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큰 중국… 대등한 협상 어려워져

8월24일, 한ㆍ중수교 12주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 리펑(李鵬) 총리가 “물이 흐르면 곧 도랑이 될 것(水到渠成)”이라고 표현한 것을 상기하면 한ㆍ중수교 12년은 만감이 교차되는 기간이다. 리총리의 예측대로 양국간 경제교류는 다소 굴곡이 있긴 했지만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 증가세를 기록해 왔다.한국과 중국간 교역규모는 92년 64억달러에서 2003년에는 579억달러로 급증했다. 특히 2003년은 대중국 수출실적이 전년 대비 50.3% 증가, 미국을 제치고 제1위의 수출 대상국으로 부상한 원년이 됐다. 올 들어 1~7월에도 대중 수출은 280억달러로 대미 수출(240억달러)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흑자국임을 고려하면 질적 측면도 나쁘지 않다. 특히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대규모 대중 무역흑자가 큰 도움이 됐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이야말로 우리경제의 든든한 후원세력인 것이다.외환위기 극복에 중국 큰 도움직접투자에 있어서도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우리나라는 35억달러를 중국에 투자하여 일본(29억달러)을 제치고 홍콩(108억달러), 버진아일랜드(38억달러)에 이어 중국의 3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홍콩이 중국령이고 버진아일랜드가 세계적인 조세 도피처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1위에 해당한다. 경제지표뿐만 아니라 중국경제가 우리에게 무척 가깝게 다가온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한ㆍ중수교 초창기만 해도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가 힘들었고 드물게 발견하면 화제를 몰고 다니곤 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가 90년대 중반에 중국의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주위에서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주위에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유학 중인 사람을 찾을 수 있다. 10여년의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은 느낌이다.그러나 수교 12년을 맞이하며 우리나라의 대중 경제의존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요인은 물론 지리적,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중국이 여타 국가에 비해 수출이나 투자를 하기에 비교적 용이한 지역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출이나 투자가 중국에 집중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지나친 중국 편향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의 대안 없는 중국 편향은 양국간 관계에 있어서 정치나 외교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분야까지 총제적 불균형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동등한 협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점에서도 경제관계 악화를 이유로 침묵해야 하는 일이 지금까지도 비일비재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향후에도 우리의 대중 경제의존도가 커질 것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중국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80~90년대만 해도 중국은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다가도 과열되는 경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거나 후퇴하는 취약한 경제시스템을 가진 국가였지만 지금은 다르다.80년대 말의 경기침체와 천안문사태, 90년대 후반의 심각한 경기침체 등은 이를 방증한다. 모두 3~4년간의 호황 뒤 찾아온 장기불황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경제는 그 체질이 달라졌다.2003년에는 사스(SARS)라는 미증유의 위기국면에도 6년 만에 최고치인 8.5% 성장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투자 붐으로 인한 과열 국면을 80년대와 같은 과격한 조치 없이도 효과적으로 조절해내고 있다. 경제의 성장동력도 80~90년대에는 외자와 외국기업 등 대외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 내 시장이 커지고 자국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면서 자체 해결 역량이 크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중국이 내부적으로 취약한 거대 개발도상국에서 탄탄한 경제강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도약은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에 당장은 수출확대라는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지만 결국은 중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자체 역량을 확대하면서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이 집중 육성하고 있는 전자, IT, 중간재 등을 10년 후에도 우리 기업이 지금처럼 중국에 수출할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최종소비재 위주로 전환해야중국의 질적 구조변화와 한ㆍ중관계의 불균형 심화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선 중국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하고, 이를 제조업의 구조고도화 및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 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양적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수출 위주에서 현지투자 위주로, 중간재 위주에서 최종소비재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물론 투자 및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는 인위적으로 될 일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중국만한 곳이 없다고 판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국으로의 쏠림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내용만이라도 지금과 같은 일회성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전개되는 중국의 변화와 발전에 어떠한 형태로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ㆍ중관계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국가간 관계도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아쉬울 게 없는 나라에 동등한 대접을 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간 협력강화뿐만 아니라 지역경제권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당장 중국과 FTA를 체결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가 핵심역할을 하는 ‘한반도-환발해 경제권’을 추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중국경제가 지금과 비슷한 속도로 발전을 지속해가면 무역, 투자 등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계속 커질 것이다. 내수시장이 협소한 우리 경제의 활로는 결국 해외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경쟁력 수준이나 지리적ㆍ문화적 근접성, 수출대상국의 구매력ㆍ잠재성 등을 고려하면 중국은 가장 유망한 시장이다. 또한 중국 전역에 한국제품 전문매장이 생겨나는 등 ‘메이드 인 코리아’가 고가의 브랜드로 인정받는 것에서 보듯이 중국은 한국기업이 제값 받고 진출할 수 있는 흔치 않은 큰 시장이다.중국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경제의 성장속도와 질이 결정될 것이다. 중국의 변화는 한국경제에 중대한 위협요소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으나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발전 기회로 활용할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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