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공장서 무역센터까지… 세월 따라 ‘새얼굴’

서울은 한국사회의 중심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서울을 빼놓고는 얘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서울집중을 우려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경제집중도는 상상을 초월한다.그러나 이런 서울도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허허벌판이었다. 1950년에 터진 참혹한 전쟁은 한동안 서울을 폐허의 도시로 만들었고, 5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등포의 공장지대다.비슷한 시기에 석관동 등 서울 외곽에 들어선 연탄공장은 서울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당시 19공탄 공장에서 생산된 연탄은 서울 각지로 배달됐고, 연탄가게 배달부들이 이를 짊어지고 비탈길을 오르는 장면은 지금도 간혹 TV 화면에 비친다.그러다가 64년에 조성된 구로공단은 서울의 생산기능을 한껏 높인 견인차였다.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로동으로 몰려들었고 합성수지, 전자기기, 광학기계, 가발 등의 제품이 쉴새없이 쏟아졌다.60년대 후반에는 청계천 세운상가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67년 개관한 세운상가의 전기전자제품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고, 서울의 새로운 비즈니스 명소로 떠올랐다.첨단패션의 중심지 명동은 70년대 들어 화려하게 부상했다.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는 점포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서울의 핵심상권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명동외출 붐이 일면서 전국에서 땅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떠오르기도 했다.지금의 강남은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70년부터 영동 신시가지 개발사업이 시작됐지만 몇 년 후 명문 중고교가 옮겨지고 영동시장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분위기가 달라졌다. 77년에는 테헤란로가 탄생, 강남대로의 골격이 갖춰지기도 했다.80년대 이후 서울의 각 지역은 특성에 따라 개발되기 시작했다. 용산에 전자상가가 들어서고, 여의도는 본격적인 금융타운으로 변신했다. 특히 증권거래소가 79년 여의도에 둥지를 틀면서 증권사를 중심으로 많은 금융회사들이 옮겨왔다.또 90년대 들어 강남에 무역센터가 문을 열면서 삼성동이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섰고, 대치동 일대는 교육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90년대 말에 불어닥친 벤처 열기는 테헤란로에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기도 했다.지금도 서울 곳곳에서는 지역에 맞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관련업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일정한 타운을 형성해 가고 있다. 10년 후의 서울은 또 어떻게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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