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500배 성장…유통핵 떠올라

14억서 4조원 시장 급성장 … 하루 고객수 480만명

국내에 편의점이 등장한 것은 89년으로 당시 연간 매출액이 14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유통업계에서도 ‘과연 성공할까’ 하는 의문을 거두지 않을 때였다.3년이 지나자 의문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93년 업계 매출액이 2,500억원을 훌쩍 넘어서며 ‘대박’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한번 속도가 붙자 멈출 줄을 몰랐다. 97년 1조원 시장으로 커지더니 5년 만인 2002년 2조원을 가뿐히 넘어섰다. 이후 불과 1년 만인 2003년 3조6,319억원으로 3조원 시대를 열더니 올해는 4조원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15년만에 50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편의점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통시장에서 할인점과 함께 ‘신유통’의 핵으로 떠오른 비결은 뭘까. 여러가지 사회적 요인이 있겠지만 업체간의 치열한 점포 늘리기 경쟁이 기폭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경쟁이 어느 정도 치열했는지는 점포수가 늘어난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도입된 지 4년 만인 93년 점포수 1,000개를 돌파했다. 다시 4년 만인 97년 2,000개로 두배가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서며 전성기를 맞았다. 2001년 3,870개, 2002년 5,680개, 2003년 7,200개로 매년 약 2,000개의 점포가 문을 열었다.편의점의 고속성장은 다른 유통업과 비교할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2002년 전년 대비 편의점 성장률은 44.1%로 인터넷쇼핑몰 같은 무점포(67.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지난해에는 26.4%의 성장률을 기록, 유통업계 선두를 차지했다. 같은 시기 무점포와 할인점은 각각 9.5%, 10.4%에 그치고 백화점이 마이너스 3.4%로 곤두박질친 것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기록이다.박진 LG투자증권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올해도 전년 대비 19.8% 성장할 것”으라며 예년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점쳤다.이 와중에 흔히 ‘빅3’로 불리는 훼미리마트, LG25, 세븐일레븐의 선두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96년까지는 훼미리마트가 근소하나마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토종업체인 LG25가 선두탈환에 나서면서 쫓고 쫓기는 싸움이 지속됐다. 결국 1위 탈환에 성공한 LG25는 97년부터 99년까지 3년간 왕좌를 지켜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편의점 시장은 훼미리마트와 LG25가 양분했다.그러나 99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이 세븐일레븐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신부회장은 덩치 키우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에 힘입어 2000년 드디어 1위로 치고 올랐다. 2001년에는 국내 최초로 가맹점 1,000개 시대를 열며 콧노래를 불렀다. 더 이상 적수가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당시 일본에서 건너온 세븐일레븐의 혼다 전무는 “1만개까지 늘리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세븐일레븐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한 확장이 화를 불렀다. 부실점포가 속출하고 해마다 적자는 누적됐다. 이를 견디지 못한 혼다 전무가 결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넌다’는 롯데그룹 특유의 내실경영으로 돌아선 것이다.LG25도 당시 백화점, LG마트 등과 통합작업을 거치면서 수익위주의 경영을 고집했다. 이렇게 되자 편의점업계의 출점경쟁이 다소 주춤한 듯했다.그러자 이번에는 훼미리마트가 반격에 나섰다. 경쟁업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과감한 출점으로 치고 나간 것이다. 2002년 1,429개로 6년 만에 1위로 복귀하더니 지난해에는 2,000개를 넘어서며 당분간 경쟁업체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위치를 확보했다. 이들 3사의 출점경쟁은 부실점포를 양산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유통시장에서 편의점 파워를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편의점 시장이 ‘쑥쑥’ 커지면서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들도 빠르게 늘어났다. 2003년 점포당 평균 이용객수는 667명이다. 전체 편의점 시장을 놓고 볼 때 하루 편의점을 찾는 고객은 480만명. 우리나라 인구수가 4,79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0명당 1명은 하루에 한 번씩 편의점에 꼭 들르는 셈이다.어떤 사람들이 주로 편의점을 찾을까. 20대 회사원들이 주류다. 연령대로 보면 20대가 42.9%로 가장 높다. 그 뒤를 30대(25.1%), 20대 미만(15.7%), 40대(12.2%), 50대 이상(4.1%)의 순으로 나타났다. 직업으로는 회사원이 49.5%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학생(37.1%), 주부(8.8%)도 단골에 속했다. 이러다 보니 20~30대 회사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상품들이 인기를 끌었다.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담배나 음료, 라면과 삼각김밥 등을 구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담배는 편의점 매출의 34.2%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다. 담배와 함께 음료, 라면 같은 가공식품(17.9%), 삼각김밥 같은 간편식 가공식품(14.1%)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그러나 구매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해 평균 객단가가 2,534원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2002년(2,617원)에 비해 80원이 떨어진 것이다.재미난 점은 편의점에도 철저하게 ‘8대2법칙’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상품군 중 약 20%의 품목이 매출액의 80%를 차지한다. ‘ABC법칙’도 여기서 나왔다.LG25의 경우 매출의 75%에 드는 상품을 A군, 25% 이내의 상품을 B군, 5%에도 못미치는 상품을 C군으로 나눠 각 그룹에 맞는 상품관리를 하고 있다. 일례로 18품목의 캔맥주 가운데 카스, 하이트, 라거 등 A군 3개 상품의 판매량이 전체의 73%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는 10%대에 머물고 있다. 탄산음료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 칠성사이다를 비롯한 5개의 A군 상품이 전체 판매량의 57%를 차지하는 반면, 11개의 C군 상품은 9%에 불과하다.현대 편의점은 단순히 일반 제품만 파는 곳이 아니다. 점차 생활편의서비스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편의점은 은행, 우체국, 택배업체, 사진관으로 변신한다. 택배서비스는 전국 곳곳에 들어선 7,700개의 편의점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LG25, 훼미리마트, 바이더웨이 등 3사는 택배서비스를 위해 공동출자로 e-CVS NET라는 물류업체를 설립했다. 설립 첫해인 2001년 실제 이용건수는 점당 월평균 6건으로 저조했으나 2003년에는 월 15.9건으로 늘어나 점차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다.하나 눈에 띄는 통계는 출점수 대비 폐점비율이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다. 2001년과 2002년 폐점률이 11.5%, 8.7%로 10% 안팎을 맴돌았으나 지난해 23.1%로 훌쩍 뛰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출점수 대 폐점비율이 60%를 웃돌기 때문이다. 편의점 매장의 평균 평수는 25평이다. 취급상품은 무려 2,500여가지다. 생활편의서비스도 날로 새로워진다. 10년 후에는 그 자그마한 공간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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