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연구 우리가 ‘짱’… 참가자 줄이어

회원간 마케팅 노하우 공유 … 부자체험 통한 정보교환 활발

‘부자의 지갑을 열어라.’귀족마케팅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토머스 J 스탠리다. 미국 조지아주립대학 마케팅 교수로 재직했던 스탠리 교수의 저서 는 부자마케팅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73년부터 부유층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패턴을 연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국내에서도 귀족마케팅 관련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게 스탠리 교수의 이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명품 소비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해 부자마케팅에 관한 연구가 일천하다.따라서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명품소비 계층과 이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부유층을 상대로 영업하는 사람들이 이런 모임을 찾는 경우가 많다. 부자를 공략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부자들의 생활습관을 직접 체험해 보기도 한다.삼성경제연구소 포럼(일종의 커뮤니티) 중 하나인 ‘귀족마케팅연구회’(이하 귀마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2002년에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회원수가 1만 2,000명을 육박할 정도로 귀족마케팅 관련자들의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VIP소비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온라인 입시학원 디지털대성의 최진영 대표가 ‘VIP마케팅의 연구 자료가 전무하다’는 현실을 절감해 만든 게 이 모임의 설립 계기. 초기에는 저자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 등을 초빙해 강연활동 위주로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는 형식의 이벤트가 많아졌다. ‘와인파티’, ‘댄스파티’, ‘미술품감상법 익히기’ 등이 최근 귀마연이 가진 행사다.포럼 내에는 다시 세분화된 각종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이 소모임 위주로 움직이는 게 귀마연의 또 다른 최신 트렌드. 식도락클럽이나 와인모임처럼 이 역시 부자들의 삶을 체험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귀족마케팅과 관련,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전문가 그룹’을 새로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 전문가 그룹은 2주에 한번씩 ‘케이스스터디’ 시간을 갖는다. 인터넷 포털업체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지식검색’을 귀마연 홈페이지에서도 활용해 보겠다는 게 전문가그룹의 결성 취지다. VIP마케팅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무엇이든 질문하면 전문가그룹이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게 하겠다는 게 귀마연 운영진의 장기 목표.회원들은 애견사업, 부동산, 의료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모임 관계자는 “앞으로 귀족마케팅 카운슬링 업체로까지 발전시킨다는 포부도 안고 있다”는 희망 섞인 바람을 털어놓았다.실제로 모임 수준을 넘어 전문업체를 표방한 곳도 있다.지난해 11월 문을 연 VIP마케팅코리아는 회원을 대상으로 귀족마케팅 세미나와 마케팅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회원의 등급에 따라 차별화된 강연, 또는 세미나 자리를 주선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실버회원 대상 강의에는 60명가량의 회원이 모여들었다. 은행, 백화점 등 부자고객을 상대로 한 마케팅담당자들이 모인 가운데 은행 PB센터 팀장 등이 연사로 나섰다.또 이 회사에서는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사업체의 마케팅을 대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고급빌라 건설회사, 고급 스파 등의 마케팅을 대행했다.‘부자의 삶’ 연구하다 창업기회 얻기도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던 중 새로운 사업 영역을 구축한 사례도 있다.웰빙소사이어티는 상류층 고객의 모임을 주선하고 컨설팅하는 ‘클럽’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이 회사에서는 특히 부유층의 여가 생활에 주목했다. 웰빙소사이어티의 홍종희 대표는 “기업CEO 등 VIP로 간주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자라고 해서 일반인들과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회사 설립의 동기를 밝혔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사람들도 삶의 공허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웰빙소사이어티에서 파는 것은 ‘경험재’라는 이야기다.이 회사에는 현재 ‘클럽 더 웰버’(Club The Wellber)라는 회원모임이 있다. 주로 40~50대로 구성된 회원들은 제빵ㆍ제과, 요가 등 다양한 테마를 갖고 모임에 참석한다. 홍대표는 “예컨대 ‘케이크 만들기’를 주제로 한 행사를 통해 회원들은 ‘술이 없이도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느끼며 무척 즐거워했다”고 자랑했다. 고객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결성하고 있는 모임의 성격 역시 이런 방식으로 컨설팅해 주고 있다고.홍대표는 “기존에 VIP소비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부자의 집사가 되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부자고객이라고 해서 저자세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연구를 통해 충분히 이들을 리드하는 컨설턴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이밖에도 마케팅 연구는 아니지만 ‘부자 되기’ 열풍에 힘입어 부자를 연구하는 인터넷 모임이 꾸준히 느는 추세다. 마케팅 담당자에게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연구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귀족마케팅 종사자들은 대개 이 같은 부자연구 모임에 중복적으로 가입돼 있는 경우가 많다.INTERVIEW 이기훈 귀족마케팅연구회VIP마케팅 타깃은 ‘경제귀족’“귀마연 시삽 하다 보는 눈만 높아졌죠.”이기훈 네이버 VIP마케팅부 과장(33)은 올해 초부터 삼성경제연구소 귀족마케팅연구회의 시삽을 맡고 있다. 귀마연 설립자 최진영 디지털대성 대표에 이은 2대 운영자다.이과장의 업무는 멤버십 잡지가 필요한 명품업체를 찾아 외주제작을 제안하는 일이다. IT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이 일을 맡게 되면서 귀마연과 인연을 맺었다.“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명품마케팅 담당자들이어서 찾아가 보면 대부분 저희 모임 회원이더군요. 그래서 영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안목이 높아진 건 단점인 것 같아요. 현실과의 괴리라고나 할까요.”시삽으로서 그의 역할은 소모임 운영상황을 체크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점검하는 것이다. 게시판 관리 역시 그의 몫. 본업 이외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대해 “모임 성격을 시삽 중심에서 다수의 운영진 중심으로 서서히 바꿔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1대 시삽은 시삽인 동시에 최고의 ‘열혈회원’이었어요. 귀마연은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모임입니다. 이제 운영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성격으로 바꿔가야 합니다.”그는 귀족마케팅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전략을 뜻한다기보다 제휴마케팅ㆍDB 구축 등 여러 가지 마케팅 전략이 혼합된 형태라고 정의를 내렸다. 다만 그 타깃이 ‘귀족’이거나 ‘귀족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귀족은 누구일까.“귀족마케팅의 타깃이 되는 귀족이란 자산규모 10억원 정도의 ‘경제귀족’이나 특정 제품의 마니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VIP소비자를 분석하다 보니 그들의 합리적 소비패턴도 배웠다”는 이과장은 “눈은 높아졌어도 이 같은 현실과의 괴리를 오히려 인생의 목표를 높게 잡는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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