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금융인…명성 높지만 실적은??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힘든 하루였다.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45)에게 주총이 열린 지난 5월26일은 1년보다 긴 시간이었다. 200여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아무 말 없이 3시간여를 앉아 있어야 했다. 주총보고서만 뒤척이며 눈길을 피했다. 배가 고팠을까. ‘혹시 몰라 준비했다’는 점심 대용 떡을 주주들 앞에서 홀로 먹었다. 단상에 섰을 때는 웃어보였다. 어색한 미소였다. 질타는 이어졌고 우군은 별로 없어 보였다. 오후 4시가 돼서야 마이크는 꺼졌다. 긴 한숨이 나왔다. 언론은 ‘무승부’로 평가했다. 주총은 끝났지만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결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는 대구 출신이다. 계성초등학교 4학년이던 71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강회장 부모의 교육열은 엄청났다. 자식교육을 위해 20년 넘게 매일 16시간씩 일한 것으로 소개됐다. 덕분에 형제들은 모두 명문대를 졸업했다. 수재로 소문난 강회장 역시 화려한 학력을 자랑한다. 하버드대(경제학)와 와튼스쿨(MBA)을 졸업한 뒤 증권가에 진출했다. 짐 울펜손 전 세계은행 총재가 세운 ‘울펜손사’에서 재무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이후에는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6년에는 상무로 승진했다.한국증권가에 데뷔한 건 99년이다. ‘28년 만의 화려한 귀향’이란 언론보도처럼 금의환향했다. 공식직함은 서울증권 공동대표. 675억원에 경영권을 인수한 조지 소로스가 그를 발탁했다. 소로스와는 월가 시절 인연을 쌓았다. 당시 소로스가 39세 무명의 그를 CEO로 발탁한 배경을 두고 화제가 적잖았다. 연봉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300만달러의 연봉은 당시 환율로 36억여원에 달했다. 월가 기준으로 봐도 거액 연봉이었다. 소로스는 “회사가 돈을 벌면 당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소로스는 99년 1,432억원의 당기순익을 내자 강회장에게 무려 1,026만주의 스톡옵션을 주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 서울증권 CEO로 보낸 7년 성적표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 이렇다 할 경영성과를 낸 게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증권가의 분석 역시 다소 부정적이다. S증권 P부장은 “그렇잖아도 갈 길 바쁜 서울증권이 소로스의 손을 타면서 경쟁력 확보에서 뒤처지게 됐다”며 “CEO로서 강회장의 행보가 논란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서울증권 전직 직원 K씨는 “처음에는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별 게 없다는 얘기가 많았다”며 “경영성과가 별로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같은 맥락에서 일각에선 강회장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했다. 우선 알려진 것처럼 실제로 실력파 M&A전문가인가 하는 점이다. 전직 임원의 코멘트다. “M&A전문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실적이 없어요. 서울증권에 온 뒤 처음에는 대투·한투·동양증권 등을 M&A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나중에 슬그머니 포기했어요.”주총에서 불거진 것처럼 개인보상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강회장이 지금껏 받은 스톡옵션(보수 포함)은 2,560만주에 달한다. 지분율로 치면 9.01%(미행사 스톡옵션 8.13%)로 상당한 규모다. 대부분 증권사의 미행사 스톡옵션이 0~1%대인 것을 감안하면 과도한 게 사실이다. 애초의 계약이었다지만 연봉 300만달러도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CEO로서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건물까지 팔아 지배주주(조지 소로스)에게 거액을 배당(950여억원의 매각대금 중 상당한 금액을 배당한 것으로 알려짐)한 것 역시 문제점으로 거론된다.강회장이 소로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됐다. 차익을 거둔 뒤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참고로 강회장의 국적은 미국이다. 가족도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로스가 떠난 뒤 강회장은 경영권 장악을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꾸준히 지분(스톡옵션 행사)을 늘려왔다. 2005년 12월19일 2.18%에서 지난 1월25일에는 5.02%까지 늘어났다. 한편 소로스는 지난 7년간 배당금·지분매각 차익으로 모두 820여억원을 챙겨 떠났다.스톡옵션 행사를 위해 빌린 대출금도 도마에 올랐다. 강회장이 증권금융에서 받은 거액의 대출금(30억원 이상 추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냐는 문제 제기다. 증권금융 관계자에 따르면 증권담보대출의 최고 한도는 개인당 30억원이다. 드물게 초과 대출이 이뤄지지만 이 경우 담보종목이 우량주이거나 담보물의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울증권 주식가치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미지수다.강회장에 대한 대출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 증권금융 관계자는 “실명거래법 위반사항으로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강회장 정도의 공인이라면 대출과정에서 불법·편법을 저지를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강회장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한편 증권가 일각에선 강회장의 경영능력을 높이 사는 시각도 있다. 공방과정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을 수 있다는 반론이다. 우선 냉혹한 ‘정글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국제금융의 중심지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라는 그의 경력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다. 이렇다 할 M&A 실적이 없는 것도 선진 M&A 기법을 선보이기에는 국내시장 토양이 아직 미흡하다는 게 강회장에게 우호적인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주총 이후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회장은 “리더십 평가를 운운하기엔 아직 시간이 짧다”고 밝혀 이 같은 외부시선이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님을 시사했다. 그는 “주주들이 매년 우리의 리더십을 평가하고 싶어 한다”며 “아직 임기가 2년 남아 있어 그때 실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ysjeon@kbizweek.com돋보기 / 주총 스케치살벌한 분위기 속 ‘치열한 공방전’지난 5월26일 오전 9시 여의도 서울증권 1층 로비. 정기주총 참가를 위해 회사를 방문한 주주들의 표정이 난감하다. 노조원 30여명이 마스크를 낀 채 피켓시위를 하고 있어서다. 모두 한주흥산의 경영참가에 반대한다는 구호들이다. 살벌한 문구 앞에 몇몇 주주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대강당으로 향했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역시 10여명의 노조원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 중이다.원래 주총은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낮 12시를 넘긴 뒤에야 시작됐다. 한주흥산이 가져온 위임장이 3박스나 돼 명단확인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기시간이 3시간을 넘기면서 주주들의 인내심은 극에 달했다. 개회와 관련된 논쟁·질타도 잇따랐다. 한 개인투자자는 “이런 주총은 생전 처음”이라며 “오만불손한 현 경영진의 태도를 보니 주가가 낮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표 대결이 예견된 탓인지 주총 분위기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펼쳐졌다. 빈자리는 없었고 양측의 대립각은 날카로웠다. 회의장 안팎에선 몇 차례 간헐적인 신경전이 목격됐다.낮 12시10분. 강찬수 회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그 역시 지루하고 때로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9시부터 자리를 지켰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질문은 감사보고 직후부터 봇물처럼 터졌다. 안건과 무관한 신상발언부터 부실채권 관리 문제까지 폭넓게 거론됐다. 한 개인투자자가 “배당도 적고 주가도 바닥 수준”이라고 공격하자 강회장은 “액면가 500원을 감안하면 주가가 싸지 않으며 8%(액면가 기준)의 배당도 적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또 다른 개인투자자는 “직원들이 영업은 안하고 위임장이나 받으러 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강회장은 “위임장을 받으면서 영업과 홍보도 했으니 결국 회사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특정 타이밍 때 고함이 여러차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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