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국내 1호…‘절반의 성공’

우리나라에서 금융지주회사의 탄생은 금융구조조정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내 첫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지주, 그 자체가 제2차 금융구조조정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1999년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더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할 부실은행들을 어떻게 구조조정할 것인가는 정부에 맡겨진 시급한 숙제 중 하나였다. 이때 모든 고민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금융지주사가 급속히 부각됐고, 정부는 이를 위해 ‘금융지주사설치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까지 신속하게 새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작업을 주도하고 있던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일부에서 금융기관간의 합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금융지주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겸업화 전문화 및 금융기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또 이때 정부는 금융지주사제도 도입 당위성으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복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범위의 경제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데다 수익구조 다변화를 통해 수익 기반을 안정화할 수 있고 △기업은 광범위한 업무관계를 만들 수 있어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화할 수 있으며 △소비자는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금융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점 등을 들었다.이 같은 논리에 따라 금감위는 2000년 9월25일 금융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방법을 담아 ‘제2단계 금융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골자가 부실은행 중 경영정상화 계획을 승인받지 못한 곳을 모아 공적자금을 투입해 클린화한 뒤 금융지주사로 출범시킨다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2001년 2월 금융지주회사 CEO 인선을 위한 인선위원회가 구성되고, 윤병철 회장이 지주사 초대회장으로 선임돼 3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설립됐다.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돼 온 통합과 정비작업은 2002년 8월 우리증권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마지막으로 우리카드까지 은행에 합병하면서 뼈대를 다 갖추게 됐다.윤병철 초대회장-이덕훈 행장 체제의 과제는 국내에서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금융지주사라는 것을 현실화하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사들을 속히 정상화시키며,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었다.경영지표로 보면 우리금융의 지주사 변신은 소기의 성과에 가깝게 간 것이 분명하다. 지주사 전환 1년 만에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우리은행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Baa2)으로 두 단계 올렸다. 현재 무디스의 우리은행 신용등급은 ‘Baa1’이며, 우리금융지주는 투자적격인 ‘Baa3’이다.‘부실금융사 모음’이라는 오명으로 출발했으나 3년 만에 이런 이미지는 싹 바뀌고 대신 ‘뉴욕증시 상장은행’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우리금융은 2001~2002년에 ‘성공적인 턴어라운드와 구조개편 완료’를 내세웠으며, 2003~2004년에는 ‘비약을 위한 성장플랫폼 완성’을 전략적 목표로 정했다. 이 과정은 3년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평가다.2000년과 2003년의 재무제표는 ‘우리금융지주가 적어도 부실 털기에서만은 성공했다’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자산의 부실화 정도를 나타내는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000년 말 무려 16.3%였으나 2003년 말 기준으로는 3%대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조2,990억원에서 4조7,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2000년 3조5,77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말 기준 560억원으로 늘었다.현재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지분율 100%), 광주은행(100%), 경남은행(100%), 우리신용카드(100%), 우리종합금융(100%), 우리금융정보시스템(100%), 우리애프앤아이(100%), 우리투신운용(100%), 우리증권(40.2%)을 자회사로 두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우리신용정보(100%), 우리아메리카은행(100%), 신우CRV(76.69%), 인니우리은행(95.2%), 넥스비텍(50.5%), 우리CA자산관리(51%) 등은 손자회사다.출범 3년을 맞는 우리금융지주는 이제 황영기 회장 체제로 2기를 통과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경영이 정상화되는 등 우리금융지주는 나름의 경영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반면에 금융지주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평가다.최근 우리카드가 우리은행에 합병되는 어수선한 과정에서 400억원이라는 거액 횡령사고가 발생해 지주사 관리체제의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지난해 우리은행의 회계처리 문제로 자회사인 은행과 모회사인 우리금융지주가 대립한 일은 금융지주 구조의 단점을 보여줬다. 다행히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교훈으로 일사불란한 의사결정 체계가 구축돼야 은행과 비은행부문간의 시너지가 높아진다는 지적에 따라 2기 우리금융지주는 지주사 회장과 우리은행장을 1명으로 하는 것을 비롯, 지배구조를 새로 정비했다. 또 현재 우리금융지주의 자산 80%를 차지하고 있는 골격을 바꿔 비은행부문도 균형 있게 성장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최근 한투, 대투 또는 LG증권의 인수전에 뛰어들어 증권 및 자산운용부문을 우선 보강할 계획이다.현시점에서 우리금융지주가 과연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우리금융지주는 민영화라는 제1과제를 안고 있는, 아직도 추진과정에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황영기 회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던 민영화는 그러나 시장상황 등 여러 변수들로 인해 다소 시간이 늦춰질 전망이다.돋보기 / 국내은행 변신 바람‘금융지주로 살길 찾는다’최근 미국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계기로 국내 은행들이 또 한번 몸집 키우기에 나서면 다시 한 번 금융지주회사 변신 붐이 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신한, 동원에 이어 하나은행이 금융지주회사로 거듭 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마저도 지주회사가 되겠다고 나섰다.또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게 돼 현행법상 금융지주사 요건을 갖춤에 따라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도 궁극적으로 금융지주로 전환할지 여부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전문가들은 금융지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 번 높아지는 이유가 금융산업의 복합화 경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은행복합화란 은행창구에서 증권, 보험 등의 다양한 금융상품을 파는 것을 말한다. 방카슈랑스 도입, 통합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시행 등이 이 같은 복합화를 부추겨 갈수록 금융지주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현행법은 금융지주사만 자회사간 고객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금융지주사로의 변신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은행들은 ‘금융계의 월마트’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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