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한국호, ‘시장의 복수’에 침몰하나

서울 강남구에 사는 윤모씨(47)는 최근, 1년 전과 비교해 자신의 자산이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자영업을 하는 윤씨는 30평대 아파트와 주식, 은행예금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자산이 10억원을 넘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하지만 올해 들어 자산이 지난해에 비해 10% 가량 줄었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데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가치 역시 30% 이상 폭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센터의 수입도 시원치 않아 이래저래 우울하다.수출 신기록, 내수불황, 날뛰는 유가에 국민들의 신경이 쏠려 있는 사이에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자산가치가 줄어드는 자산디플레이션 현상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아직은 일부에서 나타나고, 자산가치의 하락폭도 크지 않지만 본격화될 경우 폭발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산디플레는 거시지표 등 어디에도 잡히지 않아 외형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도 심각성을 더한다.자산디플레의 조짐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먼저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눈에 띈다. 특히 우리 생활과 직결돼 있는 아파트 가격이 심상치 않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뚜렷한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일부 아파트는 최근 들어 1억원 가량 하락한 가운데 거래되고 있고, 그나마 사려는 사람도 적다. 추가 하락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재건축 아파트 단지 역시 개발이익환수제 등의 영향으로 약세로 돌아섰고, 급매물이 나오면서 낙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다.주식시장의 붕괴 역시 자산디플레를 부추기고 있다. 한때 종합주가지수 1000대를 눈앞에 두는가 싶더니 몇 달 사이 700선까지 밀렸다. 개별종목 시세를 봐도 단기간에 3분의 1 토막, 심지어 반 토막 난 것도 수두룩하다. 코스닥시장은 아예 탈진해 액면가(5,000원)도 안되는 주식이 널려 있다. 자연 개인투자자들 가운데는 투자 원금을 모두 날리고 깡통을 차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금융자산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만 해도 은행이자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금리가 3%대로 추락하면서 은행에 돈을 넣어 자산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이제 환상이다. 더욱이 물가는 고공비행을 한 지 오래다.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5%대를 넘어섰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억원을 금융권에 넣어둘 경우 물가인상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연간 42만원을 손해 본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자산디플레가 우리 주변에 다가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는 비율이 최근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10개월 사이에 효력이 상실되거나 해약된 건수가 819만건으로 전년의 598만건에 비해 무려 4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우리 경제는 이미 외형적으로는 자산디플레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주식, 금융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물가 상승폭도 심상치 않아 가계의 부담을 더욱 늘리는 형국이다. 개인 자산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시적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장기화될 것이냐는 점이다. 자산가치 감소를 불러온 요인들이 바로 해소되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등이 큰 폭으로 떨어지며 장기화될 경우 90년대의 ‘일본식 복합불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복합불황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원인을 빨리 제거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더욱이 일찍이 자산디플레를 겪어본 경험이 없어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금리조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시각이 많다. 인위적으로 문제를 풀 경우 또 다른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일관된 정책기조를 정착시키는 방법 외에 달리 생각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시장을 통한 자율조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일관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돋보기 / 용어설명자산디플레이션: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의미하고 줄여서 자산디플레라고 말한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주식, 금융자산 등의 가치가 떨어져 전체 자산의 감소로 연결될 때 사용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자주 쓰이고 있다.복합불황: 1992년 미야자키 요시카즈 교토대 명예교수가 이라는 책을 내면서 일반화됐다. 당시 미야자키 교수는 소비와 생산 등 실물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전통적인 불황에 자산디플레가 가세, 경제의 모든 부문이 불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실물경제와 개인의 자산이 동시에 위축될 때 사용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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