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성적표 뒤에 실패 쓴잔 수두룩

CJ홈쇼핑이 중국 상하이에 진출한 것은 지난 4월1일이었다. 상하이 최대 미디어그룹인 둥팡(東方)TV와 손잡고 합자투자업체인 東方CJ(둥판CJ)를 설립했다. 한국 CJ홈쇼핑의 TV홈쇼핑운영 노하우와 둥팡TV의 네트워크가 결합된 합작이었다.둥팡TV는 시작과 함께 상하이 유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요즘 하루 5시간 방송에 약 80만~100만위안(1위안=약 150원)의 매출액이 오른다. 초기 1,500만위안에 그쳤던 월매출액은 지금은 3,000만위안에 달하고 있다는 게 둥팡TV의 설명이다. 현지 언론은 ‘둥팡TV가 상하이 유통패턴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할 정도다.불과 5개월 만에 CJ의 중국사업이 성공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CJ의 중국진출 사례는 우리나라의 중국시장 진출에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그 한 예가 TG(삼보)컴퓨터다. 선양(沈陽)에 컴퓨터 조립공장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상하이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그러나 유통망이 문제였다. 이미 기존 컴퓨터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시장을 뚫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둥팡TV가 구세주로 나타난 것이다.TG컴퓨터는 둥팡TV에 소개되자마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저렴한 가격에 맵시 있는 모델이 상하이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학기 초가 시작되는 지금 유통창고에 컴퓨터가 남아 있지 않아 주문을 받아놓고 있는 실정이다.TG컴퓨터뿐만 아니다. LG가 최근 선보인 GSM 방식의 휴대전화, 참존화장품, 코리아나화장품, 밀폐용기 락&락 등 많은 한국상품이 CJ홈쇼핑 네트워크를 타고 팔리고 있다. 전체 판매량의 25%가 한국제품이다. CJ의 진출이 결국 한국상품이 중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은 것이다.한ㆍ중수교 12년. 한국기업에 중국은 ‘임금이 싸고, 광활한 시장을 가진 곳’이었다. 그래서 많은 제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수많은 상품이 중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많은 기업들이 성공을 했고, ‘차이나 머니’를 한국으로 송금했다. 이중에는 중국에서 생산, 해외에 수출하는 분야의 기업이 많았다. IT, 가전, 기계, 식품, 복장 등의 분야에서 일부 상품이 만리장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중국 굴삭기 시장은 한국기업이 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타이어, 모니터, 에어컨 시장을 한국기업이 이끌고 있다. 초코파이, 농심, 크린랩, 울시, 온&온 등이 중국의 ‘히트 브랜드’로 남기도 했다.이 같은 성공스토리 뒤에는 실패의 쓴잔을 맛봐야 하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준비 없는 준비가 부른 결과다.지난해 중국에 가장 많은 달러를 쏟아 부은 나라(홍콩과 조세피난구역 제외)가 한국이다. 그런데도 현지의 세제, 금융, 인허가제도, 합작파트너의 신용평가 등 사업의 기본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실패한 기업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파트너에게 속고, 지방정부의 말만 듣고 투자했다고 중앙정부 정책으로 문을 닫아야 했고, 가짜 모조상품에 당하고…. 빛에 가려진 그림자가 너무 짙다.게다가 중국 비즈니스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전력난이 심화되고 있고, 가격경쟁의 등살로 우리 기업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실시된 경기긴축으로 경영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다.그렇다고 중국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의 공장과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등에 업지 않고는 21세기 부국으로 가는 길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성공했고, 또 얼마나 많은 기업이 실패했는가. 성공과 실패를 낳았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과 KOTRA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529개업체를 대상으로 ‘재중(在中)한국기업 경영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중국진출을 모색해 보자는 차원이다.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중국 내 한국기업의 경영실태를 추적해 본다.△최대 성패 요인은 ‘기술력’ = 기업의 성패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왜 중국에 가려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중국 내수공략(조사 대상의 26.8%) 및 저임 노동력 확보(25.8%)가 그것. 대기업의 경우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진출(34.9%)이 높았고, 중소기업은 저임노동력(28.3%)이 많았다. 대기업은 중국 내수시장에, 중소기업은 생산여건에 더 비중을 둔다는 지적이다.이 같은 목적을 감안할 때 그간 경영성과가 성공적이었느냐를 묻는 질문에 조사대상(사무소 제외한 514개 업체)의 72.8%가 ‘성공적’이라고 답한 반면, 나머지 27.2%는 ‘실패 또는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31.5%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그렇다면 중국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흑자기업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대 성공요인’ 질문에서 응답자(복수응답 562업체)의 45.2%에 달하는 254개 업체가 ‘기술경쟁력’이라고 답했다. 다음 요인인 ‘적절한 투자지역’(116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실패했다면 그 역시 기술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고전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패의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술경쟁력 약화에 따른 중국업체의 추격’(20.7%)이 가장 많이 꼽힌 게 이를 보여준다. 또 다른 실패 요인으로는 파트너 선정 오류(19.3%), 법ㆍ제도 환경 미숙(17.0%) 등이 지적됐다.한국기업들이 중국 비즈니스에서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으로는 현지인의 상관습(17.7%)이 가장 많이 지적됐고, 통관 및 세무(12.1%), 법ㆍ제도 미비(11.4%), 대금회수(7.4%), 지적재산권 침해 및 가짜상품 난무(3.9%) 등의 순으로 꼽혔다.△중국의 경기긴축, 발등의 불 = 각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경기긴축 정책으로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긴축이 영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느냐’를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사무소 제외 516개 기업)의 23.6%에 달하는 122개 업체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또 269개(52.1%) 업체는 ‘부정적 영향 가시화’라고 응답, 경기긴축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경기긴축에 따른 피해로는 ‘판매대금 회수의 어려움’이 34.7%로 가장 높았고, 내수위축에 다른 매출감소(25.1%), 자금조달(11.6%), 원자재 구매(11.6%)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경기긴축이 매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대상(389개 업체)의 58.1%가 ‘올 순익의 10% 이내’, 29.0%가 ‘10~20%의 순익감소 우려’라고 답했다. 아직은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긴축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는 더 늘어날 수 있다.△중국기업의 기술추격에 쫓긴다 = 중국진출 국내기업들은 새롭게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중국기업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우선 중국 투자기업의 생산품 내수(중국시장)판매 대 수출비율 조사에서는 수출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대상 제조업체(466개) 중 60.3%에 달하는 281개 업체가 ‘전량 수출 또는 수출비율이 높다’고 답한 반면, ‘내수 또는 내수비율 높다’는 업체는 35.0%에 그쳤다.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8.2%가 주요 경쟁기업으로 중국기업을 꼽았다. 이들 업체 중 52.8%는 ‘중국과 기술격차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이는 한국기업들의 기술우위가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기술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또 내수 판매 기업의 경우 응답자의 52.7%가 ‘중국 파트너에 유통을 전적으로 맡긴다’고 대답해 독자 유통망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유통기업의 57.5%는 ‘월평균 가구 소득 2만위안(약 350만원) 이상의 중국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정하고 있다’고 밝혀 고급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토착화 수준 떨어진다 =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인사관리 측면으로 볼 때 전반적으로 토착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기업들의 관리직(공장관리 포함, 부장급 이상) 현지직원 채용 정도는 아직 낮았다. 전체 응답기업(484개)의 53.1%를 차지하는 257개 업체가 관리직의 현지인 채용비율이 20% 이하라고 답했다. ‘관리직 현지인 채용비율 20% 이하’라고 답한 기업을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이 60%에 이른 데 비해 중소기업은 이보다 다소 적은 51.5%를 보였다.중국의 현지 관리직 직원 중 가장 높은 직위를 묻는 질문에 전체 조사대상의 43.8%가 ‘과장급’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현지직원이 ‘총경리’(사장급)에 오른 기업은 8.8%에 그쳤다. 이는 중국진출 기업의 현지인력 활용도가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중국진출 기업들은 현지직원 교육에도 적극적이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투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관리직 직원의 한국방문 교육 횟수’를 묻는 질문에 ‘방문교육이 거의 없다’는 응답이 55.9%에 이르렀다. ‘1년에 1번’은 23.3%, ‘1년에 2~3회’는 15.8%의 비율을 보였다. ‘수시로 방문한다’는 대답은 5.0%에 그쳤다.△현지인 임금은 얼마 = 현지직원 급여(월급)의 경우 생산직은 900~1,200위안(1위안=약150원)이 가장 많았고, 영업직의 경우 1,500~2,000위안, 관리직은 3,000~3,500위안 범위의 분포도가 높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임금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법(法)보다는 콴시에 의존 = 중국 비즈니스에서 무시하지 못할 것이 콴시(關係)다. 조사대상의 69.1%는 ‘콴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 한국기업들이 중국관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각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콴시 쌓기’ 방법으로는 ‘식사 또는 술자리를 자주 갖는다’는 응답이 55.6%로 가장 높았고 ‘정기적으로 선물한다’(15.1%), ‘직간접적 금전 혜택’(8.5%), ‘외국 출장기회를 준다’(6.4%) 등의 순이었다.반면 중국진출 기업들은 법률에 의한 사태해결 절차를 가급적 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체 기업의 24.6%만이 ‘소송을 경험했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경험 업체 중 승소한 비율과 패소한 비율이 거의 반반인 것으로 조사됐다.각 기업은 소송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진행과정의 불투명’을 꼽아 중국 법률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파트너와 각종 계약체결시 법률전문가에게 검토를 의뢰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조사대상의 21.8%가 ‘전혀 받고 있지 않다’고 밝혔고, ‘계약체결의 25% 이하만을 의뢰한다’는 답이 38.5%에 달했다. 이는 한국기업들이 정확한 법률적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문변호사를 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없다(39.6%)’, ‘일이 생길 때 간간이 맡긴다(31.1%)’, ‘두고 있다(29.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주로 중국계 은행 이용 = 중국진출 기업들은 주거래은행으로 중국계 은행을 많이 선택하고 있으며, 서비스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어느 은행과 주로 거래하느냐’는 질문에 조사대상의 72.2%가 중국계 은행이라고 답한 데 비해 한국계 은행은 25.2%에 그쳤다. 중국계 은행을 선택한 이유는 ‘거리가 가깝고 이용하기 편리해서’라는 응답이 43.1%로 가장 높았고 ‘사업상 필요해서’(16.0%), ‘금리가 싸서’(12.2%), 중국측 파트너가 원해서(11.6%) 등으로 나타났다.중국계 은행을 이용하고 있는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8.3%가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다’고 답한 반면, ‘전체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다’는 응답은 33.0%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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