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격 떨어지면 담보가치도 직격탄

부동산 신화에 길들여진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자산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상 유래 없는 고유가 행진으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과 주가하락과 연관된 자산디플레이션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 소비와 투자주체들은 내수부진이 심화되면서 취업과 자금압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결국 자산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서게 됐다.문제의 핵심은 고유가 등으로 부담이 가중된 가계부문의 자산매각 수요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자산매각 자체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거래가 중단된 시장의 가격은 허수에 불과하다. 실제 수급의 균형을 이루는 가격형성은 거래가 활발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큰 어려움은 이미 시장에 부동산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주식시장과는 달리 부동산 시장은 기대형성이 더디지만 기대의 모멘텀도 오래가는 특성이 있다. 일단 가격하락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거래가 위축되고 상당한 가격조정 이후에야 거래가 가능한 패턴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자산디플레이션에 대한 고민은 현재 가시화된 수치를 근거로 하기 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우려가 그 핵심이다. 가계 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의 디플레이션, 특히 분명 부채상환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디플레이션은 현 상황에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요인이다.더욱이 대외여건의 불안으로 소득흐름이 위축될 경우 자산가격의 하락과 대출과정 위축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제는 급격한 수축과정에 진입하게 된다.따라서 최근 들어 부채규모가 급증한 우리나라로서는 부동산 가격하락 여부에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급 측면의 물가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가운데 당장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기는 어렵지만 여건이 어려워져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전개되는 자산디플레이션은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다. 자산가격의 변화가 가계부채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상황에서 자산가격의 하락은 특히 담보가치의 하락을 뜻하므로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 저하와 금융기관의 대출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유가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자산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과 달리 디플레이션의 장기적 후유증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자산디플레이션이 가시화될 경우 실물부문에 악영향을 미쳐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게 되며 채무 상환 능력의 저하를 통해 자산가격과 담보가치의 충격을 증폭시키게 된다. 결국 은행부문의 건전성을 유지할지의 여부는 자산가격의 안정 여부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만약 은행부문의 건전성이 담보가치 하락으로 위협받는 경우 우리 경제는 장기적 침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한편 디플레이션의 원인은 수급 양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와 설비투자와 같은 유효 수요의 부족이 크게 작용하는 반면, 공급 측면에서는 해외생산 증가 등에 의한 수입물가의 하락 및 과잉공급에 기인한다. 세계적 생산기지로서 아시아 지역은 디플레이션의 센터 역할을 해왔다.디플레이션 압력이 우리 경제를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파급되는 경로를 살펴보면 △세계시장 위축 및 국제금융 불안 △수출가격 인하 경쟁 △엔저와 아시아 통화불안 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국제금융의 공황 발생 가능성 점증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자산 축적이나 자산 매각 압력에 대한 평가로 가늠할 수 있다.즉 당장은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의 수출호조로 상황을 유지하고 있으나 교역조건은 꾸준히 악화되고 있으며 수요를 지탱하는 가계부문은 채무 상환 부담으로 인해 소비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주체인 기업들은 투자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할 정도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으며 노사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여건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자산디플레이션이 어렵지 않게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수년 전의 상황과는 달리 디플레이션 압력은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일본은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서 디플레이션 함정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 초입에 와 있는 셈이다. 분명 자산가격을 지탱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너무 취약하다. 간단히 고용사정이 호전되거나 추가 신용공급이 가능한 여건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부동산거래 세제 정비해야예상치 못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채의 실질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부가 채무자로부터 채권자로 재분배되면서 채권자의 한계소비성향이 채무자보다 클 경우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한편 기대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주어진 명목이자율하에서 실질이자율은 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해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성장이 저해된다. 특히 가계부문이 크게 레버리지(Leveraged)돼 있는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은 곧바로 소비를 지연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또한 가계부문의 채무 상환 능력의 저하는 부실화를 통해 대출시장을 경색시키고 부문간 자금흐름의 왜곡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며 금융권 부실로 이어져 실물부문의 침체를 가속화하게 된다.구체적으로 디플레이션의 파급경로를 일본을 예로 들어 살펴보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과열로 형성된 버블이 붕괴됨에 따라 자산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게 되고 수요를 위축시켜 경기침체가 발생하게 됐고, 금융부문에 있어서는 자산가격의 장기 하락으로 인해 기업과 은행부실채권이 누적돼 금융권의 신용 창조 능력이 약화됨에 따라 금융부실로 이어진 것이다.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인 대응사례를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활력을 유지할 경우 디플레이션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일단 자산디플레이션이 나타날 경우 통화정책이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없는 이유는 명목이자율 하락 정책의 실질이자율 감소효과가 작아서 채무부담 감소 및 투자 진작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러한 정책방향은 금융부문이 부동산 버블을 자극하는 구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조세정책의 정비 등 소비심리 위축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단 주택거래신고제와 같은 과도한 대책은 이미 시중자금이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정상적 자금흐름마저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확대시키므로 조속히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 주식시장 대책, 일본은행의 시중은행 보유주식 매입 등과 같이 금융정책으로 일관했으며 수요 확대 및 인플레 정책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수출입가격 하락 등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게 되면 평가절하 및 금리인하 정책을 시도해야 하지만 정책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결국 대내 부채의 누적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구도가 강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상당한 시차를 두고 사전적으로 정책대응을 해야 한다. 이미 자산디플레이션 기미가 보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우선 자금흐름을 속히 정상화할 수 있는 부동산 거래 관련 세제를 정비하고 해외자금이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제반 여건 구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노사문제 등 반기업적 분위기가 강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성장에 필요한 경쟁적 요소를 점차 해외로 상실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이제 디플레이션의 우려하에서 정책선택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도 부채-디플레이션 순환(Debt-Deflation Cycle)의 작동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도국의 경우 시장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상황이므로 건전성 규제감독 수단의 적절한 구사가 어려울 수도 있으나 경기 진폭의 확대(Boom and Bust Cycle)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거시정책보다는 경기순행적 효과(Procylicality)가 상쇄된 미시 조치의 강화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다만 이러한 미세 조정은 사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자산 매각 수요가 급증하는 현 여건하에서는 부동산 거래 관련 세제를 완화시켜 자금흐름에 어느 정도 숨통을 틔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부동산 금융관련 제도를 개선시켜 부동자금이 자본시장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 강조하는 제반 혁신 노력도 자발적인 시장 내부의 경쟁으로 주도되는 것이 중요하다.움츠린 경제에서는 결코 경제활력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형평성 제고나 성장동력 발굴은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 처방의 후유증을 피하고 일관된 정책기조를 정착시켜 시장을 통한 조율이 강조되는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정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물론 가장 확실한 자산디플레이션 방지책이 성장동력이 갖춰진 활력 있는 경제 기반의 구축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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