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준명품 아파트 ‘나홀로 대인기’

매스티지(Masstige)의 열풍은 주택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명품의 생활화를 지향하는 매스티지 전략은 부동산가격 안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아파트 브랜드 도입이나 명품마케팅 등 분양가 인상 악영향이 적잖았던 시장에서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저렴한 ‘준(準)명품’이 등장하며 선택 폭을 크게 넓히고 있다.주거공간의 한 형태인 아파트는 사실 대중제품(Mass Product)에 속한다. 흔히 ‘성냥갑 같은 집’으로 불리듯 아파트는 별다른 개성 없는 공간이다. 다만 대중제품의 속성인 널리 보급돼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특징 하나만은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편리성이 우리 주거문화의 주류를 형성했다. 드라마를 통해 살펴보면 주거문화의 변천이 극명히 드러난다.과거 드라마에서는 “네, 가회동입니다” 또는 “네, 평창동입니다”는 전화응답이 ‘족보 좀 두꺼운 집입니다’ 내지 ‘좀 사는 집이에요’라는 뜻으로 통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응답이 “반포입니다” 내지는 “압구정입니다”로 바뀌며 ‘우리 아파트 살아요’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냥 신기하게만 보이던 엘리베이터가 집집마다 달려 있는 공간이었지만 아파트가 고급주택으로 거듭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는 분양가 규제로 인해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주택에 불과했다. 일례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현대아파트는 ‘튼튼한 아파트’였을 뿐 결코 ‘고급스럽고 안락한 아파트’라는 수식어로 명성을 얻은 게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아파트는 분양가 족쇄에서 풀렸다. 이를 계기로 건설사들은 이제껏 쓰고 싶어도 정해진 분양가에 못 맞춰서 포기했던 신기술을 내놓기 시작했다.아파트 단지는 공원처럼 조성되기 시작했고 주차장은 땅속으로 숨겨졌다. 대충 구색만 갖추던 실내 인테리어는 붙박이장, 시스템 창호 등 외국영화에서나 보고 부러워하던 내장재로 바뀌었다. 시간이 가면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모여 새로운 평면을 개발했고, 이는 시대의 트렌드와 합쳐져 브랜드로 완성됐다. 자사의 브랜드를 명품으로 키워내기 위한 건설사들의 노력은 급기야 본드 냄새가 진동했던 실내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숨쉬는 공기조차 럭셔리하게 바꿔놓았다. 소위 ‘웰빙(Well-being) 아파트’까지 진화한 것이다.대형건설사가 웰빙 컨셉의 신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건 이미 1년도 넘은 일이다. 물론 시작부터 ‘웰빙’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생명존중, 생활편의성 극대화 등을 모토로 시작한 신기술 개발이 그 결실을 거둘 때쯤 등장한 웰빙이란 컨셉과 딱 맞아떨어진 것일 뿐. 그러나 분양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뒤였기에 웰빙이나 명품 아파트는 잘 먹혀들지 않았다.사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히 좋은 집만이 아니다. 먼저 이 집을 사서 앞으로 얼마나 오를지를 따져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아파트가 최신 트렌드에 맞춰 명품화돼 있고 웰빙화돼 있는 건 기본이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즉 매스티지화돼야 사겠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화성 동탄신도시 청약에서는 브랜드와 가격에 따라 청약률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결과를 보였다.청약률 1위의 영광은 월드메르디앙이 차지했다. 수많은 대형건설사들을 제친 이 아파트의 성공비결은 신 평면과 인테리어의 고급화에서 찾을 수 있다. 초호화 주상복합아파트, 이중에서도 대형평형에서나 찾아볼 수 있던 마호가니 가구들을 35평형 아파트에 도입했고 4.5베이 평면을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더욱이 이 아파트는 중앙공원과 붙어 있어 조망권을 고려한 가격치곤 쌌다는 데 더 큰 비결이 숨어 있다.삼성래미안은 경쟁업체 중 가장 낮은 가격의 아파트를 내놓으며 모든 물량을 팔아치웠다. 일반 아파트보다 층고를 30cm 높인 이 아파트는 웰빙을 지향한 공기순환시스템 등의 신기술까지 도입하며 매스티지 전략을 폈다. 반면 브랜드만 믿고 기존 평면을 그대로 사용한 업체들은 인상을 구겼다. 인지도 낮은 업체가 선전한 반면, 명성이 자자한 브랜드의 실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아파트 건설업계는 별장형 설계와 해변 골프장 등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는 성원상떼빌이나 차별화된 외장과 단지설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SK뷰, 동부센트레빌 등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시행될 원가연동제나 마이너스 옵션제 실시 후에도 소비자는 호감을 갖고 다가설 수 있는 매스티지 아파트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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