신도리코의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내수침체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하다지만 신도리코의 매출전선은 까딱없다. 이는 회사장부에 그대로 나와 있다. 신도리코의 매출 추이는 매년 상승세를 이어왔다. 99년 2,602억원이던 게 지난해에는 6,15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 상반기 추세도 비슷하다. 6월까지 벌써 3,47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사상 초유의 불황 때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렸다는 평가다. 여타 기업이 불황에 고전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탁월한 경영성과는 탄탄한 내실로도 확인된다. 신도리코의 매출은 알토란같은 당기순이익으로 직결된다. 99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번도 이익규모가 줄어든 적이 없다. 박강호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폭발적 외형증가와 함께 절대이익도 크게 늘었다”며 “지금껏 이 회사의 순이익 증가율은 계속 플러스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마진구조가 튼실한데다 수출까지 늘어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박애널리스트의 경우 목표주가를 7만7,000원까지 본다. 10월 초 현재 6만원임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상승여력이 충분하다는 논리다.신도리코 경쟁력의 핵심은 ‘시장점유율 1위’에 있다. 이 회사의 주력은 국내 복사기시장이다. 신도리코는 아날로그ㆍ디지털 복사기부문의 시장점유율 46%를 움켜쥔 확고부동한 ‘넘버원’ 메이커다. 디지털만 떼놓고 보면 무려 52%를 차지한다. 한국후지제록스, 캐논 등 2~3위와의 격차도 크다. 시장선점자의 전통적 파워로 볼 때 당분간 순위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뒤늦게 뛰어든 레이저프린트부문의 성적도 합격점이다.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딛고 현재 시장점유율 3위까지 올라섰다. 한국HP, 삼성전자 등 쟁쟁한 기업과의 경쟁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무차입경영은 신도리코의 자랑거리다. 바꿔 말해 회사빚이 없다는 얘기다. 되레 은행예금만으로 연간 100억원 넘게 이자를 챙길 정도다. 더 놀라운 건 부채비율이다.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조차 부채비율 200~300%가 태반인 상황에서 신도리코는 고작 18.96%에 불과하다. 물론 찾아보면 부채비율 50% 이하의 우량기업은 적잖다. 다만 신도리코의 부채비율은 항목만 부채일 뿐 실제로는 빚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행차입금 제로에 외상값(매입채무), 예수금, 미지급 배당금 등이 부채의 전부다. 시장이 신도리코의 재무건전성에 혀를 내두르는 건 이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도 그래서 증가추세다. 손낙훈 부사장은 “신도리코에는 적자, 차입, 어음의 3가지가 없다”며 “이런 전통은 신도리코의 탄탄한 기둥이자 자부심”이라고 전했다.신도리코는 지난 1962년 창업한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올해로 44년째 연속흑자 달성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흑자경영은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결과다. 창업 이후 사무용 광학기기 분야라는 한우물을 팠기에 가능했다. 국내 최고의 사무기기 전문메이커라는 타이틀은 그저 얻은 게 아니다. LG투자증권 박애널리스트는 “사무환경 변화와 기술추세의 예측을 바탕으로 복사기, 팩스, 프린터 등 다양한 사무기기와 소모품을 적기에 개발해 출시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아날로그에서 레이저로, 또 디지털로 시대변화에 맞게 핵심역량을 집중했다는 평가다. 초기에 기술을 전수해 준 일본 리코사에 복사기를 역수출하는 게 우연은 아닌 셈이다.정석경영은 신도리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에는 ‘3ㆍ3ㆍ3ㆍ1의 원칙’이란 게 있다. 종업원(3)주주(3)ㆍR&D(3)ㆍ사회환원(1) 등에 각각 숫자만큼 순이익을 할당하겠다는 경영철학이다. 재투자, 이익배분, 사회환원을 둘러싼 명확한 원칙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원칙에 따라 투자자는 적어도 매년 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받게 된다. 순이익 규모를 볼 때 신도리코만큼 높은 배당성향을 가진 회사도 드물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배당률을 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거래업체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창업주인 우상기 회장은 “거래업체에 100% 현금결제를 하라”고 유언으로 남겼고, 이는 굳건한 경영철학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신규투자 때 자체 보유자금을 이용한다는 원칙도 정석경영의 한 축이다.직원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다른 회사의 반면교사로 손색이 없다. 신도리코 직원은 생산ㆍ사무직 모두 동일한 작업복을 착용한다.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쾌적한 근무환경도 장점이다. 일례로 충남 아산공장은 5만평 부지 중 70%가 사원복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배려는 IMF 외환위기 때조차 무분규 신화를 낳는 데 일조했다. 신도리코 직원의 주인의식과 애사심은 경영진에 대한 전폭적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그도 그럴게 회사의 경영진은 재무ㆍ사업실적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매달 개최하는 미팅에서 전 종업원에게 제공한다. 노사의 믿음이 그만큼 깊다는 메시지다.탄탄한 기술력으로 만들면 ‘국내 최초’신도리코의 기업문화는 한 마디로 ‘신뢰’로 요약된다. 사실 신도리코는 한국의 대표적 송상(松商ㆍ개성상인)기업 중 하나다. 창업주 우회장은 유명한 개성상단의 후손으로 역시 밑바닥에서 시작해 경리, 상술을 익혔다.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보수적인 짠돌이 경영은 이때부터 비롯됐다. 남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해도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업가정신이 훼손될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신도리코의 한우물 파기와 신용거래는 대학가의 경영성공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김성웅 홍보실장은 “무차입경영ㆍ업종집중ㆍ신용제일 등은 신도리코가 보유한 불황타개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신도리코의 경쟁력은 든든한 기술력을 그 원천으로 둔다. 결국 믿을 구석이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견기업으로는 드물게 약 200명의 석박사급 연구진을 갖췄다. 82년 설립한 기술연구소가 기술개발의 산실역할을 맡았다. 현재 신도리코의 기술력은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 수준이다. 처음 기술을 전수해준 원조기업보다 기술력이 더 높다. 제록스ㆍ캐논처럼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 토종업체에 밀린 시장도 한국이 유일하다. 신도리코 제품이 대부분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 건 이 때문이다. 신도리코가 보유한 특허취득 건수만 1,500여개를 웃돈다. 최근 효자상품으로 떠오른 디지털복사기 ‘디지웍스’의 경우 한계를 넘어선 놀라운 기술력의 집약체라는 평가가 많다.수익창출이 기업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ㆍ시장과의 공존도 사실 중요해서다. 이런 점에서 신도리코는 후한 점수를 받는다.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 열심인 까닭에서다. 가령 신도리코의 환경경영을 살펴보자. ‘Greenwave’로 명명된 C&F(Clean & Friendly) 문화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우수사례로 꼽힌다. 이에 따라 신도리코는 소비자에게 상품권을 주면서까지 폐카트리지를 회수한다.전망도 밝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는 “복사기는 제품판매보다 부품교체 등 애프터서비스로 벌어들이는 게 더 큰 제품”이라며 “일정한 시장점유율이 확보되면 이익규모는 자연스레 증가하는 일석이조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과 감성의 융합을 통한 쾌적한 사무공간 조성 움직임도 신도리코의 미래를 밝게 한다. 고희영 상무(영업본부장)는 “디지털복사기시장은 매년 2배 정도의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며 “신도리코는 사무실 환경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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