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혁신·열린 사고 3박자 ‘OK’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완벽한 시장 지배력 구축 ··· 안정된 재무구조 자랑

‘불황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IMF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다’는 요즘, 이렇게 반문하는 기업들이 있다. 매출 그래프는 하늘로 치솟고 순수하게 버는 돈도 해마다 쌓인다.수출전선에서 잇달아 승전보를 올리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이미 불황에 강한 기업으로 소문났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내수부진으로 헐거워진 금고를 채우고도 넘친다.이들 외에도 국내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황을 이겨낸 기업들이 있다. 내수중심 기업으로 농심, 남양유업, 신도리코, 신세계, 퍼시스, 태평양, 하이트맥주 등 7개 기업이 대표적이다.7개사의 경영성적표는 당당하다. 9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5년 6개월간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약 10%의 성장을 해마다 거듭했다. 순이익도 알차게 늘고 있다. 반면 부채비율은 거의 100% 안쪽으로 뚝 떨어졌다.ROE(자기자본수익률)도 뛰어나다. ROE는 경영자가 기업에 투자된 자본을 사용해 이익을 어느 정도 올리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 ROE가 높은 기업은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이익을 많이 냈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태평양이 27.16%, 신세계 21.48%, 농심 19.28%, 퍼시스 17.7% 등으로 가 선정하는 ‘2004 국내 100대 기업’과 비교해도 20위권 안팎에 속한다.대다수 기업들이 경기불황을 원망하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이들 기업이 고속으로 성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핵심사업에 승부수‘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줄기차게 외친 말이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겨뤄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력 제품이 1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등 기업은 강력한 시장지배력과 브랜드파워로 어지간한 위협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대우증권과 LG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7개사는 모두 주력제품이 국내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신세계는 핵심사업인 할인점이 전체시장의 31.5%를 석권했다. 2위 업체와 두 배 이상 차이가 날 만큼 멀찌감치 달아났다. 신세계의 순이익 증가율은 눈부실 정도다. 2002년 30.27%, 2003년 22.45%, 올 상반기 21.86% 등 20%대 이상의 성장률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농심의 라면제품도 시장점유율이 73.1%(올 6월 말 기준)로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2위 업체가 10%대에 머무르고 있어 비교하는 것조차 쑥스러울 지경이다. 농심은 99년 500억원대에 머물던 순이익이 4년 만인 2003년 1,000억원으로 두배이상 늘어났다.이 같은 사정은 신도리코(시장점유율 48.3%), 하이트맥주(58.2%) 퍼시스(50%ㆍ사무용 가구), 태평양(46%ㆍ1분기) 등도 마찬가지이다.특히 하이트맥주는 99년 184억원에 불과하던 순이익이 2002년 1,000억원으로 올라서더니 지난해는 1,100억원대를 훌쩍 넘어서며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쳤다.이들이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은 핵심사업에 회사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롯데에 밀려 만년 2위 신세였던 신세계는 90년대 초반 할인점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 대성공을 거뒀다.특히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대거 할인점 부지 매입에 쏟아부은 것은 경쟁업체를 따돌린 원동력이 됐다.신도리코는 문어발식 확장에 나서지 않고 복사기에서 출발해 레이저프린터와 디지털복합기로 이어지는 광학기기에 회사 역량을 모은 것이 빛을 봤다. 벤처 열풍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99~2000년 2,000억원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벤처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디지털 광학기기 연구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확실한 선두로 올라섰다.태평양도 90년대 중반 한때 21개사에 달했던 계열사를 9개로 축소하는 대개혁을 진행하며 고급 화장품 개발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이 성공을 거뒀다.빠른 혁신끊임없는 혁신은 기업에는 생필품이나 다름없다. 개혁할 것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개혁하는 기업이 강한 기업이다.95년 만년 2위 하이트맥주가 OB맥주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선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요구를 한발 앞서 읽어내고 발빠르게 제품개발에 반영한 것은 철옹성 OB맥주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천연암반수맥주, 100% 보리맥주, 온도계마크 등은 모두 하이트가 최초로 내놓은 비장의 무기였다. 누가 먼저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실행에 옮기느냐가 기업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목격 한 셈이다.농심은 독점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짝 앞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신제품을 내놓았다. 생산성 혁신도 어느 기업보다 적극적이었다. 이미 96년 첨단물류시스템(자동차량추적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라인도 최신으로 깔았다. 원료투입에서 제품포장까지 전 과정을 컴퓨터로 제어한다.신도리코의 기술력은 세계 수준이다. 제품 대다수가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뛰어나다. 200여명의 석박사급 연구진을 갖춘데다 보유 특허건수만 1,500건에 달한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무환경 변화에 따라 복사기, 팩스, 프린터 등 다양한 사무기기를 적기에 개발해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태평양은 92년부터 ‘마스터21’이라는 생산혁신활동을 펼쳤다. 95년부터 원가절감운동인 TCR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전체인력을 91년 7,000명에서 2002년 3,300명으로 줄였다.개발인력도 500여명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마다 매출액 대비 5% 정도를 R&D에 투자할 정도로 기술혁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열린 마인드최근 재계의 화두는 ‘훌륭한 일터’, ‘나눔경영’ 등 기업문화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는 기업이 성장하고 영속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연중 캠페인으로 ‘훌륭한 일터 가꾸기’ 운동을 하는 것이나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이 나눔과 상생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재계에서 ‘윤리경영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신세계의 열린 마인드는 오늘의 신세계를 있게 한 주춧돌이다. 구학서 신세계 사장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용어가 ‘윤리’다. 유통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윤리’라는 소신 때문이다. 실제로 윤리경영을 앞서 실천하는 신세계의 모습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갔다.신도리코는 신뢰경영으로 조직력을 극대화한 경우다. 거래업체와는 100% 현금결제를 한다. 투자자는 매년 순이익의 30% 이상을 배당받는다. 충남 아산공장의 5만평 부지 중 70%가 사원복지 공간일 정도로 직원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이와 함께 전 종업원에게 경영현황을 설명하는 미팅을 매달 개최하는 것도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퍼시스의 신뢰경영은 주주정책에 있다. 2000년부터 자사주 매입을 계속해 1년간 전체 주식의 5분의 1을 자사주로 매입한 것은 당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1년 말 주가가 갑절 가량 올랐는데도 자사주를 시장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대신 대부분을 소각했다. 이후 퍼시스는 ‘한국 주주 정책의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주주들의 신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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