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입문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다”

98년 IMF 환란으로 부동산 값이 폭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다. 2000년 들어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자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01년 강남 재건축시장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뚜렷해지니 재테크 분야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2002~2003년 부동산은 온 국민의 관심사로, 유력 재테크 수단으로 정점에 올랐다.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부동산 관련 업계로 진출하려는 이도 늘어났다. 대학들은 부동산 관련 학과 설치에 열을 올리고 각종 기관 단체의 재테크 프로그램에서 부동산 강좌는 최고 인기다. 공인중개사를 제2의 직업, 퇴직 후 창업아이템으로 삼으려는 이들은 중개사 자격시험 시장을 날로 키우고 있다. 지난해 제14회 시험 응시자는 26만명. 20대에서 70대까지 응시자 연령대도 다양하다.바야흐로 부동산 전성시대다. 부자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각종 규제책으로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관심도는 여전히 높다.이미 20~30대에게 내집마련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닌 필수. 부동산 부자를 은근히 비하하는 용어 ‘졸부’는 과거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부동산 부자를 추앙하고 이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이들이 줄을 서는 시대가 왔다. 더욱이 뒤늦게 부동산으로 방향을 틀어 성공을 일군 이들에겐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공부와 실전경험은 필수”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부동산으로 전업해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보다 월등한 실전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샐러리맨 중에선 업무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은행원, 건설회사 직원이 특히 그렇다.정문일 비잔티움 대표는 서울은행에서 10년간 점포개발 업무를 담당하면서 부동산 감각을 키웠다. 덕분에 쓸모없는 땅에 생기를 불어넣는 디벨로퍼라는 제2의 직업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사장은 입문 2년 7개월 만에 4,5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정사장 외에도 은행 출신 부동산 피플은 수두룩하다. 특히 부동산 중개업계에서는 수많은 은행 출신 퇴직자가 맹활약 중이다. 일산에서 대건공인을 운영하고 있는 김구석 사장은 제일은행 서울 강남지점장 출신. 또 재직시절 FP(재무설계사) 자격증을 따 중개 업무에 전문성을 더하는 은행 출신 중개사들이 적잖다.나산종합건설, 대우건설은 ‘디벨로퍼 양성소’로 이름이 높다. 90년대 중반 주상복합 브랜드 나산스위트로 유명했던 나산종합건설은 사세가 기운 후 전문 인력들이 하나 둘 씩 독립, 탁월한 디벨로퍼 그룹을 형성했다. 문주현 MDM사장, 김한옥 도시와 사람 사장, 이원열 SPD 사장 등은 나산에서 맡았던 주상복합ㆍ오피스텔 개발 실무를 바탕으로 수천억원대 대박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미다스의 손이 되었다.또 최근 부천 ‘위브 더 스테이트’를 성공시킨 더피앤디의 홍창환 사장과 이정배 넥서스건설 사장 등은 대우 출신 디벨로퍼로 손꼽힌다.“생각을 바꿔라”또 하나의 공통점은 부동산 분야에서의 성공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는 것. 열이면 열, 오랫동안 독학이나 실전 투자를 통해 실력을 쌓은 것이 대박으로 이어졌다.부동산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의 경우, 대기업에 근무하며 틈틈이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한 것을 디딤돌로 삼았다. 개인적인 관심에 그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을 체계적으로 공부했을뿐만 아니라 정확한 경기전망을 하기 위해 매일 밤 세계의 주가, 금리, 유가, 환율을 체크했다. “잠자기 전에 아는 것과 그 다음날 아침 뉴스를 통해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무엇보다 이들은 ‘생각을 바꾸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전업주부였던 김혜경 수동건설 사장은 남편의 빚보증 사고, 주식투자 실패 등 최악의 상황을 딛고 3년 만에 ‘부동산 도사’로 거듭났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감만 있으면 회생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김사장은 “좌충우돌하면서 배우고, 나도 1억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고 힘주어 말한다.이제 ‘부자로 살기’는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됐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부동산 투자’라는 인식도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부동산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군 이들에게서 ‘아주 특별한 성공 비법’을 배워보자.정문일 비잔티움 대표은행원에서 디벨로퍼로 대박신화 ‘번쩍’약력: 1956년 생. 성균관대 불문과 졸업. 서울은행 종합기획부ㆍ국제부ㆍe비즈니스팀 등 근무. IT벤처기업 홈돌이 대표. 하이센스빌 대표 역임.“전국의 3만여개 시행사 가운데 5개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킨 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부동산을 보는 안목, 자금 조달 능력, 개발 컨셉 설정, 시공 기술 등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지요. 앞으로는 ‘비잔티움’ 하면 ‘명품 아파트’라는 공식이 만들어질 질 겁니다. 두고 보세요.”부동산업계 입문 2년 7개월 만에 4,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수백억대 수익을 올린 사람이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 (주)비잔티움을 이끌고 있는 정문일 사장(48)은 지난 2001년 12월 부동산업계에 뛰어든 후 지금까지 5건의 주상복합ㆍ오피스텔 시행을 맡아 모두 100% 분양 완료하는 ‘대박 신화’를 이뤘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월급쟁이 은행원이었지만, 지금은 손대는 곳마다 황금꽃이 피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정사장의 ‘오늘’은 서울은행 종합기획부에서 10년간 맡았던 점포개발 업무가 밑바탕이 됐다. 전국 각지에 200여 지점을 설치하면서 자연스럽게 땅을 보는 안목이 길러졌고, 개발사업의 필수요건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도 일가견이 생겼다. 특히 “지도만 보면 물 흐르는 소리, 새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는 경험이 개발사업을 모두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눈에 띄지 않는 땅을 최고 가치로 개발하는 게 디벨로퍼의 임무”라는 지론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정사장이 22년간 몸담은 은행을 떠난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공적자금 투입 등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IT분야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현실을 깨닫고 4개월 만에 꿈을 접었다.이후 부동산 개발업에 동업 형식으로 뛰어든 것이 인생역전의 계기가 됐다. 부천, 수원 일대에 오피스텔 분양을 잇달아 성공시킨 뒤 지난해 3월엔 단독 법인 ‘비잔티움’을 세웠다. 과거 함께 근무하던 유능한 동료들도 규합했다. 지금은 16명의 정예 인원이 설계회사 아이플래닝, 마케팅회사 코스모플랜 등과 더불어 수백억대 프로젝트를 주무르고 있다.정사장은 터키 이스탄불의 옛 이름을 회사명이자 브랜드로 쓴 이유에 대해 “유럽 고건축물이 가진 명품의 가치를 아파트에 되살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시행업계에 만연한 ‘한탕주의’ 대신 입주민이 최고로 만족하는 명품 아파트를 만들어 역사적 가치까지 가지도록 하겠다는 커다란 포부다.고종완 RE멤버스 대표평범한 샐러리맨 ‘가장 비싼 컨설턴트’변신약력: 1957년 생. 부산대 법대ㆍ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ㆍ건국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 졸업. 삼성ㆍLG그룹 근무. 한국통신 인사부장. 현 조인스랜드 전문위원. 유니에셋 자문위원. 고려대ㆍ연세대ㆍ성균관대ㆍ건국대 강사. 출간 예정.‘최고 인기 부동산전문가’ ‘상담료가 가장 비싼 컨설턴트’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사람’….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에겐 여러 가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최고’ ‘가장’이라는 범상치 않은 표현에서 그에 대한 지명도를 읽을 수 있다.실제로 그는 요즘 부동산업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하나다. 신문ㆍ방송을 종횡무진 누비고, 수시로 강단에 서며, 2~3주 신청이 밀려 있는 투자자들과의 1 대 1 상담에, 책 집필까지 혼자서 다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놀라운 것은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것.삼성, LG를 거쳐 한국통신에서 인사부장을 지낸 그는 지난 99년 명예퇴직으로 샐러리맨 생활을 접었다. 미리 따 두었던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서울 잠실에 중개업소를 차린 것이 공식적인 부동산업계 첫 발이었다. 이때 ‘이론과 실전 경험으로 무장한 전문가’로 인생 2라운드의 방향도 잡았다. 지난 86년 결혼과 함께 부동산 투자를 시작, 3년마다 1억원 꼴로 수익을 낸 실전 경험에 건국대 행정대학원에서 부동산을 전공하면서 쌓은 이론까지 더해 불가능할 게 없었다.그러나 “쉬운 줄 알고 덤볐다가 큰코다쳤다”는 그의 말처럼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종업원에게 맡겨두고 강연 등 대외활동에 치중한데다 비슷한 시기 퇴직금 수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반 토막 이상 날리는 낭패를 보았다.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건국부동산경제연구소를 차리고 법원 경매, 재개발 재건축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한편 거시경제 공부에도 매달렸다. 얼마후 인터넷에서 먼저 소문이 났다. 구체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투자 상담, 정확한 경기전망이 히트를 친 것이다.‘충청권 토지가 유망하다’고 주장한 것도 이맘 때.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3차례나 신칸센 주변 토지시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신문ㆍ방송에선 숨어있던 진주를 발견한 듯 그를 찾고 투자자들도 줄을 서기 시작했다.2002년 3월, 부동산업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RE멤버스를 설립하면서 고사장은 새로운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더불어 은행 PB고객을 대상으로 한 VIP마케팅을 주력 분야로 선택했다.“부자들은 잘 아는 부동산에 장기 투자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반면 이들이 원하는 빌딩, 토지 등 대형 부동산 상품에 대한 투자정보는 취약한 실정이지요. 고액 자산가를 위한 최고의 부동산 서비스 제공이 지향점입니다.”김혜경 수동건설 대표보통 아줌마, 부동산투자로 인생역전약력: 1968년 생. 학습지 교사ㆍ스포츠센터 홍보마케터ㆍ책대여점 운영 등. 엠포시즌컨설팅 토지 컨설턴트. 저서 김혜경 수동건설 대표(36)의 성공스토리는 ‘보통 아줌마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약통장 하나 쥐고 내집 장만의 꿈만 꾸던 평범한 아줌마가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뜨고 부동산 투자 지침서 저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김대표의 ‘아주 특별한 변신’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10년 묵은 1순위 통장 하나만 바라보던 전업주부는 남편의 빚보증이 잘못되자 부업 전선에 나섰다. 학습지 교사, 책대여점 운영, 스포츠센터 홍보 마케터 등 부업을 옮겨 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씀씀이를 줄여도 적자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계속됐다.반전은 한 건설회사 입사 면접장에서 찾아왔다. 분양권으로 목돈 없이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만큼 이전까지는 부동산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셈이다.“첫 거래에서 수도권 아파트 3채를 한꺼번에 사들였어요. 일반분양, 미분양, 조합아파트를 1채씩 사들여 자연스럽게 각 종목의 특징을 공부하게 됐지요. 대출을 최대한 활용한 덕에 목돈은 얼마 들지 않았어요. 몇 개월 만에 수익을 내면서 순식간에 부동산 투자의 매력에 빠져들었죠.”내친 김에 아파트 거래를 의뢰했던 중개업소로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시장을 속속들이 알게 되자 이번엔 굵직한 거래가 해보고 싶어졌다. 빌딩, 토지 쪽 경험을 쌓기 위해 엠포시즌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토지 컨설팅을 맡으면서 실전 경험과 식견을 쌓는 한편, 연봉 1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책을 통해서였다. 지난 4월 로 서점가에 데뷔한 지 2개월 만에 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 6월 넷째주 교보문고 종합 3위에 오를 만큼 반응이 대단하다. 덕분에 쇄도하는 인터뷰ㆍ강연 요청과 컨설팅 의뢰에 요즘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6월 들어선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개발회사 수동건설을 설립, 디벨로퍼로 첫 발을 내디뎠다.“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만약 경험을 더 쌓자고 마음먹었으면 책을 못 만들었을 겁니다. 부동산에 입문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가 모든 걸 가능케 했어요. 이젠 수백억원짜리 물건을 서슴없이 맡을 만큼 배포도 커졌어요.”김대표는 파주를 중심으로 개발사업을 펴는 한편 부동산 관련 책 저술도 계속 할 계획이다. 전국 곳곳에 사업체를 운영하며 튼실한 장학재단을 운영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워 두었다.돋보기 이색 ‘부동산 대박 맨’회계사·수사관·교수 등 부동산으로 인생 ‘턴어라운드’정문일 비잔티움 대표, 고종완 RE멤버스 대표, 김혜경 수동건설 대표 외에도 뒤늦게 부동산에 입문, 승승장구하는 이는 많다.아파트 브랜드 ‘동일하이빌’로 잘 알려진 동일토건의 고재일 사장(65)은 공인회계사 출신이다. 27년간 공인회계사로 일하다 지난 89년 동일토건의 전신인 동일물산을 설립하면서 대변신을 했다. 남들 퇴직할 나이에 건설업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고사장은 “어떤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정리할까 생각하다가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住)를 선택했다”고 밝힌다. 회계사 출신답게 재무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 단시간에 기업경쟁력을 높였으며 ‘차별화된 아파트만 팔린다’는 소신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있다.‘주택건설업계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영조주택의 윤호원 회장(47)은 검찰수사관 출신. 검찰청 재직시절 사내 조합주택 업무를 도맡아 처리한 경험과 퇴직 후 법무사사무소를 운영한 경력을 바탕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평소 “한탕주의 배격, 수익의 사회환원”을 강조하는 그는 지난 98년 대구, 청주 등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해 올해 본격적인 서울 입성을 노리고 있다.지난 4월 청약돌풍을 일으킨 부천의 주상복합 ‘위브 더 스테이트’ 분양을 맡은 부동산개발업체 더피앤디의 홍창환 부사장(37)은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이다. 대우건설에서 주택 관련 업무를 맡았던 그는 요즘 주목할 만한 디벨로퍼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책을 통해 자신의 부동산 투자 성공기를 설파하는 이도 적잖다. 의 저자 노용환씨(35)는 평범한 샐러리맨, 아이스크림전문점 사업 등을 거쳐 현재는 부동산투자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이색인물이다. 28세에 전세금 2,800만원으로 시작해 32세에 32평 아파트를 마련하고, 현재는 아파트 3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전투자 경험을 인터넷에서 선보이는 한편 책으로도 펴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10억원 만들기’ 열풍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조상훈씨(34)는 최근 두 번째 책 를 펴냈다. 그는 800만원으로 주식과 채권, 부동산, 경매 등에 투자해 14억원을 모은 경험을 란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번에 낸 책은 부동산경매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직접 부딪치며 얻은 경매 노하우들을 투자일지 형식으로 정리했다.서일대학 건축과 이재국 교수(44) 역시 자신의 실전투자 경험을 디딤돌 삼아 라는 책을 펴내고 현재 부동산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전세 1,500만원짜리 반지하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해 8년 만에 서울 강북 중심부에 32평 아파트를 장만했고, 다시 2년 6개월 만에 20평을 더 넓혀 강남 입성에 성공한 ‘신화’를 이루었다. 인터넷에서 ‘이재국의 부동산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금융기관, 재테크 강좌 등에서 인기 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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