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투명성 확보’vs 재계 ‘현실성 없어’

정부가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 도입을 유인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현실성 부재’ 이유를 들어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지주회사 모양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는 재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안’을 일부 개정했다. 예컨대 부채비율 100% 충족을 위한 유예기간을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고, 지주회사로의 전환 유형 중 일부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는 유예기간을 모든 유형에 대해 인정하기로 했다. 또 비상장 합작자회사에 대한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현행 50%에서 30%로 완화했고, 금융 또는 일반 지주회사가 될 당시 소유하고 있는 비금융 또는 금융회사 주식에 대해 2년간의 처분유예기간을 인정키로 했다.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을 쉽게 하기 위해 규정을 소폭 완화했다”는 게 공정위 관계자의 설명이다.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한다고 해 놓고 오히려 강화시켰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전경련은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에 앞서 지주회사 관련제도 보안내용으로 △지주회사에 대한 출자총액규제 적용 제외 △자회사의 다른 자회사 출자 허용 △자회사의 손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요건 신설 철회 △지주회사 요건 중 ‘주된 사업’ 관련규정 개선 △지주회사 자회사 주식가액 산정방법 개선 등을 요청했다.하지만 공정위가 몇가지 조항에 대해 ‘예외인정’ ‘유예기간 연장’이라는 문구 수정만 했을 뿐 현행법에 없던 자회사간 출자금지를 명문화하자 재계는 다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재계가 정부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내용은 첫째, 지주회사의 자회사간 출자금지 부분. 정부는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라며 현행법상 명문화돼 있지 않은 자회사간 출자금지를 명문화하자 재계는 출자허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외국자본에 의해 적대적 M&A나 경영간섭을 방어하기 위해 자회사가 다른 자회사에 출자해야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부채비율 100% 유지, 자회사의 보유지분율 산정시 무의결권주 포함 등 각종 재무상의 제약을 받고 있어 자회사에 대한 적대적 M&A가 발생할 경우 자체 방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둘째, 정부는 자회사의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신설해 비상장인 경우 50%, 상장 및 등록 공동출자회사의 경우 30%의 지분을 확보토록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관계는 사업내용상 밀접성 여부로 인정받기 때문에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관계처럼 지분율 요건 설정 자체가 의미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회사는 손자회사에 대해 사업상 필요한 만큼의 지분율만을 보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분율 요건을 설정해 강제성 있는 주식을 추가로 보유하게 하는 것은 기업의 효율적인 자원활용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셋째, 지주회사의 비계열사 주식 5% 초과소유 금지 대목. 정부는 이를 예정대로 실시하되 지주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비계열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의 15% 미만인 경우 예외로 인정키로 했다. 하지만 재계는 ‘예외인정’을 ‘적용제외’로 변경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배목적이 아닌 사업전략 및 투자목적상 타 회사의 전략적인 제휴 등 지주회사의 자회사 외 출자금지는 과잉규제로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간 전략적 제휴는 경영우위 선점과 사업기회 포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업경영 전략이라는 것이다. 또 지주회사는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출자나 다른 회사출자 등이 엄격히 제한돼 적용 제외를 하더라도 무분별한 계열사 출자 등의 폐해방지가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넷째, 지주회사 부채비율 100% 충족을 위한 유예기간 여부. 정부는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다. 재계는 이와 관련, 미국이나 일본의 기업들도 부채비율이 150%를 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의 100%는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차입을 통한 자금확보가 안될 경우 대부분의 그룹들은 지주회사 설립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 항목을 폐지하거나, 200% 및 5년 유예로 대폭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삼성 등 일부 대기업들은 지주회사 설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이나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할 경우 삼성전자의 주식 30%를 매입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의 삼성전자 시가총액(68조원)을 기준으로 잡으면 30%의 지분 확보에 2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엄청난 금액을 동원할 수 있는 국내 대주주는 없다는 게 재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나설 경우에도 문제가 뒤따른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 외국인들이 그룹을 통째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한 듯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들에 지주회사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며 “그룹 계열사들이 개별적인 느슨한 관계로 유지되든가, 각 계열사들이 독립경영 형태로 가도 무방하다”고 말했다.그러나 재계는 지주회사가 정부의 통제를 덜 받고 계열기업군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이 ‘지주회사 도입이 불가능하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음에도 삼성물산의 지주회사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재계는 정부와 끊임없는 교섭을 통해 실현 가능한 지주회사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돋보기 / 지주회사의 장단점구조조정 쉽지만 경영권 방어 어려워공정위 및 재계는 지주회사가 설립되면 복잡한 순환출자가 단순한 수직적 구조로 바뀌어 구조조정이 쉬워지고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복잡한 출자구조 등으로 인해 외국에서 저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지주회사 설립으로 대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존 지배구조로는 계열사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파급돼 고위험이 뒤따르지만 지주회사는 자회사 실패에 대해 출자범위 내 책임만 지면돼 위험이 낮아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주회사가 설립되면 대기업들의 경우 출자총액제한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지주회사의 낮은 수익성으로 모회사의 신규투자가 어렵고 유망 산업의 집중 육성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주회사가 순수 투자기능만 할 경우 자회사의 배당금만으로 첨단산업 등에 대한 집중투자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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