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지갑 여는 마법 수리수리 ‘매스티지’

‘겟 유스드(Get Used),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Marithe francois girbaud), 닉스(Nix), GV2 청바지.’이들 청바지의 유명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 이들 제품을 입었던 2030세대가 첫 번째 부류다. 두 번째 부류는 바로 당시 고가였던 이들 제품을 입겠다는 자녀와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에는 백기를 들고 사주고야만 40~50대 중장년층이다.199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상표 있는 옷’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의 자녀들이 중고가 브랜드를 ‘상표’라고 부르며 이런 옷을 입어야 ‘남과 다른 나’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그런데 이 같은 브랜드의 청바지와 티셔츠는 까르띠에, 루이비통 등 기존의 명품과는 구분됐다. 대량생산되지 않는 한정 수량의 초고가 명품에 비해서는 저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가도 아닌, 중고가의 ‘준명품’ 정도로 여겨졌다.90년대 후반에는 MCM과 메트로시티 등의 가방, 폴로 티셔츠 등의 의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 브랜드에는 ‘브리지 브랜드’(Bridge Brand)라는 용어가 붙여졌다. 중저가 상품과 고가 상품의 중간 가격대에 놓인 ‘다리’ 역할의 브랜드라는 의미다. 역시 대중적 명품으로 간주됐다. 이어 ‘세컨드 브랜드’(Second Brand)라는 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브리지 브랜드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이 말은 기존의 명품브랜드들이 보다 많은 고객을 겨냥해 3분의 1 정도 가격으로 내놓은 두 번째 브랜드라는 뜻을 지닌다. 프라다의 외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미우미우’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선보였고, 마크제이콥스에서는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아르마니에서는 ‘아르마니익스체인지’와 ‘아르마니진’을 내놓았다.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 대중적 명품 또는 준명품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지난해 4월 미국 비즈니스학술지 에 처음 등장한 ‘매스티지’에 모두 흡수됐다. 단지 가격이 싸다는 가격경쟁력 하나만으로는 매스티지라는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 가격은 명품과 비교해 저렴하지만 명성으로 포장돼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감정적 만족을 주는 제품이 바로 매스티지다.최근 극심한 불경기로 소비심리가 굳어 있지만 싼 제품 여러 개를 구입하느니 질 높은 제품 하나를 구입하겠다는 소비자가 증가하며 매스티지 제품과 마케팅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패션은 물론이고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과 같은 대형유통망, 전기전자제품, 자동차, 아파트 등의 주거문화, 외식산업에 이르기까지 ‘매스티지’ 전략을 쓰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백화점의 경우 올 상반기 히트상품 중 하나를 매스티지 관련 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명품가전이라고 생각되던 양문형 냉장고와 드럼세탁기, PDP TV 부문에서 가격을 대폭 낮춘 보급형을 전략상품으로 속속 출시하고 있다.기아자동차는 8월 출시 콤팩트 SUV차량에 ‘스포티지’라는 이름이 붙였다. 스포츠와 매스, 프리스티지를 합성한 이름으로 매스티지 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주거문화에도 준명품 붐은 일어 고급화된 인테리어를 갖췄지만 가격을 낮춘 월드메르디앙과 삼성래미안과 같은 아파트들이 높은 청약률을 기록 중이다.‘의식주’ 문화 중 빠질 수 없는 식문화를 이끌어가는 외식업계도 매스티지 몰이에 들어갔다. 호텔급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 패밀리레스토랑이 그동안 추구해 온 것이 매스티지 그 자체다. 호텔 커피보다는 저렴하지만 자판기 커피와 다방 커피보다는 비싼 스타벅스 등의 브랜드커피점도 ‘커피의 준명품화’를 추구하고 있다.서정미 삼성패션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의 대중은 대량생산해낸 저렴한 상품을 구입했던 반면, 최근에는 고급화된 신명품 매스티지를 추구하게 됐다”며 “명성과 품질은 명품의 감도로 유지해야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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